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와 둘이 오랜만에 소아과에 갔다.
아이가 아픈 건 아니었지만 정기검진을 받는 날이었다.
그동안 아내가 아이의 정기검진을 줄곧 가서 아이의 담당 의사 선생님을 직접 보는 건 이번이 처음이었다.
인도 미국 교포인 여자 의사 선생님에 대해선 아내에 대해 워낙 많이 들어서 실제로 만났을 때 그리 낯선 느낌은 들지 않았다.
특별한 점은 이 의사 선생님의 딸도 우리 아이처럼 자폐가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이 선생님은 자폐를 가진 우리 아이에게 항상 진정성 있는 진료를 해 주셨다. 얼마나 운명적인 만남인가.
매우 오랜만에 아이를 만난 선생님은 아이가 많이 자랐고 성숙해졌다고 표현했다. 그렇게 듣고 보니 또 그런 것 같았다. 아이는 요새 좀 더 점잖고 독립적이고 싶어 하는 것 같다.
의사 선생님과 면담하면서 아이가 현재 복용하고 있는 수없이 많은 약들에 대해 얘기했다. 영어로 한번도 들어본적 없는 어려운 약들의 이름에 난 그냥 맞다고 아는 척 고개만 끄덕였다.
아이는 알레르기, 천식, 집중력, 코막힘, 아토피 약까지 복용하고 있었다. 이렇게 한 번에 정리해서 들으니 새삼 놀라웠다. 다음엔 병원 방문 전 복용하는 모든 약의 사진을 찍어가는 게 좋겠다고 생각했다.
아이는 의사 선생님의 청진기 등 간단한 검사에 제법 잘 응했다. 귀를 검사하는 것에 있어서는 저항이 심해 간호사 두 명이 더 투입되었다. 결국엔 내가 아이를 끌어안은 채로 검사를 할 수 있었다. 정상이었다.
우리는 다음을 기약하며 의사 선생님과 헤어졌다.
아이가 많이 자랐고 성숙해졌다는 선생님의 말이 계속 머리에 맴돌았다.
따스하면서도,
아이를 인정하고,
아이를 이해하고,
신뢰감이 느껴지고,
희망적이기도 한 멋진 말이었다.
아이가 성숙해져 간다는 말이 나에겐 조그만 감동이
되었나 보다.
그동안 아이가 퇴행 혹은 제자리에 머물고 있단 생각을 많이 했다. 몸은 자라나지만 정신 연령은 세 살 수준이 아닐까 하는 말을 아내랑도 가끔씩 했다.
그런데 자폐 아이가 있는 의사 선생님으로부터 못 본 새 성숙해졌구나 란 말은 어떠한 말보다 큰 힘과 용기를 주었다.
다음 정기검진 때
한 단계 더 성숙한 아이가 되어 만나뵙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