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 김용_한국교원대학교 교수
지난해 여름 거리를 달군 뜨거운 함성은 교권4법과 아동학대처벌법을 개정하는 성과를 거두며 막을 내렸다. 불합리하고 집요한 학부모 민원을 한 사람의 교사가 오롯이 감당해야 하는 일이 바뀔 수도 있다. 아동학대 신고가 접수되기만 하면 곧바로 교사직을 잠시 그만두게 하는 잘못된 관행은 바로잡힐 것이다. 분명한 진전이고 성과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성과 뒤에 그늘이 드리워진 것도 사실이다. 지난 십여 년 동안 학교자치를 진전시켜가는 과정에서 학부모를 교육 주체로 인정하고, 교사와 학부모의 파트너십을 형성하고자 하는 움직임이 활발했으나, 근래 학부모와의 협력과 같은 논의는 가뭇없이 사라졌다. 오히려 “학부모 = 민원인” 등식이 자리를 잡았다. 지난 가을 개정된 법률 중에는 교사와 학부모를 대립적 관계로 상정하고, 학부모 권리를 위축시킬 소지가 있는 내용도 있다. 법률 개정이 교사와 학부모의 협력 관계를 촉진하기보다 둘 사이에 벽을 쌓고 관계를 단절시킬 위험도 있다.
사실 학교는 관계의 위기를 다층적으로 경험하고 있다. 우선 아이들이 관계의 위기를 겪고 있다. 친구를 사귀지 못하는 아이들이 늘고 있다. 친구가 있다손 치더라도 그들과 친밀한 관계를 맺지 못하는 아이들이 많다. 반면 스마트폰과 친구를 맺는 아이들은 늘어나고 있다. 교직원들 관계에서도 위기가 심화하고 있다. 성과급과 평가 등 기제가 학교에 들어오면서 교사들 사이의 관계가 차츰 파편화하고 있다. 학교에 수많은 직종의 사람들이 들어오고 있지만, 각자 자신들의 작은 이익을 주장할 뿐, 함께 일하는 슬기를 발휘하지는 못하고 있다. 지난여름을 겪고 나서는 교사와 학부모 관계에도 위기감이 높아지고 있다. 관계의 위기. 이것이 오늘날 학교의 현실이자 과제이다.
교사 전문성을 주장하는 목소리는 꾸준히 높아지고 있다. 그런데, 근래의 전문성 논의는 축소 지향적, 자기 폐쇄적 속성을 띤다. “교사 전문성 = 교과 전문성 또는 수업 전문성”이라는 식의 등식을 설파하는 목소리가 높다. 이 주장이 잘못된 것은 아니다. 그러나, 아이들에 대한 이해와 아이들과의 관계 맺기를 강조할 때만 이 주장은 빛을 발할 수 있다. 근래 교사 전문성 논의는 아이들, 부모들, 동료들과의 관계를 빠뜨리고 있다. 전문성을 강조하면서 교사는 스스로 자기 일을 좁혀간다. 전문성을 강조하면서 교사는 아이들, 보호자들을 바라보는 눈을 교육과정으로 돌린다. 학교가 하나의 팀이 되고, 여러 사람이 협력해야 하는 필요는 높아지지만, 근래의 전문성 논의는 이런 요구를 담아내지 못한다. 공허한 전문성 논의라고 할 수 있다.
우리는 인구 위기, 지역 위기, 글로벌 차원의 기후 위기 등 복합적 위기를 겪고 있다. 지난 시기 경제 발전의 도구 역할을 감당했던 것 이상으로 교육은 매우 중요한 사회적 역할을 요구받고 있다. 교육의 개념을 확장하여, 전 지구적 관점, 평생학습 관점에서 교육을 고민할 필요가 있다. 학교 기능을 복합화하여 모름지기 지역 속의 학교로서 자리를 잡아야 한다. 위험에 노출된 아이들 한 사람 한 사람의 정체성을 분명히 세워주는 일이 시급하고 절실하다. 이런 일의 핵심에 교사가 있다. 교사의 역할을 더 확대해야 한다. 교사 전문성을 확장해야 한다. 교사는 사람 전문가, 관계 전문가가 되어야 한다.
그러나, 이미 학교 안에 벽이 높다. 근래 그 벽이 더 높고 단단해지고 있다. 위기이다. 관계의 벽을 허물고 많은 사람이 유기적으로 결합하도록 변화해야 한다. 교사의 관계 전문성에 문제 해결의 단초가 있다.
2023 겨울 호 목차
1. 시론
2. 특집
3. 티처뷰
4. 이 책 한 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