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무원의 예산 챙기기
올해 6월이었다. 고등학생 세 명이 함께 목숨을 끊었다. 부산 어느 지역의 일이었다. 언론이 연이어 보도했고, 시의원이 이와 관련한 시정질의를 했다. 자살률은 올라가는데 자살예방센터의 예산은 오히려 줄어서 시가 자살예방에 대한 의지가 있냐는 질타였다. 실제로 자살예방센터의 올해 사업비는 전년도에 비해 7천만 원이나 삭감되었다. 그 바람에 계획했던 사업 여러 개를 포기해야 했다.
시장은 자살예방 사업의 실행력을 확보 하라고 했다. 우리는 새 계획을 만들었다. 조례를 개정하고, 전담팀을 신설하고, 자살유족에게 원스톱 서비스를 제공하고, 노인자살예방 사업을 강화한다는 내용이었다. 몇 차례 반려 끝에 승인이 났다. 하지만 예산이 없으면 계획은 종이에 불과하다.
매년 10월이면 예산편성 협의회가 열린다. 회의실 문을 열자 에어컨 바람이 얼굴을 스쳤다. 10월인데도 바깥 날씨가 아직 더워서 냉방기를 틀어놓은 모양이었다. 오후 4시였다. 우리 국에서는 안건으로 오른 7개 사업 담당 팀장들과 예산업무 팀장, 담당 주무관이 참석했고, 건너편에는 예산과장과 담당 팀장, 주무관 세 명이 자리했다.
나는 회의장에 가장 먼저 들어왔고 맞은 편에 앉은 예산과장에게 가볍게 인사를 하고 우리 측 탁자 끝자리에 앉았다. 우리 국의 각 팀장이 돌아가며 사업 내용을 설명했다. 목소리들이 이어졌다. 어떤 목소리는 단호했고 어떤 목소리는 조심스러웠다. 예산과장은 고개를 끄덕이며 메모를 했다.
예산부서 팀장이 심의 결과를 차례로 통보했다. "미반영", "전년도 수준", "요구액에서 십퍼센트 반영" 같은 말들이 이어졌다. 단어 하나하나가 떨어질 때마다 회의실이 조금씩 무거워졌다. 팀장들의 표정이 굳었다. 한 팀장이 의자를 당기며 몸을 앞으로 기울였다. 목소리를 높였다. 거친 말투로 재차 예산 반영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다른 팀장들이 몸을 움츠렸다. 나는 손에 쥔 볼펜을 꽉 쥐었다가 놓았다.
자살예방센터 예산 차례가 왔다. 우리는 5억 4천만 원을 요구했는데 예산부서 심의 금액은 1억 7천만 원이었다. 올해와 같은 액수였다. 나는 자살예방센터를 27명 규모로 독립 운영하는 곳도 있으나 우리는 8명이 정신건강센터 부설기관으로 자살예방센터를 운영하고 있다고 했다. 자살을 생각하는 모든 사람을 살릴 수는 없지만, 위험 신호를 보이는 사람들을 한 번 더 들여다보고 손 잡아주며 함께 차 한잔 마시는 것으로 막을 수 있다고 말했다. 쉰 명만 살려도 부산시 자살률은 획기적으로 낮아진다고 덧붙였다.
나는 이어서 말했다.
"전액이 어렵다는 건 압니다. 시민들에게 자살예방에 대한 시의 의지를 보여줄 정도라도 반영해 주십시오."
예산과장이 물었다. 그의 목소리는 낮고 차분했다.
"작년 수준인 2억 4천으로 환원하면 되겠습니까?"
나는 고개를 저었다. 잠시 숨을 고르고 대답했다.
"예산과의 심의액인 1억 7천에서 최소 1억은 더 증액해 주셔야 합니다."
과장이 잠시 생각하더니 말했다.
"고려해보겠습니다."
회의가 끝났다. 의자 끄는 소리가 여기저기서 났다. 사람들이 자료를 챙겼다. 종이 묶음을 손에 든 팀장들의 걸음이 무거워 보였다. 일곱 개 안건 중에서 증액 가능성이 있는 건 자살예방 사업뿐이었다.
회의실을 나서며 생각했다. 좀 더 설득력 있게 말할 수 있지 않았을까. 요구액을 더 높여야 했나. 그러나 동시에 이것도 선방일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년도 부산시 재정 상황이 좋지 않다는 얘기는 이미 몇 달 전부터 들었다.
예산과장이 회의를 마치며 했던 말이 귓가에 남았다.
"일하겠다며 예산을 달라는 건데 뒷받침이 못돼 마음이 편치 않습니다. 시민건강국에서 고생 많으신 거 압니다."
예산이 없으면 일을 안 해도 된다. 공직자에게는 오히려 편할 수도 있다. 그런데도 예산을 확보하려고 애쓴다. 예산은 돈만이 아니다. 내가 하는 일이 얼마나 필요한지, 얼마나 중요한지를 보여주는 것이다. 예산이 붙어야 그 정책은 공식적으로 인정을 받는다. 예산이 빠지면 아무리 좋은 계획도 말뿐인 것이다.
해야 할 일이 있고, 방법도 안다. 하지만 예산은 늘 모자란다. 그래서 회의실에 앉아 아쉬운 소리를 한다. 때로는 목소리를 높이기도 한다. 회의실에서 거칠게 말했던 그 팀장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그에게도 꼭 지켜야 할 것이 있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