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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기로운 계장 생활

by 박계장


세월이 흐르면서 제도도, 사람도 달라진다. 공직사회도 예외는 아니어서 조직의 구조도, 일하는 방식도, 사람을 대하는 태도도 변해왔다. 특히 '계장'이라는 자리는 이름은 같지만, 그 의미는 전혀 다른 것이 되었다.


한때 구청의 6급 계장은 '대한민국에서 가장 편한 자리'라는 말을 들었다. 대부분의 실무는 직원들이 도맡았고, 계장은 책상에 앉아 도장이나 찍는 게 일이었다. 윗선의 간섭도 거의 없었기에, 그 자리는 마치 햇볕 드는 벤치처럼 여겨졌다.


어느 정치인 출신 장관이 "일은 아래에 맡기고, 위에서는 간섭도 없다"고 말하자, 한동안 '계장'이라는 명칭은 '○○담당'으로 바뀌기도 했다. 그러나 이름만 달라졌을 뿐, 실제 역할은 바뀌지 않았다.


나는 9급으로 입직해 21년 만에 6급이 되었고, 3년간 무보직으로 지내다가 뒤늦게 6개월간 구청에서 계장을 맡은 적이 있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그 이름으로 일해본 기억은 내게 소중한 경험으로 남았다. 이후 구청에서 5급 과장으로 2년, 장기교육 1년을 거쳐 지금은 시청에서 계장으로 일하고 있다.


이제 계장은 도장을 찍는 자리가 아니다. 보고서를 다듬고, 시의원에게 사업을 설명하고, 예산을 확보하기 위해 직접 뛰어야 한다. 계장은 더 이상 '서류 위의 직책'이 아니라 '현장에서 함께 뛰는 실무 리더'가 되었다.


그 변화의 배경은 단순하지 않다. 행정은 복잡해졌고, 조직은 젊어졌으며, 직원들은 더 이상 직급만으로 사람을 따르지 않는다. 계장은 앉아 있는 사람이 아니라, 함께 움직이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나 역시 판단이 어려운 순간도 많고, 스스로 부족하다고 느낄 때도 있다. 그래도 직원들과 솔직하게 이야기하며 해답을 함께 찾아가려 노력한다. 요즘 젊은 공직자들은 위계보다 신뢰를, 직급보다 실력을 중시한다. 지시는 설명을 통해 납득으로 이어져야 하고, 말보다 태도에서 리더십을 찾는다.


그래서 지금의 계장은 함께 고민하고, 필요할 때는 뒤에서 밀어주며, 때로는 옆에서 걸음을 맞추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나는 자주 스스로에게 묻는다. 나는 지금, 어떤 계장인가. 아직은 선뜻 답할 수 없다.


그렇지만 하루하루, 조금씩 배우며 내 역할을 다듬어가고 있다. 계장이란 자리는 더 이상 시간을 흘려보내는 자리가 아니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 신뢰를 놓고, 함께 성장하는 자리가 되어야 한다.


나는 지금, 그 자리에 서 있다. 그리고 오늘도, 조금 더 슬기로운 계장이 되기 위해 한 걸음씩 나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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