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삶에 몰래 들어온 계약자
첫째를 낳고 나서,
‘아, 이제 내 삶의 리듬을 찾았구나.’
혼자 만족하며 커피를 홀짝인 지 겨우 6개월.
그런데… 어느 날, 갑자기 둘째가 나타났다.
처음엔 믿기지 않았다.
내 뱃속에서 누군가 몰래 계약서를 작성한 줄 알았다.
“엄마, 나 여기서 살아볼게요.”
조용하지만 단호하게, 이미 도장을 찍어버린 느낌이었다.
며칠 전, 임테기를 확인한 순간, 나는 순간 멈춰 섰다.
냉장고 문을 열었다가…
아무것도 꺼내지 않고 다시 닫았다.
그리고 임테기를 다시 바라보며, 속으로 중얼거렸다.
‘오… 마이갓.’
그때, 내 뱃속의 작은 계약자가
당당하게 자리 잡고 눈빛으로 말을거는듯 했다.
“엄마, 준비됐어요?”
심장은 쿵, 머리는 핑, 손목과 허리는 이미
‘미래의 고생담’을 경고하고 있었다.
‘어떡하지… 또 밤샘 수유, 또 기저귀, 또 울음…?’
웃음이 튀어나오려다 눈물이 슬쩍 비집고 들어오는,
그야말로 감정 폭발 직전의 순간.
수백 번의 시뮬레이션이 머릿속을 빙글빙글 휘젓고 지나갔다.
유일한 낙이던 육퇴 후 맥주는 이제 당분간 안녕 (제일슬픔)
과연 내가 둘을 동시에 케어할 수 있을까 하는 불안,
이러다 진짜 전업주부 전향해야 하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
잠깐 솟구친 일 욕구에 ‘어, 나 아직 살아있네’ 하고 혼자 킥킥 웃음,
또 한 번, 잠 부족으로 쓰러질 미래의 나,
내일부터 커피는 디카페인으로 바꿔야 하나 하는 현실적 고민까지.
모든 게 뒤엉켜 정신은 이미 멀쩡하지 않았다.
마치 내 머릿속에서 재난 영화와 육아 리얼리티 쇼가 동시에 상영 중인 느낌이었다.
일단, 확인이 필요했다.
그래서 병원에 갔다.
초음파 화면 속, 작고 투명한 존재가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며 미소 지었다.
“잘 부탁해요, 엄마.”
희한하게도, 두려움과 설렘은 한 끗 차이였다.
며칠 전까지만 해도
‘아… 이건 좀 너무한 거 아니야?’라며 속으로 항의하던 내가,
지금은 내 안에서 조용히 발버둥 치는 작은 생명을 보며
살짝 설레고 있었다.
내 임신 소식을 들은 친구들은 말한다.
“둘째는 사랑이야.”
또 다른 친구는 말한다.
“둘째는 2배 힘든 게 아니라 20배 힘들어.”
솔직히 누가 맞는지 모르겠다.
아마 둘 다 맞는 것 같기도 하고,
둘 다 틀린 것 같기도 하고.
하지만 뭐, 에라 모르겠다.
이미 내 삶은 새로운 챕터로 넘어갔으니까.
앞으로 어떤 날들이 기다리고 있을지 몰라도,
그저 한 걸음씩 걸어갈 뿐이다.
남편과 함께 어이가 없어 피식 웃었다.
조금 슬프고, 조금 긴장되고,
그리고 아주 조금은… 행복한 웃음.
이제 또, 내 삶 속에
‘둘째’라는 이름의 새로운 소설이 이미 시작됐다.
나의 동의 따윈 전혀 묻지 않고.
그래… 내 인생의 장르는 늘, 시트콤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