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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이 보이지 않을 때...

<쉬어가기>

by 꽃비

불안의 끝이 보이지 않았을 때...

이게 다 무슨 소용인가 싶었다.


병원을 다닌다고 해서 내가 나을 수 있는가? 병원에서 주는 약을..., 하루라도 빼먹지 않고 열심히 챙겨 먹는다고 해서 내가 좋아질 수 있는가?


상담 치료가 다 무슨 소용이 있는가?

아무리 병원을 다니고 약을 먹어도 나의 상황이 변하지 않고, 주변의 여건이 달라지지 않는데...

내 불안은 줄어들 생각조차 하지 않는데 어떻게 내가 나을 수 있는가?


이 고통의 끝이 있는가?

언제까지 병원을 다녀야 하고 약을 먹어야 하는 것인가? 내가 낫지 않는다면 평생, 죽을 때까지 나는 이렇게 살아야 한다는 것인가?


온몸이 녹아내리며 질척거리는 발걸음으로 정신과라는 병원에 처음 찾아간 뒤 몇 년의 시간이 지났을 때...,

전혀 나아지지 않는 나를 보며 절망에 빠진 적이 있었다. 그래서 그 끝도 모를 절망은 분노의 화살이 되어 치료자에게 향했고, 이게 다 무슨 소용이냐고 따졌다.


내가 아프지 않고 살 수 있기는 한 것이냐고 따졌다.

나와 같이 아파 본 경험이 없는데 이곳에서 당신에게 말하는 내 마음의 상처를 어떻게 이해할 수 있느냐고 따졌다. 그렇게 또 한 번 모든 게 무너졌었다.


그래서 죽고 싶은 생각이 들 때마다 글을 썼었다.

그냥 무작정, 내 안에 있는 이 슬픔과 아픔을, 고통을 쏟아내지 않으면 견딜 수 없을 것만 같았다. 그리고 그런 시간이 4년을 넘어갈 때쯤 그 글이 모여 한 권의 책이 됐고 하나 씩, 하나 씩 올리기 시작한 브런치 글에 어떤 분이 댓글을 달았다.


막연하게 그런 생각이 들 때가 있습니다. 과연 (약을) 먹으면 좋아질까?

아니. 좋아지지 않는다.

반드시 먹어야 하는데, 먹는다고 해서 좋아지지 않는다. 그냥 지금보다 더 나빠지지 않게 현상 유지만 해줄 뿐, 아무리 시간이 지나도 약만으로는 절대 낫지 않는다. 그리고 이렇게 중요한 사실을 아무도 말해주지 않는다.


그래서 꼭 이 말을 해주고 싶다.

병원에 다니며 상담 치료를 받고 약을 먹는다고 해도 좋아지지 않는 사람이 있다. 만약 당신이 그런 부류의 환자에 속한다면 이젠 다른 길을 찾아 나서야 한다. 그 길은 지금까지 걸어온 것보다 더 멀고 오래 걸리며 감당 못할 더 진한 아픔을 느껴야 하는 길이다.


하지만 방법이 이것밖에는 없다.


"감정의 알아차림, 요가와 명상, 최악의 생각을 피하기, 마음 날씨와 감정 일기 쓰기, 불안과 우울의 수치화" 그리고 스쳐 지나가는 찰나의 행복을 느끼며 자신을 이해하고 내 삶의 본질을 찾아가는 노력이 수반될 때 마음의 병도 조금씩 사그라져 가는 것 같다.


그래도 의심의 눈초리를 지울 수는 없을 것이다. 앞서 말한 다른 길을 열심히 걷는다고 해도 눈이 띌 정도로 좋아지지 않는다. 시간이 매우 오래 걸리는 일이고 언제쯤 그 끝에 도달할 수 있을지 아무도 알 수가 없다. 이것이 또 하나의 절망이 되어 당신을 포기하게 만들 것이다.


하지만...

꼭, 이 말을 해주고 싶다. 아무런 변화도 없고 나아지는 것 같지 않아도 열심히 병원에 다니며 감정 일기를 쓰고 명상을 하고 내 마음을 돌아보려 노력한다면...

이것을 포기하지만 않는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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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 도달한 그 길의 끝엔 반드시 빛나는 꽃길이 기다리고 있을 거라는 사실을 말이다.


내 사적인 치부가 드러난 27개의 글을 쓴 이유는 나와 같은 사람들에게 이 말을 꼭 해주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의도대로 이 마음이 제대로 전해졌는지, 내 글에 확신이 서지 않는다. 아마도 그 이유는 27개의 글을 쓸 당시 나도, 당신의 마음과 다르지 않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 얼마 전 출간한 독립 출판물에는 들어가 있으나, 브런치에는 적지 못했던 "함께 살아가기"라는 글을 올린다.


★ ★ ★ ★ 함께 살아가기 ★ ★ ★ ★

약물과 상담 치료만으로 불안이나 우울 장애가 낫지 않는다면 추가적인 대안을 고려해야 한다. 마치 더 악화되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사멸하지도 않는 암세포처럼 불안과 우울을 없앨 수 없다면 다스리고 통제함으로써 함께 살 방법을 찾아야 한다. 그런데 먼저 알아야 할 중요한 사실이 하나 있다. 흔히 불안과 우울을 낮추는 여러 가지 방법들이 모든 사람에게 다 도움이 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쉽게 말하자면, 요가와 명상, 감사하기, 감정의 알아차림과 감정 일기를 쓰는 것이 모든 불안, 우울장애 환자들에게 효과가 있는 게 아니다. 개인의 특성과 기질에 따라 적용할 수 있는 방법과 그렇지 않은 것이 있다. 예를 들자면, 감정의 알아차림과 감정일기는 벌어진 일련의 사건과 감정을 구분할 수 있어야 효과가 있다. 이게 되지 않으면 감정 일기를 써야 한다는 생각이 의무감이 되어 스트레스만 불러올 뿐이다.


감사하기 또한 마찬가지다. 감사하기는 부정적인 감정을 밀어내며 도파민과 세로토닌을 증진하고 수면의 질을 높여주지만, 감사하며 산다는 게 말처럼 쉽지가 않다. 의도적으로 감사하는 마음을 가지려는 자신이 한심해 보일 수도 있고 가식적으로 느껴질 수도 있다. 나 또한 별것도 아닌 일에 밑도 끝도 없이 감사하며 사는 일이 잘 안 된다. 내가 가식적으로 느껴질 때가 많았다.


그 대신에 내게 효과가 있는 방법은 막연히 좋은 일이 생길 것 같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정말로 좋은 일이 있어서 그런 게 아니다. 그저 아침 출근길에 오늘은 좋은 일이 있을 것 같다고 되뇐다. 그러다 보면 예기치 못하게 좋은 일이 생긴다. 그러면 그날의 감사할 일이 되고 진짜 감사한 마음이 가슴에서 우러나온다. 설령 이렇다 할 좋은 일이 없더라도 ‘어디 한번 찾아볼까?’하고 하루의 지난 일을 떠올려보면 뭔가 작은 거라도 있다.


또 다른 방법은 행복 노래를 부르는 것이다. 임원희 씨가 모 방송에서 했던 것으로 행복 박수라고도 한다. 부정적인 감정이 몰려올 때면 ‘나는 내가 정말 좋아’라는 말을 중얼거리며 박자에 맞춰 손뼉을 치면 웃음이 터진다. 이걸 하는 내가 너무 웃긴다. 그런데 정말 신기한 게 이걸 하면 기분이 좋아진다.


감정 일기를 쓰는 것 또한 내겐 효과가 있다. 그날의 감정을 관찰하며 객관적인 사실 그대로를 적는다. 그러다 보면 불안의 이유를 고민하게 되고 지금 느끼는 불안이 과연 합당한지에 대해서도 생각하게 된다. 그렇게 감정 일기를 적으며 내 감정을 객관적으로 관찰하다 보면 예전에 나를 불안의 나락으로 떨궜던 일들이 모두 허상에 지나지 않았음을 깨닫게 된다.


근래에는 오늘 하루를 소중히 여기려 노력한다. 벌써 내 나이가 이렇게 됐나 싶을 정도로 시간의 흐름은 유수와 같았다. 그런데 지난 세월을 돌이켜보면 언제나 불안으로 괴로워하며 많은 시간을 전부 허상으로 날려버리고 말았다. 나를 불안으로 몰아넣었던 여러 상념들 중에 실제로 일어난 일은 전혀 없었음에도 두 번 다시 오지 않을 젊음의 청춘을 송두리째 갖다 바치고 말았다. 이것을 알게 되자 지나간 시간이 원통할 정도로 아까웠다. 그래서 오늘 하루, 지금 이 순간이 매우 소중하다는 것을 알았다. 그 뒤로 부정적인 감정이 올라올 때마다 찰나로 흩어져버릴 ‘지금’을 생각하며 내게 주어진 ‘순간’을 간직하기 위해 최선의 노력을 다한다.


그런데 재밌게도 이것이 명상이 된다. 의외로 명상은 별것이 아니다. 지금 일어나고 있는 일에 주의를 기울이고 그렇지 않은 것에는 관심을 끊는 것, 참으로 단순하다. 또한 현재에 초점을 맞추고 순간에 머무르는 능력을 향상하는 수행법이 ‘마음 챙김’이다. 다시 돌아오지 않을 오늘 하루를 불안으로 날려 버리지 않기 위해 지금 이 순간에 집중하는 노력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마음 챙김’이라는 수행법을 수련하게 만든다. 그리고 이것은 변연계의 편도체를 진정시켜 장기적으로 불안의 문제를 개선한다.


이렇게 자신에게 맞는 방법이 있다. 이 책에서 언급된 8가지 방법들을 하나씩 해보며 자신이 편안해지는 것을 찾으면 된다. 없어도 상관없다. 어떤 책에 적혀 있지 않더라도 그걸 행함으로써 불안이 줄어들고 내가 편안해질 수 있다면 그것이 최고다.


그것만이 당신을 살릴 수가 있다.

약물, 상담 치료와 더불어 당신이 찾은 자신만의 방법으로 불안과 우울을 관리하며 잘 살아가기를 간절히 응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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