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임 직전 몇 해, 퇴행성 관절염으로 꽤나 고생을 했다. 조금만 무리해도 계단 하나 오르내리기가 어려웠고, 몇 날 며칠 통증에 시달려야 했다. 정기적으로 정형외과에 들러 고름을 빼고, 영양제와 연골주사를 맞았다. 그 무렵부터 운전대를 놓았고, 등산 등도 피하게 됐다. 통증이 심할 때는 한 발짝 떼는 것도 고역이었고, 교직 생활에 온전히 집중하기 어려웠다. 먼저는 눈이 나빠져 돋보기 없이 서류 처리를 할 수 없게 되었고, 이어 어깨, 팔등도 만만치 않더니 양쪽 무릎이 제대로 고장 난 것이다. 2000년대 초 G고 근무 시절, 오른쪽 다리를 다쳐 몇 달 깁스를 했던 적이 있다. 당시 제대로 치료하지 않고 학교에서 숙식하며 술. 담배로 시간을 죽이며 보냈다. 젊어서 몸을 막 굴린 대가를 나이 들어서야 치르게 된 셈이다.
체질적으로 땀나게 몸을 굴려 운동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을뿐더러 게을렀다. 거기에 더해 과도한 음주, 흡연과 불규칙한 식사 등이 몸의 고장으로 나타난 것이다. 퇴직 이후에야 짬을 내 ‘종합건강검진’을 받았다. 겉뿐만 아니라 속도 좋을 리 없었다. 간과 폐에 주의를 받았다. 결과를 받고 즉시 술, 담배를 끊기로 마음먹었다. 혼자의 의지로 쉬운 일이 아니었다. 국가에서 운영하는 숙박형 무료 금연센터에 일주일간 입소했다. 퇴소 후 지금까지 한 모금의 술도 한 개비의 담배도 입에 대지 않고 있다. 매일 술을 달고 살며, 니코틴에 전전긍긍하던 내게 기적 같은 일이다. 가끔은 스스로가 기특하고도 놀랍다.
지금도 6개월에 한 번 대학병원에 들러 진료를 받는다. 폐 상태는 조금 호전돼 지난 9월 진료 시, 담당의가 “이제 1년에 한 번만 오라”고 했다. 간에 있는 정체불명의 작은 점 크기의 결절도 더 이상 진전 없이 그대로 멈춰 있다. 무릎 통증도 교직 시절처럼 무리하게 서 있을 일이 없으니, 4년 가까이 병원 문턱을 끊었다.
무엇보다 오랜 직장 스트레스에서 벗어난 것이 가장 컸다. 규칙적인 생활이 마음에 여유를 가져다주었다. 집안일을 기꺼이 돕고, 아이들의 일상을 챙길 수 있는 시간도 많아졌다. 더구나 평생 품어온 바람이던 ‘제대로 된 작업실 활용’에서 오는 충만함은 이루 말할 수 없다. 대학을 졸업한 이래 줄곧 작업실 공간을 곁에 두고 살아왔다. 그러나 이름만 그럴듯한 ‘작업실’이었지, 실은 방치된 잉여 공간이나 다름없었다. 퇴근 후 집에 들러 가족 용무를 본 뒤, 늦은 밤이 되어서야 간신히 개인 시간을 확보하곤 했다. 그리고 다음 날 아침엔 다시 출근. 그 반복은 몸과 마음을 지치게 했다. 늦은 밤 작업실에서 혼술로 지친 하루를 마감하는 날이 다반사였고, 술에 쩔어 기절하듯 쓰러져 자고는 비몽사몽 직장으로 향하던 날들이 이어졌다. 부끄럽고 민망한 지난 시간이었다. 오죽하면 집사람이 “명패를 작업실이 아니라, ‘황가네 술집’으로 바꿔 달라!”라고 잔소리를 했을까. 이제 와 황혼 녘에 정신 차리고, 꿈을 좇아가려니 건강은 필수가 되었다.
지금의 내 몸과 주변 여건에 비추어 가장 잘 맞는 운동은 단연 ‘평지를 많이 걷는 것’이다. 집 인근 공터를 빠른 걸음으로 걷고 야외에 놓여있는 간단한 공용 헬스 기구로 팔, 다리, 어깨 운동 등을 한다. 무리하지 않고 만 보 넘게 하는 정도이다. 물론 가까운 작업실도 걸어 다닌다. 걸으며 지난 일을 되새기고 그날의 할 일을 미리 그려보기도 한다. 주변의 흔한 풍경과 사람을 새삼스레 주목해 보기도 한다. 가끔은 좀 멀리 시민체육관 트랙을 걷고 주변 맛집에서 점심을 먹고 돌아오기도 한다. 한껏 여유를 부리며 아랫배가 살짝 튀어나온 채로.
그러고 보면 젊은 날부터 나의 취미는 ‘걷기’였던 거 같다. 당구, 화투. 게임 같은 일상 속 오락엔 젬병이었다. 직장에 다니면서도 동료들 사이에 만연하던 테니스, 배드민턴 등도 관심이 없었다. 또한 등산, 자전거 등과 식도락 동호회에 발을 들이거나 관심을 보인 적도 없다. 혼자 영화를 보거나 서점이나 도서관에 가 미술 서적, 잡지 등을 뒤적이는 게 고작이었다. 그저 혼자 ‘병든 노란 병아리’처럼 이리저리 쏘다니던 기억이 있다. 20대 초반, 이문동 살 때는 중랑천 뚝방을 하염없이 걷고 돌아오곤 했다. 생전의 어머니가 “어디 가니?” 물으면 “산책하러 가요” 대답했다. 그러면 “산책은 무슨 산책, 죽은 책!” 하고 등 뒤로 날아오던 잔소리가 이젠 그리운 추억이 되었다.
그리고 지금, 나는 집 근처 시립도서관 4층, ‘노트북 열람실’에 앉아 이 글을 쓰고 있다. 맞은편 열람실에서는 큰아이가 공부 중이다. 몇 시간이 지나면 우리는 함께 걸어 집으로 향할 것이다. 아이는 제 책가방을 둘러메고 늘 그렇듯 말없이 앞장선다. 걸음이 빠르고 묻는 말에야 마지못해 짧게 답하는 아이 뒤를 아빠는 조용히 따른다. 터질 듯 빵빵한 검은 백팩을 짊어진 채 언제나 그랬듯 우리는 걷는다. 한 사람은 앞서고, 한 사람은 뒤따르며.
2025. 5. 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