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등학교에 입학하고 여름방학을 앞둔 어느 날, 우리 집에 강아지 한 마리가 들어왔다. 외조부가 어디선가 얻어온 누런 털의 새끼였다. 눈도 제대로 뜨지 못한 채 안겨온 녀석은 손바닥만 했다. 당시 우리는 세 들어 살았지만, 마당이 넉넉해 강아지 한 마리쯤은 키우는 데 무리가 없었다.
그 시절 개는 집을 지키는 존재였다. 마당 한켠에 묶여 낯선 사람을 경계하고, 때가 되면 개장수 손에 넘어가 복날 누군가의 식탁에 오르기도 했다. 으르렁거리며 짖고, 체구도 크고 다소 거칠어야 ‘집 지키는 개’로 제 역할을 한다고 여겨졌다. 하지만 우리 집에 온 이 강아지는 그런 틀에 어울리지 않았다. 아직 눈도 채 뜨지 않은 작은 몸으로 품 안을 파고들었고, 낯선 이를 향해 짖는 대신 오히려 품에 안기기를 좋아했다. 낯가림도 없고, 울음도 작았다. 겁이 많고 조용한 녀석이었다. 나는 첫날부터 녀석에게 마음을 빼앗겼다.
한여름 오후, 나는 개집을 만들기로 했다. 마을을 돌며 주워온 폐목재를 마당에 쌓고, 톱과 망치만으로 집을 짓기 시작했다. 서툰 손으로 하루를 꼬박 보내 만든 작은 집. 완성하고 보니 이름이 없었다. 뭔가 그럴듯한 이름을 붙이고 싶어 사전을 펼쳤다. 눈에 들어온 단어가 ‘PET’이었다. 뜻도 모른 채 발음이 좋다는 이유로 골랐다. 나는 개집 처마 밑에 ‘PET’S HOUSE’라 써붙였다. 그날 밤, 피부는 햇볕에 달아올랐고 몸살이 났지만, 기분만은 좋았다.
‘페트’라는 이름을 얻은 녀석은 나를 잘 따랐다. 어미와 떨어져 낯선 곳에 온 어린 강아지에게 나는 아마도 가장 익숙한 존재였을 것이다. 내가 어디를 가든 따라다녔고, 줄에 묶지 않아도 해질 무렵이면 알아서 집으로 돌아왔다. 어머니가 운영하던 반찬가게 앞에서는 하루 종일 자리를 지켰다. 내가 집에 돌아올 때면, 멀리서부터 달려 나와 반겨주었다.
훈련을 시킨 적은 없지만, 페트는 얌전하고 똑똑했다. 동네 사람들과도 잘 지냈고 말썽을 부리는 일도 없었다. 그렇게 녀석은 어느새 우리 가족이 되어 있었다.
고1 여름방학이 끝날 무렵, 페트는 제법 자라 있었다. 어느새 낯선 사람에게 짖는 개가 되어 있었고, 마당도 잘 지켰다. 그런데 어머니 가게에 "개털이 날린다"는 소문이 돌았다. 결국 부모님은 고민 끝에 녀석을 개장수에게 넘기기로 했다.
짐자전거를 끌고 온 개장수가 "개 사요!"를 외쳤다. 아버지는 페트를 불렀지만 녀석은 움직이지 않았다. 아버지는 내게 “네가 부르면 올 거다”라고 말했다.
"페트야."
내가 부르자, 녀석은 경계를 풀고 곧장 달려왔다. 나는 녀석의 머리를 쓰다듬고 목줄을 벗겨 아버지 손에 넘겼다. 곧이어 페트는 우리에 갇혔다. 짖지 않았다. 대신, 낮고 짧은 낑낑거림이 들렸다.
그날 저녁, 가족은 페트를 판 돈으로 돼지고기를 사와 구워 먹었다. 고기는 평소보다 맛있었지만, 나는 젓가락을 놓고 한참을 말없이 앉아 있었다. 밤이 되어도 잠들지 못했다. 녀석은 분명 내가 자신을 지켜줄 거라 믿었을 텐데, 그 믿음을 저버렸다는 생각에 마음이 편치 않았다.
몇 해 전, 함께 일하던 직원이 반려견 이야기를 꺼낸 적이 있다. 그는 17년간 키운 개를 떠나보냈다고 했다. 시력을 잃은 개는 냄새와 소리로 주인을 구별했고, 끝내 병을 이기지 못했다고 했다. 마지막 순간, 개가 남은 힘을 다해 자신에게 다가왔고, 가족 모두가 울었다고 했다. 장례는 반려동물 전용 화장장에서 치렀다며, “그렇게라도 보내주고 싶었다”고 말했다.
몇몇 직원은 “그냥 개인데”라며 고개를 갸웃했지만, 나는 그 말이 이해됐다. ‘가족을 잃은 것 같은 상실감’이라는 말이 낯설지 않았다. 그 순간, 페트가 떠올랐다.
페트는 아마 복날의 제물이 되었을 것이다. 가끔 생각한다. 그때 내가 끝까지 버텼다면, 페트를 지켜낼 수 있었을까. 하지만 나는 맏아들이었고, 집안 사정을 모른 체할 수 없었다. 그래서 아무 말도 하지 못한 채 순순히 따랐다.
나는 가끔 그런 생각도 한다. 다음 생에는 페트가 사람이 되어 태어났으면 좋겠다고. 하지만 사람으로 태어났다고 해서 꼭 더 행복할까. 사람도 견디기 힘든 삶의 무게를 안고 살아가니까.
요즘은 다시 강아지 한마리 키우고 싶다. 퇴근하고 돌아왔을 때 반갑게 달려와 꼬리를 흔드는 그런 존재가 그립다. 아무 조건 없이 나를 반겨주고, 언제나 내 편이 되어주고. 내가 자신의 우주인 그런 친구를 만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