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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이 지나간 자리에 안부를 남긴다>

9화 말보다 오래 기억되는 마음

by 숨결biroso나


며칠 전, 휴대폰 연락처를 정리하다

번호 하나에서 손이 멈췄다.

더는 연락하지 않을 거라는 걸 알면서도,

지우지 못했다.

그 사람은 지금 어디서 어떻게 살고 있을까?

가끔씩은, 나를 기억할까?


문득 생각이 난다.

졸업식날, 분주한 복도 끝에서 마지막으로 눈이 마주쳤던 친구.

뭔가 말할까 하다가,

서로 손만 살짝 흔들고 돌아섰던 기억.

그 후로, 그 친구와는 한 번도 마주친 적이 없다.


생각난다.

회사 복도에서 늘 인사를 건네주던 선배.

출근길 엘리베이터 안에서 나눴던 소소한 대화들.

그 따뜻한 웃음이

언제부턴가 보이지 않았고,

나는 그저 ‘어, 언제 퇴사하셨지?’

짧은 안부 하나 못 전한 채, 그렇게 잊어갔다.


살면서 우리는

너무 많은 사람을 지나친다.

멀리서만 좋아했던 사람,

한때 가까웠지만 멀어진 사람,

그리고

아무 사이 아니었지만

마음 한 켠에 오래 남아 있는 사람.


가끔,

이름조차 기억나지 않는 얼굴들을 떠올린다.

문득문득, 그들이 잘 살고 있을까 생각한다.

그건 어쩌면

내 안에 오래 머물러 있던

말 없는 안부인지도 모른다.


안부는 꼭 전해지지 않아도

마음속 어딘가에

조용히 남아 있다.


어릴 적 동네 골목이 떠오른다.

학교 끝나고 혼자 걸어오던 좁은 길,

손에 쥔 보온병이 따뜻해서

괜히 마음도 따뜻해졌던 그날 오후.


나는, 그런 순간들마다

안부를 전하고 있었다.


누군가에게는 전화를 걸고,

누군가에게는 문자를 보내고,

또 누군가에게는

마음으로만,

조용히 이름을 불러본다.


말하지 못한 안부는,

그저 사라지는 걸까?

아니면, 어디엔가

조용히 쌓여 가는 걸까?


자주 다니던 책방이 생각난다.

서가 사이를 천천히 걷다,

괜히 오래 만지던 책 한 권,

몇 번이고 펼쳐보다

손끝에 여운을 남기고 돌아서던 내 모습.

나는 그때도,

서툰 마음으로

무언가에게 안부를 전하고 있었는지도.


사실은,

그때의 내가 그리운 건지도 모른다.

누군가의 안부가

필요했던 시절의 나.


살면서 우리는,

안부를 건네려다 멈추고,

건네지 못한 마음을

혼자만 껴안고,

그러다 결국

시간에게 맡긴다.


그래도,

말하지 않아도 전해지는 안부들이 있다.

눈빛으로, 기억으로, 마음으로.

사랑했다는 마음,

그리웠다는 마음,

미안했다는 마음.


그런 안부들은

시간이 지나도

사라지지 않는다.


그저,

우리 안에서

조용히 살아 숨 쉬고 있을 테니까.






"오늘도, 닿지 못한 안부들을 조용히 안아본다."
by 숨결로 쓴다 ⓒbiroso나.



다음화 예고

10화 〈시아버지께, 남겨둔 마음 하나>

안부는 때로, 말보다 오래 기억되는 마음이다.

그 조용한 안부들을 모은 《말 없는 안부》는
매주 토요일,일요일 천천히 당신에게 말을 겁니다.



<biroso나의 숨결 감성 연재> 계속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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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 / 목 《엄마의 숨》
화 / 금 《아무 것도 아닌 오늘은 없다》
화/ 토 《숨쉬듯, 나를 쓰다》
수/ 금 《다시, 삶에게 말을 건넨다》
수 / 일 《마음에도, 쉼표를 찍는다》
토 / 일 《말없는 안부》
일 / 월 《가만히 피어나는 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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