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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처럼 맑은 하늘

황사가 걷히니 그 하늘이 생각났다.

by 박계장

며칠째 이어지던 황사가 걷히고, 모처럼 맑은 하늘이 드러났다.
먼지에 덮여 있던 공기에 푸른빛이 번져오자, 오래전 고향의 하늘이 떠올랐다.


나는 부산 강서구 대저동에서 태어났다. 그러나 초등학교 2학년 무렵 아버지의 일터를 따라 용호동으로 이사했다. 출생지는 대저동이지만, 용호동은 또 다른 고향인 셈이다. 아주 어린 시절 서연정에서 뛰놀던 기억도 남아 있지만, 자라난 기억은 대부분 용호동에서 비롯되었기 때문이다. 뿌리는 대저동에 있고, 가지와 잎은 용호동에서 자란 셈이다.


서연정의 들판은 내 첫 놀이터였다. 여름이면 메뚜기를 쫓아 풀잎을 손에 묻히고, 도랑에서 미꾸라지를 잡다 해가 저무는 줄도 몰랐다. 비 오는 날이면 외삼촌과 함께 논둑을 따라 나섰다. 비료 포대를 우비 삼아 뒤집어쓰고 흙탕물을 몰면, 외삼촌은 채를 들고 기다렸다. 물살에 휩쓸려 내려온 미꾸라지가 채 위에서 펄떡거릴 때면 손은 시렸지만 웃음이 먼저 터졌다. 흙냄새와 빗소리, 물비린내가 뒤섞인 공기가 지금도 코끝에 남아 있다.


늦여름이면 마을 뒷못에서 물밤을 땄다. 가시투성이 열매라 손이 성치 않았지만, 삶아 먹으면 고소하고 달았다. 허리를 굽혀 물속을 더듬던 순간, 흙탕물이 튀고 아이들의 웃음이 이어졌다. 그 맛은 지금도 혀끝에 남아 있다. 고단한 날이면 문득 그때의 물밤 맛이 그리워진다.


용호동에 정착한 뒤의 기억은 또렷하다. 세 평 남짓한 단칸방에서 여섯 식구가 함께 살았다. 연탄 한 장으로는 겨울을 버티기 어려웠다. 아랫목은 뜨거워 비닐장판이 눌어붙었고, 윗목은 외투를 껴입어도 추웠다. 새벽이면 숨결이 천장에 얼어붙었다가 아침에 물방울이 되어 떨어졌다. 그 물방울은 우리 가족의 하루를 깨우는 알람이었다. 불편했지만, 그 방에서 나는 가족이라는 이름의 온기를 배웠다.


스물둘, 나는 공직에 첫발을 내디뎠다. 첫 공문서를 작성할 때 손끝이 떨렸고, 시행문 하나를 올리면서도 숨을 고르며 신중을 기했다. 첫 월급날 부모님께 빨간 내복을 선물했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초임때부터 지금까지 업무를 처리할 때마다 상대의 입장을 헤아리려 애썼다. 원칙을 지켜야 하지만, 감사의 지적을 감수하더라도 적극적으로 업무를 처리했다. 그 마음을 알아준 민원인도 있었다. 10여 년이 지났지만 지금까지 그때 소신있게 처리해 준 일을 고마워하는 대형 판매업소 점장이 있다. 수만 가지 제품을 취급하는 그곳에서 유통기한이 지난 가공식품 한 개가 진열된 탓에 영업정지 7일 처분 위기에 놓였지만, 고의성이 없고 신고자 신원도 불분명해 허위 신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어 처분을 면해 주었던 일이었다.


공직생활이 언제나 보람으로만 채워진 것은 아니었다. 1999년 IMF 시절, 나는 식품접객업소 행정처분 업무를 맡았다. 국세가 체납된 업소에 대한 허가취소 요구가 내려왔지만, 계장님은 관행대로 계고장만 보내라 지시했다. 나는 의문을 품었으나 따를 수밖에 없었다. 감사가 시작되자 그는 “나는 몰랐다”라며 발을 뺐다. 그 순간의 당혹감은 오래 남았다. 그리고 다짐했다. 나는 저런 상사는 되지 말아야지.


쓰라린 기억만 있는 것은 아니다. 2000년대 후반, 광역정신건강복지센터 설치 공모에 도전한 일이 있다. 아무도 주목하지 않던 사업이었지만, 나는 밤늦도록 사무실 불을 밝히며 계획서를 썼다. 결국 부산은 대구와의 경쟁에서 선정되었다. 예산은 네 배로 늘었고, 넓은 사무공간과 회의실이 생겼다. 무엇보다 시민을 위한 정신건강 서비스가 확충되었다는 사실에 큰 보람을 느꼈다. 지금도 지하철역에 붙은 센터 홍보물을 볼 때면, 작은 시작이 여전히 이어지고 있음을 실감한다.


이제 공직생활의 끝자락에 서 있다. 가끔 길에서 퇴직한 선배를 만난다. 어떤 이는 눈을 피하고, 어떤 이는 어색하게 인사한다. 아마 현직 시절의 기억이 편치 않기 때문일 것이다. 나는 후배와 눈을 마주보며 “잘 지내나?” 하고 웃으며 등을 두드려 줄 수 있는 선배이고 싶다.


돌아보면, 고향에서 배운 것들이 내 삶을 지탱하는 뿌리였다. 서연정에서 흙을 밟으며 배운 끈기, 용호동 단칸방에서 가족과 몸을 맞대고 지내며 알게 된 온기와 연대가 공직의 길을 걸어가는 힘이 되었다. 태어난 곳은 대저동이지만, 사람으로 자라난 곳은 용호동이었고, 그 기억들이 지금의 나를 만들었다.


오늘 하늘은 맑다. 세월이 얼굴에 흔적을 남겼지만, 마음속 고향의 하늘은 여전히 푸르다. 황사가 걷힌 이 하늘처럼, 어린 날의 기억은 지금도 나의 길을 비추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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