맑은 하늘이 창문으로 쏟아져 들어오는 오후, 내부 전산망을 통해 인사기록을 살펴보다 유일한 해외출장 기록을 발견했다. 북유럽으로의 그 짧은 여정은 강산이 두 번 변할 만큼의 세월이 흘렀음에도 내 기억 속에 생생히 남아있다. 그 출장에서 만난 사람들을 떠올리니, 서른세 해 공직 생활 동안 스쳐간 수많은 인연들이 물결처럼 밀려온다. 이 인연들은 오랜 시간 정성껏 가꾼 정원처럼 내 삶의 깊은 곳에 뿌리내리고 있다.
어느덧 오십을 훌쩍 넘긴 나이. 중년의 무게를 온전히 느끼는 요즘, 기록 속에 묻혀있던 기억들이 마치 부표처럼 떠오른다. 세월의 무게를 잊게 하는 순간들. 그 순간들이 모여 내 삶의 지도를 완성해 가고 있다.
서구청에 첫 발령 받은 봄날을 잊을 수 없다. 아직 귓불도 마르지 않은 청년의 몸으로, 보건직 공무원이라는 이름표를 달고 세상이라는 바다에 첫 발을 내딛었다. 그날의 벚꽃은 유난히 화사했고, 하늘은 끝없이 넓었다.
임용된 지 얼마 되지 않아 예비군 훈련을 받게 되었다. 송도 예비군 훈련장에서 만난 두 명의 동료는 내 공직 생활의 첫 번째 인연이었다. 힘들었던 훈련이 끝난 저녁, 인근 시장통의 허름한 포장마차에서 우리는 소주잔을 기울였다. 같은 구청에서 근무하는 행정직과 녹지직 두 동료. 세 명의 젊은이는 어깨를 맞대고 앉아 불확실한 미래와 희망에 대해 밤늦도록 이야기했다.
그중 녹지직 직원은 순하고 사교성이 좋았다. 행정직원은 다소 거친 성격이었지만, 녹지직 직원과는 이상하게도 금세 통했다. 한국사람들이 의례 그러듯이 나이 얘기가 나왔고, 그가 나보다 두 살 많다는 것을 알게 되자 형님이라 부르겠다고 했다.
"아니야. 낯선 동네에서 만난 사람들은 위아래 열 살까지는 친구야."
그가 웃으며 손사래를 쳤다. 몇 차례 사양했지만 결국 그의 제안을 받아들였고, 서구에서 근무하던 시간 동안 우리는 정말 절친한 친구가 되었다. 더운 여름에는 작은 자동차를 타고 전국일주를 했고, 서로의 집에도 자주 놀러 다녔다.
어느 날, 그의 집에 방문했을 때였다. 친구의 남동생을 만났는데, 그 동생이 나를 무척 공손하게 대했다. "형님의 친구"라며 차를 내오고 형에게서 얘기 많이 들었다며 깍듯한 존댓말로 응대하였다. 나중에 친구에게 동생이 뭐하는지 물었다.
"아, 너하고 동갑인데 대학교 다녀."
말을 듣는 순간 묘한 기분이 들었다. 어색했다. 같은 해에 태어났는데, 그에게 나는 '형님의 친구'라는 다른 위치에 있었다. 같은 나이라는 공통점보다 관계의 맥락이 우선하는 순간이었다. 그 이후로도 친구네 집에 갈 때면 동생을 만날까 싶어 미묘한 어색함이 밀려왔다. 지금 생각해도 웃음이 나오는 일이다.
세월이 흘러 우리는 각자 결혼을 하고 아이도 얻었다. 서로의 집들이에 초대하며 우정을 이어갔지만, 직장이 달라지고 직렬도 달라서 점점 소식이 뜸해졌다. 그리고 10여 년 전, 시청 14층 복도에서 어디서 본 듯한 사람과 마주쳤다.
자리에 돌아와 내부망으로 검색해 보니 녹지직 그 친구의 동생이었다. 동갑인 그에게 "당신 형님의 친구"라고 말하기도 어색하고, 그렇다고 모른 척하기도 어려웠다. 화장실에서 마주치고, 야근 후 엘리베이터에서 단둘이 내려오는 시간이 이토록 불편할 수 있을까. 그냥 모른 척하며 지냈다. 아마 그도 나를 알고 있었을 텐데, 같은 이유로 아는 척하기가 곤욕스러웠을 것이다.
세월은 그렇게 흘러갔다. 나이라는 보이지 않는 선이 관계를 미묘하게 뒤틀어 놓은 첫 경험이었다.
시청에 처음 전입했던 2007년 무렵, 보건위생과에서 근무하던 시절이 떠오른다. 그해 을지훈련 기간에 내가 맡고 있던 응급의료 업무와 관련하여 원자력 발전소 피폭 상황을 가정한 대응책을 준비하는 임무가 주어졌다. 밤을 새워가며 PPT로 회의자료를 만들고 가능한 모든 상황에 대한 대응 방안을 꼼꼼히 정리했다.
훈련이 끝난 후, 을지훈련을 총괄하는 민방위과에서는 수고한 몇몇 부서의 직원들을 선발하여 원자력발전소 관리 선진지 견학 차 북유럽 공무국외출장을 보내기로 했다. 그 중 한 명으로 나를 추천했다.
처음에는 사양했다. "제가 시에 전입온 지 얼마 안 됐고, 부서에서 가장 말석인데 어떻게 가겠습니까?"
그러나 담당자는 고집을 부렸다. "유공자 추천이 아니라 업무담당자로 지정해서 공문을 보내겠습니다."
그렇게 공직생활에서 유일한 국외출장의 기회가 찾아왔다. 출장팀은 퇴직을 앞둔 민방위과 계장님, 현업에서 고생하는 운전직 직원, 다른 과 직원, 그리고 을지훈련 담당 직원과 나, 이렇게 다섯 명이었다.
그중에서 민방위과의 을지훈련 담당 직원이 특히 인상적이었다. 북유럽이라는 낯선 곳에서 그의 호탕하고 밝은 성격은 우리 일행에게 큰 위안이 되었다. 여러 날을 함께 지내다 보니 자연스레 그와 많은 대화를 나누게 되었고, 비슷한 관심사와 가치관을 발견하며 친분을 쌓았다.
돌아오는 비행기 안에서 나이 이야기가 나왔고, 그가 나보다 한 살 어리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이국땅에서 함께 보낸 시간이 만들어준 우정이었기에 망설임 없이 말했다.
"우리 친구하자."
그가 나이 차이를 이유로 망설이자, "나도 두 살 많은 친구가 있어"라며 설득했다. 지금도 그와는 자주 만나고 연락하며 두터운 우정을 이어가고 있다.
이런 인연의 줄기는 때로 예상치 못한 곳에서 얽히기도 한다. 25년 전 북구청에 근무할 당시, 같은 고등학교 동문들과 정기적인 모임을 가졌다. 구청에는 여러 기수의 선후배 동문들이 있었다.
내성적인 성격에도 불구하고 한 선배와는 격의 없이 지냈다. 거의 말을 놓다시피 하며 친구처럼 어울렸다. 반면 바로 밑의 후배는 나를 무척 존중하는 태도로 대했는데, 이것이 오히려 불편하게 느껴졌다.
그 후배는 고등학교 시절 내 모습을 또렷이 기억하고 있었다. 내가 기숙사 생활을 할 때 식사를 위해 줄을 서서 계단을 내려가는 동안 책을 읽던 모습을 자주 보았다고 했다. 그의 기억 속에 '단정한 모범생'으로 남아 있었던 모양이다. 실상은 그렇지도 않았는데 말이다.
그 후배와는 시청으로 근무지를 옮긴 이후에도 가끔 따로 만나 술잔을 기울였다. 어느 날 북유럽 출장에서 만난 친구 이야기를 했더니, 후배가 그가 자신의 중학교 동창 같다고 했다. 이름을 확인해보니 정말 그랬다. 놀랍게도 후배의 중학교 친구가 내 친구였던 것이다.
"우리 셋이 한자리에 모이면 개족보가 되겠네." 내가 농담 삼아 말하자 그 자리에 있던 우리 모두 웃음이 터졌다. 후배는 그 자리에서 바로 친구에게 전화를 걸어 나와도 통화를 시켜주었다. 알고 보니 세상은 정말 좁았다. 서로 다른 인연의 줄기가 이렇게 얽히고설켜 하나로 연결된다는 사실이 묘하게 느껴졌다.
공직 생활 서른세 해 동안 마음을 터놓고 지내는 동료는 그리 많지 않다. 동래구청 식품위생계장으로 부임했을 때 만난 젊은 남자 직원은 특별한 인연 중 하나였다. 키가 190센티미터가 넘고 체격도 좋은 그야말로 거구였지만, 성격은 쾌활하고 위트가 넘쳤다.
함께 근무한 기간은 겨우 반년이었지만, 각별한 친분을 쌓았다. 내가 먼저 시청으로 전입해 온 후, 그를 추천해 같은 부서에서 다시 만날 수 있었다.
그는 어릴 때 부모를 잃고 형편이 좋지 않은 삼촌 집에서 자랐다고 했다. 사촌들 사이에서 늘 눈치를 보며 지냈던 어려운 유년 시절. 그런 환경 속에서도 그는 참 곧은 사람으로 성장했다. 타인에 대한 배려가 깊었고 자신의 신념을 중요하게 여겼다.
바쁜 업무 중에도 자신만의 시간을 만들어 혼자 여행을 다니곤 했다. 한번은 설날 응급의료 비상근무 중 순직한 의사 소식을 듣고, 개인적인 친분도 없이 같은 업무에 종사했을 뿐인데도 휴가를 내어 서울까지 조문을 다녀왔다. 그 이야기를 들었을 때 나는 그의 인간됨에 깊은 감동을 받았다.
젊은 그에게서 나는 오히려 삶의 태도를 배웠다. 지금도 특별한 일이 없으면 아침마다 함께 커피 한 잔을 나누며 하루를 시작한다.
내 공직 생활에서 항상 마음속에 남아 있는 선배가 있다. 늘 내 일처리를 칭찬해 주던 그분은 선배라기보다 인생의 스승 같았다. 빠르게 승진하여 계장, 과장, 소장을 거쳐 결국 부구청장으로 퇴직한 그는 지금도 내게 인생의 나침반이다. 퇴직했어도 자주 연락하고 어려운 일이 있을 때마다 찾게 되는 버팀목이다. 최근 그가 큰 병으로 힘겨워한다는 소식에 마음이 무겁다. 오래도록 함께 걸었던 길, 앞으로도 그 길을 함께 걸을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란다.
직장 생활을 하다 보면 문득 깨닫는 순간들이 있다. 나이보다 역할이 중요하다는 것. 젊은 상사에게 업무를 배우고, 연장자인 부하직원을 지도하는 일이 이제는 자연스러워졌다. 나이는 단지 살아온 시간의 숫자일 뿐, 그것으로 사람의 가치나 관계가 결정되지 않는다. 이제는 나보다 훨씬 어린 상사들도 있고, 앞으로는 그런 경우가 더 많아질 것이다. 하지만 그것이 어색하지 않다. 각자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는 모습이 더 중요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으니까.
어느새 내가 선배가 되었다. 새로 들어온 직원들이 인사를 건넬 때면, 서른 해 전 내 모습이 겹쳐 보인다. 떨리는 손으로 첫 결재를 올리던 날, 처음 만난 민원인 앞에서 더듬거리던 목소리, 선배들의 작은 칭찬에 하루 종일 기뻐하던 그때. 이제는 내가 그들에게 작은 격려와 위로를 건네는 위치가 되었다. 시간의 흐름이 만든 자연스러운 순환이다.
잠시 업무에서 벗어나 창가로 다가가 바깥을 내다본다. 창밖 건물들 너머로 하늘이 넓게 펼쳐져 있다. 오후의 햇살이 빌딩 유리창에 반사되어 주변을 반짝이게 한다. 이 풍경을 바라보며 문득 생각한다.
강물처럼 흘러가는 세월 속에서도 영원히 남는 것들이 있다. 함께 웃고, 때로는 어깨를 빌려주며 쌓아온 관계들은 공직 생활의 진정한 보물이다. 메마르고 딱딱하게만 느껴지는 관공서의 복도에서도, 따스한 인간미가 흐르는 순간들이 있다. 그 순간들이 모여 내 삶을 풍요롭게 했다
이제 공직 생활의 마침표를 찍을 날도 머지않았다. 돌아보면 수많은 서류와 결재보다, 함께 걸어온 사람들의 얼굴이 더 선명하게 떠오른다. 숫자가 아닌 마음으로 맺어진 인연들이 내 삶을 풍요롭게 만들었다. 그것이 내 공직 생활의 가장 값진 선물이다.
오늘도 청사 복도를 걸으며 마주치는 얼굴들 속에는 또 다른 인연이 숨어 있을지 모른다. 스치듯 나누는 인사 한마디, 짧은 복도 대화가 누군가에게는 오래도록 기억될지도 모를 일이다. 우리는 알게 모르게 서로의 삶에 작은 흔적을 남기며 살아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