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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락수변, 술 없는 바다

by 박계장

휴일 오후, 오랜만에 민락수변공원을 찾았다. 몇 년 전 이곳을 가득 채우던 술병과 웃음소리, 그리고 민원의 메아리가 아직도 귓가를 스친다. 오늘의 고요함은 마치 오래된 풍랑이 지나간 뒤의 바다처럼 낯설다. 부산 수영구에 위치한 이 공원은 광안대교와 푸른 바다가 어우러진 풍광 덕에 많은 시민과 관광객이 찾는 명소다. 가족들이 산책하는 모습, 아이들이 뛰노는 모습, 연인들이 손을 잡고 거니는 모습이 평화롭게 펼쳐진다.


불과 3년 전만 해도 이곳은 무분별한 음주로 시끄럽고 쓰레기가 넘쳐나던 공간이었다. '거대한 술판', '젊은이의 헌팅 성지'라는 오명 아래, 날이 저물면 취객들의 고성과 술병이 공원을 점령했다. 그런데 지금은 '가족친화형 문화공간'으로 탈바꿈했다. 보건소 건강증진과장으로서 이 변화의 중심에 서 있었던 내게는 이 모든 장면이 남다르게 다가온다.


사실 민락수변공원은 내게 낯선 곳이 아니었다. 오래전부터 가끔 찾았던 공간이었지만, 2022년 1월 수영구 건강증진과장으로 부임하면서 이곳을 바라보는 시선이 달라졌다. 당시 우리는 다음 해인 2023년 7월을 목표로 금주구역 지정을 추진하고 있었다. "술은 빼고 문화는 더하고" – 내가 내세운 방향이었다. 하지만 이 단순한 문구 속에는 많은 고민과 갈등, 그리고 변화에 대한 열망이 담겨 있었다.


2022년 여름밤, 민락수변공원을 방문했을 때의 기억은 아직도 선명하다. 사람들 사이를 가로지르며 걷던 그 밤, 곳곳에 흩어진 비닐봉지와 술병, 음식물 쓰레기들이 코끝을 찌르는 악취와 함께 공원을 뒤덮고 있었다. 취객들의 고성과 담배 연기 속에서, 이곳이 정말 모두의 공간일 수 있는지 의문이 들었다. 주민들의 민원은 끊이지 않았고, 특히 인근 아파트 주민들은 밤새 이어지는 소음과 악취에 지쳐 있었다.


처음엔 나 또한 고민했다. 왜 이 문제가 보건소의 몫이어야 하는지 자문했다. 그러나 곧 깨달았다. 이것은 단순한 쓰레기나 소음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 사회의 음주 문화와 건강의 문제라는 것을 말이다. 세계보건기구(WHO)는 알코올을 1급 발암물질로 지정하고 있다. 과도한 음주는 개인의 건강뿐 아니라 사회 전체에 막대한 비용을 남긴다. 음주로 인한 질병, 사고, 가정 폭력 등 그 폐해는 이루 말할 수 없다.


민락수변공원의 음주 문제는 단지 환경 정화의 차원을 넘어, 음주에 대한 지나치게 관대한 사회문화의 반영이었다. 금주구역 지정은 국민건강증진법에 근거하고 있다. 법의 목적은 명확했다. 하지만 민원은 소음과 쓰레기에 집중되어 있었고, 많은 이들에게 금주구역은 환경 정비책 이상의 의미로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나는 아쉬웠다. 그 너머의 더 큰 목적, 곧 건강한 사회로의 전환이 간과되는 듯했기 때문이다. 소음과 쓰레기 문제를 해결하는 데 그친다면, 그것은 증상만을 잠시 누그러뜨리는 처방일 뿐이었다. 금주구역 지정은 건강한 사회문화 형성을 위한 시작이어야 했다. 언젠가는 시민들이 금주구역을 타인을 위한 배려이자 자신을 위한 선택으로 받아들이게 되길 바랐다.


지정까지의 길은 결코 평탄하지 않았다. 활어센터 상인들, 주민들, 언론까지 이해관계가 얽힌 수많은 사람들이 있었다. 사업설명회를 개최한 동사무소 회의실의 공기는 팽팽했다. 상인들의 눈빛엔 분노보다 더 깊은 두려움이 어려 있었다. 그들에게 이 정책은 생존의 문제일 수 있었다. '손님이 줄면 가족 생계는 어떻게 하냐'는 물음에, 나는 명쾌한 대답을 내놓지 못했다. 하지만 나는 그 어떤 설문 통계보다도, 사람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려 애썼다.


한 어머니는 아이들과 함께 공원을 찾지만, 저녁이 되면 취객들 때문에 서둘러 자리를 뜬다고 했다. 반면 상인들은 회는 술과 함께하는 문화인데, 술을 금지하면 손님이 줄 수밖에 없다며 걱정했다. 누구의 말이 옳다 할 수 없었다. 모든 입장이 타당했다. 하지만 결국 우리는 공익의 관점에서, 그리고 미래를 위한 투자라는 관점에서 결정을 내려야 했다. 그렇게 2023년 7월 1일, 민락수변공원은 공식적으로 금주구역으로 지정되었다.


그 이후 공원은 서서히, 그러나 분명히 변화하기 시작했다. 무엇보다 눈에 띄게 줄어든 것은 쓰레기였다. 주말 하루 평균 2톤에 이르던 쓰레기가 절반 이하로 감소했고, 특히 술병과 음식물 쓰레기의 감소가 두드러졌다. 소음 민원도 크게 줄었다. 무엇보다 변화한 것은 그곳을 찾는 사람들이었다. 이전에는 젊은이들의 음주 모임으로 가득하던 공간이, 이제는 아이들과 노년층이 함께 어우러지는 곳이 되었다.


우리는 "술은 빼고 문화는 더하고"라는 방향 아래 다양한 문화 프로그램을 도입했다. 환경 체험 행사, 가족 플리마켓, 문화 공연 등으로 공원은 다시 살아났다. 물론 모든 반응이 긍정적인 것은 아니었다. 일부 언론은 여전히 비판적인 시선을 보냈고, 몇몇 상인들의 불만도 여전했다. 우리는 그들과의 소통을 멈추지 않았다. 지역 활성화를 위한 홍보, 콘텐츠 확충 등 가능한 노력을 기울였다.


단속보다는 계도에 중점을 두었고, 강제보다 설득을 택했다. 술을 마시려는 사람들과 실랑이도 있었지만, 이내 대부분은 이해해 주었다. 누군가는 불만을 토로했고, 누군가는 감사의 인사를 전했다. 모두가 같은 마음일 수는 없겠지만, 모두의 공간이 되어야 하기에 우리는 흔들리지 않았다.


3년이 지난 지금, 나는 공무원으로서의 자부심을 느낀다. 민락수변공원은 이제 깨끗하고 조용한 공간이 되었다. 그리고 그 변화는 단순한 정책 하나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 시민 한 사람 한 사람과의 대화와 설득, 때로는 갈등과 타협의 결과였다. '공공장소에서의 음주'에 대한 인식도 바뀌고 있다. "술 한잔쯤이야"에서 "서로를 위한 절제가 필요하다"는 생각으로 변화하고 있다.


변화는 물처럼 고요히 스며들다, 어느 날 우리의 일상이 된다. 민락수변공원의 고요한 저녁처럼 말이다. 그렇게 공직자로서 나는 오늘도 믿는다. 작고 더딘 변화일지라도, 그 물결이 모여 더 따뜻한 사회를 만든다는 것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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