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 새로운학교지원센터
“다른 선생님들은 저에게 지적하지 않는데, 선생님은 왜 그러세요?”
“다른 학생들도 그랬다고요!”
교사는 학생을 열심히 교육하고 지도하려고 할 때, 이런 말을 들으면 힘이 빠질 때가 있다. 이는 교사의 소진과 관련될 수 있으며, 생활교육과 생활지도에 의미와 방법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만들고 있다.
최근 초중고 학생들이나 청년 세대에게 ‘공정’은 중요한 이슈이다.
(‘공정(公正)’의 사전적 정의는 “공평하고 올바름”으로 “어느 쪽으로도 치우치지 않고 고른 상태”를 의미하는 공평(公平)과 “진리에 맞는 올바른 도리”의 의미가 있으면서 “소수자나 약자에 대한 배려와 보호”의 의미를 부연하는 정의(正義)가 공존하는 개념으로 간주하고 있다(출처: 조진주, 박재현, 이관희, 김지연(2019). ‘공정성’의 국어 개념적 개념화 방향 탐색. 국어교육연구, 71,93-134.))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이 강해지고, 저성장 시대를 겪으면서 초중고 학생들과 MZ세대들은 타 세대에 비해 미래보다 현재를 중시하는 성향이 강하다. 그리고 막연한 미래 보상보다 현재의 즉각적이고 예측할 수 있는 평가 기준과 그에 합당한 보상을 선호한다. 즉 공정에 대한 개념은 한정된 자원에 대한 분배를 최대한 합리화하기 위한 접근과 관련이 있다.
공정성 인식에 관한 연구로, 학생들이 일상생활에서 중요하다고 느끼는 칭찬, 성적, 물질적 부에 대한 분배 기준(능력, 노력, 필요)은 무엇이 되어야 하는지 조사한 결과는 다음과 같다.
※ 노력(수행에 투여한 시간), 능력(수행에 있어서 실질적 기여도), 필요(보상을 필요로 하는 정도)
연구 결과, 학생들은 중고등학교에 상관없이 분배기준으로 능력을 가장 선호하였으며, 노력, 필요를 다음 순으로 중시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능력을 중시하는 학생일수록 자신에 대한 불공정 대우에 대한 민감성이 높았다.
반면 상대적으로 노력을 중시하는 학생은 사회적 공정성, 개인 간 출발선에 차이가 있고, 출발선부터 불평등이 있어 이를 고려해야 한다고 인식하고 있었다. 즉 절차 공정성을 강조하는 청소년 세대에도 불평등한 출발점이 더 이상 벌어지지 않기를 바라는 학생들도 존재한다.
이는 미래사회를 살아가는 학생들을 위한 우리 교육의 방향성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만든다. 학교 교육은 능력주의를 견고히 하고 ‘나’라는 개인의 불공정에만 대한 관심을 갖도록 하기보다는 모두가 함께 잘 살 수 있도록 하는 방향에 대해 고민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생활교육의 방향도 그 방향으로 맞추어 함께 고민해야 할 것이다.
교실까지 들어온 혐오
최근 잇달아 정치인들이 피격당하고 있는 사건이 일어나고 있다. 이 중 두 번째 사건의 가해자가 중학생이라는 것이 알려지고, 사건 발생 전날에 에펨 코리아 게시판에 올린 글의 내용이 기사화되면서 다시 한번 교실까지 들어온 혐오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교실에서 발생하는 혐오 주제는 성별, 장애, 외모, 인종 등 다양하다. 이중 여성 혐오가 가장 두드러지게 나타나고 있다. 특히 외모에 대한 성차별적인 언어들은 계속 증가하면서 교실에서 젠더 이슈가 지배적이다. 다양성을 인정하지 않는 여러 교실 속 상황은 학생의 긍정적인 자아정체성 형성에 악영향을 줄 수밖에 없다. 나아가 성별 고정관념에 부합하는 남성성, 여성성은 강화되고 재생산되고 있다. 이러한 교실에서 발생하는 다양한 혐오 표현과 행동은 생활지도를 넘어 생활교육으로 연결될 수밖에 없다.
펜데믹 겪으면서 청소년의 뇌는 타인에 관한 판단과 의사결정 기능이 약화되었다.
뇌과학에 따르면 청소년기는 사회적, 생물학적, 정서적 변화에 더불어 뇌가 폭발적으로 발달하는 시기이다. 특히 아동기를 거쳐 청소년기에는 뇌 시냅스 연결의 15% 이상이 형성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최근 펜데믹을 겪으면서 어린이와 청소년 뇌 구조와 기능을 분석한 여러 연구 결과, 펜데믹 이후 청소년들의 뇌는 이전에 비해 대뇌피질 표면이 얇아진 것으로 확인되었다. 이는 만성 스트레스나 외상이 원인인 경우가 많은데 이번 연구 결과 코로나19와 같은 펜데믹이 청소년들에게 상당한 스트레스를 준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고 밝혔다. 또 다른 연구에서도 우울증이 있는 청소년의 뇌의 변화는 인지 능력과 주의력 저하를 가져오고 자아 및 타인에 관한 판단과 의사결정 기능을 약화하는 것으로 확인되었다. (2023년 11월 11일~15일 미국 워싱턴DC에서 열린 미국 신경과학회 주관 ‘신경과학 2030 콘퍼런스’ 연구 발표 내용(기사 인용))
학생의 변화, 미래사회 학생에게 필요한 역량
OECD 교육 2030에서는 ‘우리가 원하는 미래는 어떤 모습인가? 그리고 미래사회에 필요한 역량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던지고 있다. 이제 역량이라는 용어는 우리가 교육에서 흔히 접하게 단어가 되었다. OECD 교육 2030에서 역량에 대해 “불확실한 상황에서의 복잡한 요구를 만족시키기 위해서 지식, 기능, 태도와 가치를 운영할 수 있는 능력”이라고 정의한다. 즉 역량은 지식과 기능을 습득하는 것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활용하여 문제상황을 보다 나은 방향으로 해결할 수 있는 능력이다.
2022 개정 교육과정 총론에서는 학교 교육 전 과정을 통해 중점적으로 기르고자 하는 핵심역량으로 6가지 역량을 제시하고 있다.
∙ 자기관리 역량: 자아정체성과 자신감을 가지고 자신의 삶과 진로를 스스로 설계하며 이에 필요한 기초능력과 자질을 갖추어 자기주도적으로 살아갈 수 있는 역량
∙ 지식정보처리 역량: 문제를 합리적으로 해결하기 위하여 다양한 영역의 지식과 정보를 깊이 있게 이해하고 비판적으로 탐구하며 활용할 수 있는 역량
∙ 창의적 사고 역량: 폭넓은 기초 지식을 바탕으로 다양한 전문 분야의 지식, 기술, 경험을 융합적으로 활용하여 새로운 것을 창출하는 역량
∙ 심미적 감성 역량: 인간에 대한 공감적 이해와 문화적 감수성을 바탕으로 삶의 의미와 가치를 성찰하고 향유하는 역량
∙ 협력적 소통 역량: 다른 사람의 관점을 존중하고 경청하는 가운데자신의 생각과 감정을 효과적으로 표현하며 상호협력적인 관계에서 공동의 목적을 구현하는 역량
∙ 공동체 역량: 지역·국가·세계 공동체의 구성원에게 요구되는 개방적·포용적 가치와 태도로 지속 가능한 인류 공동체 발전에 적극적이고 책임감 있게 참여하는 공동체 역량
펜데믹을 겪으면서 교육환경은 급격하게 변하였고, 최근에는 챗GPT가 등장하면서 디지털과 에듀테크 교육에 관한 관심은 더욱 높아지고 있다. 지금까지 지식은 부와 권력의 원천이라는 역할을 충실하게 수행하였다. 하지만 이제 지식의 시대는 끝났다. 학교 교육을 통해 학생들은 탄탄한 기본 지식과 기능을 배우고, 이것을 바탕으로 스스로 새로운 것을 학습할 수 있는 역량이 중요하게 되었다. 호기심을 가지고 스스로 학습할 수 있는 역량은 저절로 생기는 것이 아니다. 펜데믹 이후 다른 사람을 존중하고, 공감하며 경청하면서 소통하고 자신의 감정을 효과적으로 표현하며 협력하는 역량은 중요하다. 협력하고 소통하면서 학생은 자신이 모르는 것을 인식할 때 비로소 문제를 알게 되고, 이를 해결해나갈 수 있을 것이다.
함께 그려보는 우리의 미래
유네스코가 2021년 발간한 ‘함께 그려보는 우리의 미래: 교육을 위한 새로운 사회계약’에서는 함께 미래를 그려보기 위해서는 협력과 연대를 증진하는 교육이 필요하다고 강조하고 있다. 우리가 배우는 방식은 우리가 무엇을, 왜 배우는지에 따라 정해져야 한다.
인간의 존엄성은 최근 더욱 강조되고 있다. 학교 교육과정에서 존엄성에 대해 어떻게 생각할 것인지를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자기 자신을 위해 생각하도록 가르치는 것이 중요하다. 이를 위해 학생은 자신의 삶의 목적을 성찰하면서, 자신을 풍요롭게 하는 삶이 어떤 삶인지 결정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야 한다. 그리고 그러한 삶을 실현하기 위한 세상을 만들기 위한 역량을 가꾸어야 한다. 타인에게 관심을 기울이고, 그들과 함께 느낄 수 있는 공감은 협력과 연대를 위한 중요한 역량이다. 협력과 연대를 통해 과거의 불의를 치유하기 위한 학습의 필수적인 요소이다(유네스코, 2021)
학교는 다양한 사람들이 함께 집단에 속한 사람들이 한데 모여 양질의 교육을 받는 공공재(a common good)로서의 장소이다. 학교 교육을 통해 학생들은 서로에게서 배우고 젠더, 종교, 인종, 사회계층, 장애 등 모든 종류의 차이를 넘어 포용성, 다양성, 협력을 배우는 장소가 되어야 한다.
생활교육? 생활지도? 무엇이 맞는 방향일까?
초·중등교육법 제20조에 의하면 교사의 임무로 학생을 교육해야 한다고 제시하고 있다. 아울러 초·중등교육법 제20조의 2에 따르면 교원은 「학생의 인권을 보호하고, 교원의 교육활동을 위하여 필요한 경우 법령과 학칙으로 정하는 바에 따라 학생을 지도할 수 있다」라고 되어 있다.
우리는 생활교육이라는 용어를 사용하기 전에는 생활지도라는 용어에 익숙했었다. 생활지도라는 용어는 응보적 정의에 기초하여 학생의 잘못을 정량적으로 계산하고 처벌 위주의 생활지도 한계를 가지고 있다. 생활지도를 강화하였지만, 학교폭력의 심각성은 점점 높아졌다.
초·중등교육법에서 제시한 학생 교육은 크게 교과교육과 생활교육으로 구분할 수 있다. 즉 교과교육을 제외한 모든 교육을 생활교육이라고 할 수 있다. 아울러 생활지도는 교원의 교육활동을 위해 필요한 경우 시행하는 것으로 생활교육의 범주에 속한다고 볼 수 있다.
경기도교육청의 경우 2014년 9월 1일부터 상벌점제(학생 생활 평점제)를 폐지하고, ‘건강한 성장・인권 친화적 생활교육’으로 전환한다고 밝혔다. ‘건강한 성장・인권 친화적 생활교육’의 주요 내용으로는 ▲ 체험과 실천 중심의 인성교육 강화 ▲ 학교 구성원 간의 관계 회복을 위한 윤리적 실천 운동 전개 ▲ 학생 자치활동 활성화를 통한 절제와 자정능력 신장 ▲ 교권 확립을 통한 수업권과 학습권 보호를 담고 있다. 이후 많은 시・도교육청에서 생활지도를 넘어 생활교육 담론을 중심으로 교육과정 내 생활(인성)교육 강화, 학생자치활동 강화 등 학교 교육활동 전반에 걸쳐 생활교육을 고민하게 되었다. 생활교육은 회복적 생활교육(Restorative Discipline), 생활인성교육 등 상황에 따라 다양한 용어로 사용되고 있다.
회복적 생활교육(Restorative Discipline)은 학급 공동체와 학생들이 갈등 상황을 자발적으로 극복하고 성장과 변화의 기회를 얻도록 하며, 스스로 바른 행동을 선택할 수 있는 힘을 키워주는 것(empowerment)을 목적으로 한다. 아이들은 실수를 통해 배우고 성장해 나갈 수 있다. 회복적 생활교육은 갈등 상황을 소수 학생의 개인적 문제로 축소하여 해결하기보다, 그 갈등 상황이 공동체에 준 영향과 결과를 함께 바로잡음으로써 공동체 구성원 모두가 책임을 배우도록 한다. 이렇듯 학급 공동체 내에 구성원들이 평화롭게 연결되는 배려와 존중의 문화가 정착되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 존중과 배려의 학교문화가 정착되기 위해서는 장기적인 교육과정 내 계획과 단기적인 생활지도 방법이 적절하게 조화를 이루어야 한다.
생활교육의 목적은 무엇일까? 물론 교육의 목적과 생활교육의 목적을 구분할 필요는 없다. 새로운학교네트워크의 ‘더 나은 세상을 만드는 10가지 교육원리’에서 제시했듯이 학교는 민주적인 교육공동체로 구성원 모두 우리 사회를 만들어 가는 시민으로 민주적 생활방식을 터득하고 실천할 수 있는 역량을 갖추도록 해야 한다.
학생들은 삶 속에서 마주치는 여러 문제(교실에서 발생할 수 있는 문제, 교우 관계 문제, 일상에서 내가 느끼는 불공정, 공동체 약속 등)를 다시 돌아보고 함께 해결해 나갈 수 있도록 이를 교육과정과 학교문화에 녹여내어야 한다. 최근 학생들은 뉴미디어 이용 행태와 결합하여 사회 현안에 대해 한쪽의 시각만 가지는 경우가 많다. 교실 속 혐오 표현의 증가도 이와 연관된다고 할 수 있다. 학생들이 다양하게 탐색하며 문제를 제대로 분석할 수 있도록 교육하는 것도 생활교육에서 중요한 과제가 되었다.
교육과정 내 생활교육 방법으로는 많은 학교에서 학기 초에 공동체 회복을 위한 교육과정 주간을 운영하고, 학년별 평화 인권 교육과정을 운영하기도 한다. 또한 전문적 학습공동체와 연결하여 변화하는 학생을 대상으로 회복적 생활교육, 써클 방법을 다양하게 고민하기도 한다.
나아가 공동체 회복을 위한 학교 생활교육 절차를 교직원이 함께 만들고 이를 공식적으로 알리고, 모든 교직원이 같은 기준을 적용하는 것은 중요하다. 절차적 방법, 공정성이 중요한 학생들에게 교사마다 다른 기준으로 생활지도를 한다면 교사에 대한 신뢰는 무너지고, 열심히 생활지도를 하는 선생님들의 소진과 연결된다. 2023년 서이초 교사의 가슴 아픈 사건 이후로 우리는 생활교육과 생활지도 방법을 다시 돌아보고 있다. 공동체의 힘은 강하다는 것을 다시 느끼는 순간들이 많았다. 생활교육에서도 몇몇 교사의 각자도생이 아닌 학교 구성원이 같이 고민하고, 협력하면서 함께 생활교육을 실시하고 지속적인 문화를 만들어가야 한다. 이러한 문화를 만들어 가기 위해서는 학생들뿐 아니라 교사와 학부모, 그리고 지역사회의 역할도 매우 중요하기에 생활교육은 공동체 전체가 참여하는 교육이라고 할 수 있다.
2023 겨울 호 목차
1. 시론
2. 특집
3. 티처뷰
4. 이 책 한 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