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에 소셜미디어를 보다 우연히 오은영 선생님의 숏폼 영상을 보았다.
요지는 친구 같은 아빠를 개인적으로 좋아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아빠는 부모로서 아이에게 잘못된 것들을 훈육해 줄 수 있는 위치에 있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무언가 나에게 해당되는 말 같아 뜨끔했다.
어쩌면 나는 지금 다른 가정보다 더 친구 같은 아빠가 되면 안 되는 상황에 있을지도 모른다.
나에겐 일곱 살짜리 자폐 스펙트럼 아이가 있다.
아이는 하루에도 수많은 일들, 어쩌면 대부분의 일들이 교정 대상이다. 먹던 음식을 바닥에 뱉는 것부터, 물건을 던지는 것부터, 식사할 때 자리에 앉아 있지 않는 습관까지…
일상의 대부분이 훈육 대상이다.
대부분의 엄격한 훈육과 꾸짖음은 아내의
몫이다.
나는 아이에게 주로 휴식처가 되어주려 한다. 아이의 기분을 맞춰주고 웬만한 것들은 아이가 원하는 것을 들어주려 한다. 하지만 이것은 사실 좋은 아빠랑은 멀어지는 길이라는 것을 머리로는 알고 있다. 이에 대해 아내와 가족들에게도 여러번 조언을 들은 바 있다.
아이의 성장과 독립을 장기적으로 생각했을 때 아이에게 훈육을 하는 것이 진정으로 아이를 도와주는 일일 것이다.
나에게도 핑계라면 핑계가 있다.
하루 일과를 마친 아이를 픽업하러 학교에 가면 아이는 늘 지쳐있다.
돌아가는 차 안에서 울거나 소리를 지르는 일들이 많다. 책가방에 넣어준 간식은 손도 대지 않았다.
아이는 학교에서 어떻게 생활하는 걸까? 하루하루 지날수록 아이는 아침에 학교에 가기 싫다고 더욱 세게 저항한다.
이런 아이를 보면 마음이 아프다.
아이와 나는 한 몸 같다.
아이가 울면 나도 울고
아이가 웃으면 나도 웃는다.
아침에 스쿨버스에 태울 때 가기 싫어 난동을 부리는 아이를 보면 오늘 하루 학교 생활이 걱정된다.
나의 마음도 어둡게 하루를 시작한다.
아이가 일상생활에서 행복하고 들떠 있는데 교정받아야 할 행동을 한다면 나는 더욱 훈육에 가담할 것 같다.
내 눈에 보이는 아이는
늘 가기 싫은 학교에 끌려가고
그곳에서 충분히 먹지도 웃지도 않고 돌아온다. 그런 아이에게 훈육을 하려니 마음이 찢어진다. 학교 외 시간은 그저 휴식처가 되어주고 싶다는 유혹이 찾아온다.
이런 나의 교육방식이 옳지 않다는 것을 나는 머리로 알고 있다. 하지만 아이를 보며 아픈 내 가슴은 자꾸만 이성을 멀리하라고 외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