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박육아? 아니, 그냥 주체적 모험일 뿐

by Asparagus



아이와 단둘이 몇일만 지내다 보내다보면
세상은 내 편이 없는 것처럼 느껴진다.


남편은 원래 한 달에 한두 번 출장을 가지만,

둘째가 생긴 이후엔 그 출장이 내 마음속 ‘공포의 카운트다운’이 된다.
입덧과 잠 못 이루는 밤, 울음과 기저귀 폭탄 속에서
나는 이미 생지옥을 예약해둔 상태다.


출장 1주일 전부터 심장은 이미 콩닥콩닥,
출장 전날에는 엄살 대마왕으로 등극한다.
“여보… 내일부터 나 혼자서 독박육아, 어쩌지?”
글썽이는 눈으로 남편을 향해 간절히 호소하지만,
남편도 어쩔 줄 몰라하며 잠시 멈칫할 뿐, 결국 가야 한다.
우리가족도 먹고 살아야 하니까.


게다가 일본에는 한국처럼 육아수당이나 부모수당 같은 지원금도 없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오렌지주스를 한 모금 마시며 버틴다.
입덧으로 딴 건 다 구역질 나지만, 오렌지주스만은 유일하게 들어온다.



그리고, 그렇게 시작된다. 독박육아.



한국에서는 혼자서 육아를 감당해야 하는 상황을 ‘독박육아’라 부른다.
그럼 일본에서는? 일본에서는 ‘완오페(ワンオペ)’다.


완오페는 영어인 One Operation에서 온 말로,
심야처럼 인력을 구하기 어려운 시간대에
외식 체인점 등에서 직원 한 명만 두고 모든 일을 처리하게 하는 상황을 뜻한다.


즉, 아이를 키우는 아내가
가사, 육아, 일까지 모든 것을 혼자 감당하는 상태가
마치 원오페 영업과 비슷하다고 해서 붙인 말인 셈이다.


들어보면 그럴 듯하지만, 솔직히 말하면
둘 다 조금 억울한 느낌이있다.
나는 ‘독박’을 쓰는 것도 아니고,
‘완오페’처럼 나를 부려먹는 것도 아니니까.


그래서 생각했다.
‘독박육아’라는 단어 자체가 사람을 은근 억울하게 만든다는 것.
마치 세상의 모든 책임과 불이익을 혼자 뒤집어쓴 사람처럼 느껴지니까.
기저귀와 이유식, 울음과 에너지드링크 사이에서
아슬아슬하게 균형 잡고 있긴 하지만,

솔직히 그 정도로 불이익을 당하는 건 아니다.


그래서 마음속으로 조용히 단어를 바꿨다.


독박’ 대신 주체적인,
‘힘든 하루’ 대신 내가 선택한 모험.


혼자 만든 단어지만, 이상하게 마음 한켠이 살짝 웃으며 가벼워진다.


혼자서 기저귀를 갈고,
이유식을 만들고, 아이를 재우는 동안
나는 사실… 꽤 능동적이고 주체적인 인간이 된다.
어쩌면 육아라는 전쟁터에서
나만의 전략과 전술을 연구하는 장군 같은 기분?


물론, 때때로 나는 소파에 쓰러져
“이제 다 포기하고 싶다”라며 눈물을 흘리기도 한다.
그때 아이가 내 무릎 위로 올라오며 장난감 총으로 머리를 ‘찡!’ 하고 치면,
슬픔과 짜증이 순간적으로 어이없는 웃음으로 바뀌기도 한다.
…역시 아이는 내 마음을 모른다.


하지만 그 순간조차,
내가 선택한 하루의 일부라는 사실을 떠올리면
짜증과 피곤 속에도, 슬픔 속에도
조금의 자부심이 스며든다.
눈물을 닦고 다시 마음을 다스리는 순간,
나는 스스로를 ‘주체적인 엄마’로 재정비한다.


결국 육아라는 건,

독박이든 주체적이든 상관없이

아이를 향한 사랑과

내 에너지, 조수 남편, 그리고 최신형 육아장비까지 모두 합쳐진

지능적·종합적·살짝 과학실험 같은 육체노동이다.


그리고 나는 오늘도,

주체적인 엄마가 될 것이다.

왜 ‘독박육아하는 엄마’라고 부르면
왠지 슬퍼 보이는 걸까.

나는 슬프지 않다.


그저, 하루하루를

주체적으로,
유쾌하게,
사랑스럽게,
그리고 살짝 폭주하며 달리는 엄마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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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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