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 중 B110 17화

드러난 그림자, 끝나지 않은 비극 (1)

by 서정윤

지하 B110호 사무실.

모니터에서 뿜어져 나오는 푸른빛이 팽팽한 긴장감으로 가득 찬 팀원들의 얼굴을 비췄다.

김도윤은 능숙한 손놀림으로 교감의 클라우드에서 복구된 수많은 녹음 파일들을 화면에 띄웠다.

장태준이 화면을 유심히 살피다 입을 열었다.

“박현우 학폭 신고는 작년 12월 경이었어요. 교감이 미루다가 겨울방학이 되면서 흐지부지 됐으니까 12월이 확실해요. 그 시점 전후 파일을 찾아보는 게 빠를 겁니다.”


그의 말에 김도윤은 작년 12월 전후의 파일들을 하나씩 눌러 재생하기 시작했다.

대부분은 짧은 일상 대화나 교감의 업무 통화가 이어지다가 갑자기 다른 사람의 목소리가 흘러나왔고 팀원들의 얼굴이 일제히 굳어졌다.


“장 부장, 그 정도를 무슨 증거라고 학폭 타령이야? 박동재 씨 성격 몰라서 그래? 증거도 없이 시작하면 장 부장 무사할 것 같애? 나도 이제 교장 중임이 코앞인데 공연히 일 키워서 내 앞길 막을 생각 하지도 말라고.”

교장의 노골적인 압력에 침묵하던 장태준이 물러간 후 교장과 교감이 자기들끼리 나누는 섬뜩한 대화가 이어졌다.

“어휴, 저 사람, 눈치코치가 없으니 맨날 교장 선생님 눈 밖에 나는 거죠. 장 부장은 안돼요, 안돼.”

교감이 비아냥거렸다.

“그러게. 괜히 박동재 씨 비위 건드리면 우리만 피곤해지는 것을.”

교장은 한숨을 쉬더니 목소리를 낮춰 은밀하게 이야기를 시작했다.


“박현우, 그 녀석 올봄에도 크게 한 건 했잖아. 거, 새봄고 여학생 집단 성폭력 사건 말이야.”

“아, 그거요? 새봄고 학생 한 명 가해자로 둔갑시키고 박현우 쏙 빠져나간 거 말씀이죠? 박동재씨 정말 대단하더군요. 뒤처리가 아주 깔끔했어요.”

교감의 목소리에는 감탄과 함께 비열한 아첨이 묻어났다.


재생되는 파일 속 비열한 대화가 끝나자, 사무실 안은 정적이 흘렀다.

김도윤은 굳은 얼굴로 앉아 있었고, 배수진은 주먹을 꽉 쥐었다.

정의주는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모니터를 응시했고, 장태준의 얼굴은 분노와 자책감으로 일그러져 있었다.

그들은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더 추악한 진실에 직면했음을 깨달았다.

서준은 화면을 응시하며 생각에 잠겼다. 민준에게 들었던 이야기들이 퍼즐처럼 맞춰지는 기분이었다.


박현우 사건이 이렇게 노골적으로 은폐될 정도라면, 혜린의 사건도 누명을 씌웠을 것이라는 확신이 들었다.

‘장애 학생 차별 교사’라는 낙인은 분명 그들의 계획일 것이다.

서준은 화면 속 파일 목록에서 혜린이 인권위에 불려 다니던 무렵의 파일을 찾았다.


서준의 시선이 그곳에 고정되는 것을 느낀 장태준의 얼굴이 굳어졌다.

배수진이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혹시… 자살한 교사 얘기도 이 속에 있지 않을까요?”

모두의 시선이 김도윤에게 향했고, 그는 다시 파일을 하나씩 재생하기 시작했다.

음성 파일 속에서 혜린의 이름이 언급되는 순간, 서준은 저도 모르게 손을 들어 재생을 멈추게 했다.




18화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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