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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이 환하던 그날 밤

by 박계장

겨울밤의 달은 유난히 크고 밝았다. 초저녁에 잠이 들었다가 눈을 떴을 때, 방 안에 쏟아지는 달빛이 너무 밝아 아침인 줄 알았다. 창문 너머로 보이는 하늘은 맑았고, 가끔 살짝 떠오르는 구름이 달을 가렸다가 사라지곤 했다.


집에서 멀지 않은 통조림 공장에서 밤늦게까지 잔업을 하고 돌아오신 어머니는 피곤한 몸으로 부엌에서 이런저런 집안일을 하고 계셨다. 아버지는 몇 달째 통신선로 공사 일용인부로 타지에 일하러 나가셨고, 세 명의 어린 동생들은 깊은 잠에 빠져 있었다.


어머니는 술주정이 심하고 책임감이 없던 아버지를 대신해 시간을 쪼개 일을 하셨다. 동생들이 어릴 때는 집에서 부업을 하셨고, 숙모와 함께 시장 난전에서 옷을 팔기도 했으며, 합판공장, 통조림 공장을 가리지 않고 일하셨다. 어린 나이에 네 명의 자식을 먹여 살리려고 무던히도 종종거리셨지만, 형편은 좀처럼 나아지지 않았다.


잠에서 깬 나를 발견한 어머니는 "라면이라도 끓여 줄까?" 하고 물으셨다. 그 시절, 라면은 우리 가족에게 특별한 음식이었다. 어쩌다 아버지나 어머니의 봉급날에 한 박스씩 사서 다락방에 쌓아두면 세상을 다 가진 것 같은 기분이었다. 동생들과 다락방을 오르내리며 생라면을 간식처럼 먹기도 하고 끓여 먹기도 했다.


어머니가 건네주신 백 원짜리 동전 두 개를 꼭 쥐고, 서른 가구 남짓 얼기설기 이어진 가난한 동네의 골목길을 달렸다. 겨울밤의 공기는 상쾌했고, 하늘에 떠 있는 달은 너무 밝아 골목길을 환하게 비추었다. 그 순간만큼은 세상의 모든 걱정거리를 잊었다.

마을에 하나뿐인 점방은 그저 누군가의 부엌이 가게로 변한 곳이었다. 방 하나, 부엌 하나인 셋방에서 주인은 과자와 라면, 작은 생필품들을 조금씩 진열해 팔고 있었다. 원래 제품 이름은 농심이었지만 다들 겉봉지의 볏단을 지고 있는 농부 그림을 보고 '의좋은 형제' 라면이라고 하였던 그 라면 두 개를 골라 백 원 동전 두 개를 건네자, 주인은 십 원짜리 동전 두 개를 거스름돈으로 돌려주었다.

집으로 달려와 보니 어머니는 이미 노란 양은 냄비를 연탄불 위에 올려놓고 계셨다. 초저녁에 이미 동생들과 김치볶음밥을 만들어 배부르게 먹었음에도, 한숨 자고 나면 다시 출출해질 만큼 먹성이 좋을 때였다. 어머니는 우물가 김칫독에서 꺼낸 시원한 김장김치와 함께 양은 냄비 가득 라면을 끓여주셨다.

꼬들꼬들한 면발을 냄비 뚜껑에 덜어 먹던 그 맛은, 지금도 잊을 수 없을 만큼 특별했다. 라면을 맛있게 먹는 내 모습을 보시며 어머니는 흐뭇한 미소를 지으셨다. 하루 종일 공장에서 일하고 집에 와서도 피곤한 몸으로 집안일을 해야 했던 어머니에게, 내가 음식을 맛있게 먹는 모습은 그 모든 피로를 잠시나마 잊게 해주는 작은 위안이었을지 모르겠다.


지금도 달빛이 환하게 비추던 겨울밤의 풍경과 양은 냄비 속의 '의좋은 형제' 라면은 내 기억에 선명하게 남아있다. 돌이켜보면 어머니는 철없던 나를 위해 자신이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해주셨다. 네 명의 아이를 거의 혼자 키우다 시피하는 어려운 상황에서도 우리에게 만큼은 온갖 정성을 다하셨다.


얼마 전 농심에서 창립 60주년을 맞아 그때 그 라면을 재출시했다는 소식을 듣고 설레는 마음으로 구입해 먹어봤다. 최근 소비자 입맛에 맞게 업그레이드했다고 하더니 역시 그때 맛은 아니었다. 그 맛은 아마도 어려운 형편에 야식을 혼자 먹는 횡재를 했던 기분, 피곤해도 자식을 위해 라면을 끓여주시던 젊은 어머니에 대한 추억 같은 것이 함께 어우러져 특별했던 것 같다.

지금까지 그때 먹었던 그 라면보다 맛있는 라면을 먹어본 적이 없다. 가끔 그 맛이 생각나곤 한다. 하지만 그건 단순한 음식의 맛이 아닌, 그 시절에 대한 그리움일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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