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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푼푼 Jan 14. 2024

아이의 춤은 슬프면서 아름다웠다

둘째 아이는 아직 두 돌이 채 되지 않았지만 흥과 애교가 많다.


음악이 나오면 덩실덩실 몸을 움직이고 웃는 표정을 짓는다. 그 순간 우리 집 공간은 행복 바이러스에 전염되어 모두를 웃게 만든다.


고되고 힘든 날에도, 스트레스받던 날에도 아이의 이러한 순수함과 해맑음을 느끼게 되면 힘든 감정은 순간적으로 사르르 녹게 된다.


하지만 오늘 얘기할 주제는 첫째 아이에 대해서다.


한 번은 둘째 아이의 흥과 춤에 아내와 나도 너무 신이 나 음악을 틀고 다 같이 춤을 추고 있었다.


그때 우리들의 무아지경을 보고 있던 자폐를 가진 우리 첫 아이가 자기도 무엇인가 해야겠다고 생각했는지 벌떡 일어나 우리 앞에서 춤을 추기 시작했다.


그 춤은 세상 어디에도 없는 춤이었다.

닭싸움을 하는 것 같기도 하고, 박수홍의 이십년 전 유행하던 춤이 들어간 것 같기도 하고, 스우파의 팝핀 댄서 같기도 했다.


표정은 없으면서 박자는 정의 내릴 수 없을 만큼 시간과 시간을 이동하는 느낌을 자아냈다.

팔과 다리는 따로 움직이면서 마치 고장 난 로봇 같았다.


하지만 이것은 분명히 춤이었다


아내는 웃으면서 눈물을 흘렸다.

우리 아이가 태어나서 처음으로 우리 앞에서 보여준 춤이었다.

아내는 행복하면서도 너무 슬픈 두 감정이 동시에 찾아왔다고 말했다.

나 역시 그 감정을 고스란히 느꼈다.


아이는 그 순간 행복하게 웃고 춤추는 우리 셋을 보면서 자기의 모든 장애물을 극복하고 우리처럼 춤추려 했다.

자신의 맘대로 제어되지 않는 몸사위, 리듬, 감정들과 싸워가며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행위예술 같은 춤을 만들어냈다.

아이에게 춤은 껍질을 탈피하는 것과 같았다.


얼마나 우리와 함께 춤을 추고 싶었으면.


그 뒤로 수개월이 흘렀지만 다시는 아이의 춤을 볼 수 없었다.


아이가 흥이 나 팔짝팔짝 뛰기라도 할 때면 아내와 나는 서로의 눈을 쳐다봤다.

약속이나 한 듯이 혹시 아이가 다시 한번 춤을 추게 될까 기대 어린 마음으로 아이를 바라봤다.


하지만 아직 그런 행운은 다시 오지 않았다.

그때 그 순간을 영상으로 기록하지 못한 게 후회된다.


아름다우면서도, 기괴하면서도, 슬픈 춤을 우리는 본 적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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