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라짐보다 오래 남는 기억에 대하여
그 시절, 우리는 시골에 살았어요
계절 따라 냇물이 흐르고,
마당엔 자갈이 깔린 작은 집이었죠.
해피는 어느 날,
아빠 지인이 “아이들이 좋아할 거야”라며
조심스레 안겨준 선물이었어요.
해피가 깜빡이는 눈으로 처음 우리를 보았을 때
정말이지, 집 안에 봄이 들어온 듯했어요.
엄마는 평소보다 부드러운 목소리로 해피를 불렀고
동생은 깔깔대며 이름을 외쳤고
나는, 그 아이가 우리 집에 온 게
그저 기적 같았어요.
등교할 때마다 해피는 현관 앞까지 나와
살랑살랑 꼬리를 흔들었어요.
나는 하루 종일 해피 생각만 했고
뒤꿈치를 들고 살금살금 들어와도
해피는 제일 먼저 나를 알아보고
작은 발로 바닥을 구르며 뛰어왔죠.
해피는 그저 강아지가 아니었어요.
그 시절의 나, 우리 가족의 웃음,
그 평화롭고 소박한 시간 자체였어요.
그러던 어느 날,
학교에서 돌아오자 해피가 보이지 않았어요.
처음엔 숨바꼭질인 줄 알았죠.
자갈 마당을 돌고, 창고도 뒤졌어요.
불렀어요.
목이 쉬도록, 울면서.
그런데 해피는 오지 않았어요.
어른들은 말했어요.
“아마 다른 동물에게… 시골엔 워낙…”
대답은 늘 조심스럽고, 흐릿했어요.
더 묻지 말라는 듯한 말투였어요.
어린 나는 모를 수밖에 없었어요.
사인이 뭐였는지, 어디 있었는지
누가 마지막을 지켜봤는지도 몰랐어요.
나중에야 알았죠.
어른들도 해피를 지켜주지 못한 그날을
애써 덮으려 했다는 걸요.
그 일이 있고,
나는 밤마다 해피를 불렀어요.
동생들도 계속 울었고,
엄마는 베란다에 앉아 말없이 먼 산을 봤어요.
우리가 직접 묻어줄 수 있었더라면.
작은 돌이라도 얹어줄 수 있었더라면.
‘잘 가’라는 말이라도 해줄 수 있었다면.
그럼 지금보다는
덜 아팠을까요.
그 후로 오랫동안,
나는 어떤 존재에게도 쉽게 마음을 열지 않았습니다.
혹시 또,
어느 날 갑자기 사라질까 봐.
다시 그런 날이 오면
나는 또 한없이 무력할까 봐.
해피야.
너는 마지막까지 우리 곁에 있었던 거지?
겁이 많았던 너,
혼자서 무서웠을까.
그날 이후
나는 네가 걷던 길을
한참 동안 아무 말 없이 바라보곤 했어.
너를 위해 뭘 해줄 수 있었을까를
아직도 묻고 있어.
너는
우리가 처음으로 사랑해 본 존재였어.
그래서 더 오래 아팠고
더 오래 기억해.
그 시절,
너와 함께 웃던 모든 시간은
지금도, 우리 가족 안에서 숨을 쉬고 있어.
조금 더 잘 안아줄걸.
조금 더 많이 불러줄걸.
그런 생각으로 너를, 오늘도 기억해.,..
"그리움은 다 잊지 못한 사랑의 또 다른 이름이었다."
by 숨결로 쓴다 ⓒ biroso나.
(다음화 예고)
8화 <마음이 스민 자리, 초록이에게>
다음 화에서는 ‘화분’에 담긴 이야기로 마음의 흔적을 따라갑니다.
안부는 때로, 말보다 오래 기억되는 마음이다.
그 조용한 안부들을 모은 《말 없는 안부》는
매주 토/일요일, 천천히 당신에게 말을 겁니다.
<biroso나의 숨결 감성 연재> 계속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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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 / 목 《엄마의 숨》
화 / 금 《아무 것도 아닌 오늘은 없다》
화/ 토 《숨쉬듯, 나를 쓰다》
수 / 일 《마음에도, 쉼표를 찍는다》
토 / 일 《말없는 안부》
일 / 월 《가만히 피어나는 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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