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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무원 / 노동자

by 박계장

< 7년 전에 써둔 글 올려봅니다. >


서류에 침묵이 내려앉은 오후,
창가로 비스듬히 스며든 햇살이
조용히 내 책상 위에 머문다.


사람들은 공무원을 이렇게 말한다.
“아침 9시 출근, 저녁 6시 퇴근. 적당히 앉아 있어도 월급은 꼬박꼬박 나오고, 주말과 휴일은 확실히 쉬고, 연차도 넉넉한 안정된 직업.”


그래서일까.
요즘 젊은이들은 화려한 삶보다 오래도록 꺼지지 않는 등불 같은 직업을 원한다.
그 믿음 하나로, 긴 시험 준비의 고독 속에 스스로를 담금질한다.


1993년 3월.
벚꽃이 막 피기 시작하던 초봄,
스물셋의 열정으로 공직에 첫발을 내디뎠다.


그리고 지금,
공직 입문 26년째의 시간 위에서 나는 묻는다.

나는 공무원인가, 아니면 노동자인가.




요즘 나는 아침 7시쯤, 사무실에 도착한다.
정시에 퇴근하는 날은 손에 꼽힌다.
간단히 저녁을 때우고, 늦은 밤까지 책상 앞에 앉아 있는 날이 많다.


숨 돌릴 틈 없이 하루가 흘러간다.
계획했던 일은 예고 없이 들이닥치는 민원과

메신저로 쏟아지는 자료제출 요청에 밀려

손도 대지 못한 채, 하루가 저문다.


시청의 커다란 창 너머에서도,
구청 복도를 오가면서도
나는 늘, 바쁘고 고단했다.


특히 구청은 시민과 마주하는 최전선이다.
억지스러운 민원은 감정의 파도를 일으키고,
문제를 확산시키는 민원인은
더 깊은 피로를 안긴다.


그들은 안다.
공무원의 인내가 바닥을 드러낼 때,
무리한 요구도 관철될 수 있다는 것을.




식품제조업체를 점검하던 시절,
가공식품에서 금속 조각이 나왔다는 민원,
밀봉 포장 안에서 살아 움직이는 벌레를 봤다는 항의.

정밀검사와 과학적 설명으로 납득을 구해도,
상급기관에 다시 민원을 넣는 이는 늘 있다.


그러면 우리는 조심스레 말한다.
“제품 몇 박스 보내드리면 어떨까요.”

문제를 길게 끌지 않기 위한 타협.
업체는 고개를 끄덕이고,

민원은 형식적으로 마무리된다.


남는 것은, 마음속의 씁쓸함뿐이다.




나는 ‘공복(公僕)’이라는 말을 좋아하지 않는다.
‘국민의 심부름꾼’이라는 말도 마찬가지다.
그 말엔 주체성도, 존엄도 없다.

마치 지시만 따르는 기계처럼 들린다.


하지만 공무원도 자신의 노동을 통해
정당한 대가를 받고 책임을 다하는 노동자다.
나는 ‘공복’이 아니라,
주체적인 ‘노동자’로 존재하고 싶다.


시청, 구청, 사업소.
이름만 다를 뿐 일의 무게는 같다.


지금도 나는 그 연장선 위에 있다.
새벽 출근, 야근,
주말임에도 지하주차장은 동료들의 차로 가득 찬다.


그래도 주중엔 온 힘을 다해 일하고,
주말만큼은 내 삶을 지키려 애쓴다.
그렇게 숨을 고르며 버텨야
다시 다음 주를 시작할 수 있다.




공직사회는 육체뿐 아니라
마음마저 지치게 한다.


어떤 선배는 승진을 내려놓고 구청으로 자리를 옮겼다.
“차라리 사람답게 살고 싶다.”
그 말은,
공무원도 결국 자신의 삶을 살아가는 사람이라는 것을 일깨워준다.


서울시 공무원 두 명이
과로와 스트레스로 극단적 선택을 한 일이 있었다.

그 뉴스를 보며 누군가는 말했다.
“죽을 용기로 살면 되지.”


하지만 정말 그럴까.
우리가 모르는 무너진 내면의 깊이는
쉽게 가늠할 수 없는 법이다.




공직사회에는 느슨하게 업무를 넘기는 사람도 있다.
문제는,
그 여파를 누군가는 고스란히 짊어져야 한다는 것.

“열심히 일한 당신, 조금만 더 해요.”


그 말이 농담처럼 들리지 않을 때가 있다.
그런 구조는 결국 조직 전체를 지치게 만든다.


공직은 민간처럼
역량 부족자를 쉽게 내보낼 수 있는 구조가 아니다.


그래서 인사이동 시즌이 되면,
부서장은 조용히 말한다.
“그 사람은 우리 부서에 오지 않게 해주세요.”


선택받지 못한 채 외면당하는 현실.
한 사람의 마음이 무너지는 순간이다.




나 역시 그런 시절이 있었다.
동료와 어울리지 못하고, 민원 앞에서 감정을 숨기지 못했던 시절.


지금은 감정을 드러내지 않으려 애쓴다.
나이도 들었고, 경험도 쌓였다.


하지만 여전히 마음보다 말이 빠를 때가 있다.


그래서 오늘도 조용히 다짐한다.


시민이 낸 세금으로 받는 월급,
그에 걸맞은 책임을 다하겠다고.


시키는 대로만 움직이는 ‘공복’이 아니라,
스스로 판단하고 책임지는 공무원이자 노동자로 살아가겠다고.


그것이
내가 이 자리에서 끝까지 지키고 싶은
작은 소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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