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루탄 냄새를 난생처음 맡아보다.
바로 저번 주의 일이다.
첫 미술 수업을 들으러 갔다.
수업이 끝난 뒤, 다음부터는
좀 더 큰 붓과 팔레트. 캔버스가 필요하다고 하여
학원 근처에 있는 미술용품점에 갔다.
이 가게는 파나마 대학교 근처에 있어서
학생들이 자주 드나들고
나 또한 지난번에 한 번 와봤던 곳이다.
계산을 하려던 찰나
갑자기
밖에서 펑-! 펑-! 소리가 났다.
별로 대수롭지 않게 있었는데
주인 할머니와 아주머니 한 분이
봄베라(Bombe la) 거리면서
뭐라 뭐라 긴급한 듯 말하는 거다.
뭔 소리지??
영문을 모르겠단 듯이 서있자
코를 막는 제스처를 취했다.
온갖 스페인어가 난무하는 와중에
protesta만 알아들었다.
어!? 시위한다고??
할머니가
차를 가져왔냐고 그럼 다행이라고 빨리 가라고 하는 거다.
나는 요새 다시 시위를 하고 있다는 건 이미 알고 있었지만,
(교사들의 연금 관련 시위)
뻥! 하는 소리는 난생처음 들었다.
차를 타러 밖에 나오니
매캐한 냄새가 났다.
가려는데 앞 차가 안 가고 서있는 거다.
알고 보니
경찰들이 방패로 둘러싸인 채
대학교 쪽으로 최루탄을 쏴서 터뜨리고 있었다.
아니 뭐야!
이게 최루탄 냄새였어!?
머리가 띵-하고 코가 매웠다.
길거리에 사람들이 코를 막고 황급히 피하고 있었고
무엇보다 경찰이 계속해서 최루탄을 쏘아대는
그 비주얼이 너무 무서웠다!
남편한테 전화를 걸어 무서워 죽겠다를 시전 한 뒤
어찌어찌 집에 와서 최루탄을 씻어 내리고자 샤워를 한 뒤,
몸져누웠다.
아니 이 현대에 최루탄 냄새를 맡아볼 줄이야.
나는 미술학원에 갔을 뿐인데 이게 왠 날벼락!?
시간을 잠시 거슬러보자.
내가 파나마에 2023년 8월에 왔다.
그런데 같은 해 11월에 나라 전체를 뒤흔드는 시위가 일어났다.
아시는 분은 아시겠지만,
캐나다 회사에 파나마 정부가 광산 채굴권을 장기 부여한다는 것이 알려지기 시작하면서 시위가 시작됐다.
이 나라의 시위는
우리나라처럼 촛불시위, 어디 집결하여 노래 틀고 외치는 시위, 간판 대자보 시위 이런 것이 아니라
일단 도로점거가 기본이다.
불타는 타이어를 도로에 놓고
아무도 지나가지 못하게 막는다.
문제는
주요 도로를 죄다 막아서 자국민들이 회사/학교/병원도 못 가게 되었다는 것이다. 물류업계는 마비가 되었으며 물류가 마비되니 제조업이나 수출업계에 비상이 걸렸다. 각종 상품 및 식량, 의약품 조달도 어려워졌다.
국가 치안에도 타격이 컸다. 외국인 관광객 수도 줄었을뿐더러 이때다 싶어 범죄도 더 많이 들끓기 시작한 것으로 보였다.
진짜 시위자랑 범죄자랑 구분이 안 가서 시위대인 척하면서 돈을 뜯고 폭행을 저지른다고 했다.
실제로 혼잡해진 틈을 타 산미겔리토에는 가게들이 털리는 사건이 일어나기도.
지금이야 결말을 알아서 쉽게 말하지만
그 당시는 너무나 무서웠다.
꼴론은 아침 일찍부터 도로가 점거되었기에
우리 남편은 회사 일을 처리하러 새벽 2시에 일어나서
꼴론을 갔다.
어찌나 걱정이 되던지!
당시
한 미국인 할아버지가 총을 꺼내 교사를 죽이기도 하는 등
여러 희생자 사건이 터지면서
시위가 더욱 불타오르고 있었던 터라,
자칫 잘못하면
범죄로 이어질 가능성이 충분했기 때문이다.
왜 이런 방식의 시위를 하는 것일까?
자국민의 경제, 안전 등 즉 스스로에게도 큰 타격을 입히면서 하는 방식이 사실 이해가 되지는 않았다.
자국민들도 불만이 높아져 보였다.
분명 이유는 있겠지만-
이런 출혈이 있어야만 정부가 말을 들어줄 거라고 생각하는 것이 가장 크지 않을까 하는 나만의 추측.
불만으로 시작한 시위가
광기로 변모될 즈음-
정부가 손을 들었다.
계약을 해지하기로.
그 후로 시간이 흘러
정부가 바뀌었다.
그런데
요새 다시 광산 계약의 조짐이 스멀스멀 올라오고 있단다.
참고로 파나마대학은 우리나라로 치면
서울대학교 같은 곳이다.
(물론 레벨이 같지는 않지만)
그런 대학에 최루탄이 터지고 있다고 생각한다면...
아무쪼록
시위가 더 번지지 않았으면 좋겠다.
비나이다 비나이다
+오늘 기사를 보던 중-
하... 정말 잔인한 방법이 지 않은가. 무섭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