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의 인생
유년기 때 생각해 보면 밝고 눈치를 보지 않았던 것 같다.
지금의 나는 타인을 의식하며 수없이 눈치를 보며 행동을 하지만
어릴 땐 그러지 않았다.
하고 싶은 일이나 하고 싶은 말은 할 수 있었고
어른들에게도 구김살 없이 다가가 말을 걸며
어른들이 나의 행동에 대해서 귀엽게 봐주는 게 좋았다.
어느 날은 아빠의 직장 동료들과 다 같이 식사하는 자리에 아빠를 따라갔던 기억이 있다.
그 기억에서 모르는 아저씨와 이야기했던 기억이 있는데
어른이 된 지금은 타인의 시선을 많이 의식하여
지금이라면 하지 못할 말들이나 지금이라면 할 수 없는 태도들을 생각해 보면
꽤나 당당하고 당돌했었던 것 같다.
어느 날은 영어를 배우고 있는 오빠를 따라 부모님 앞에서 1부터 20까지 엉터리 영어로 따라 불렀던 기억이 있다.
첫째인 오빠는 당시 초등학생이었고 나는 유치원을 다니고 있어서
초등학생인 오빠는 영어를 배우고 있었다.
가장 기초적인 숫자를 암기하는 것을 옆에서 듣고는
알파벳도 모르는 아이가 무작정 따라 부르기 시작했다.
어릴 때에는 오빠가 하는 것을 따라 하면 엄마, 아빠가 좋아할 것이라는 생각에 그렇게 했던 것 같다.
가족 다 같이 여행 가는 날,
차 안에서 나는 부모님의 재롱둥이 었다.
운행 중에 차에 가만히 앉아있지 않았고
늘 엄마, 아빠와 이야기하고 싶어 운전석과 조수석 사이의 공간에 끼어서
재잘재잘 떠들곤 하였다.
어느 날은 여행 가는 길에 숫자를 영어로 부르는 것을 따라 했는데
부모님이 내 엉터리 영어 실력에 귀여워하면서 즐거워하시는 것이 느껴졌다.
내가
“원, 투, 쓰리, 포”를 하게 되면
가르쳐주지 않았는 데도 따라 하냐며 놀라워하셨고
모르는 영어를 따라 부르겠다고
“썰틴, 말틴,,,,테티!”
이렇게 엉터리로 부르게 되면 웃으시며 귀여워하셨다.
그 당시엔 내가 부모님의 재롱둥이 었고 내가 부모님의 재롱둥이인 사실이 너무 행복했었다.
이러한 기억들이 쌓여
노후를 보내는 부모님들에겐 한 추억이 되었고
하나의 행복한 기억이 되었다.
아빠의 투병시절,
나의 어릴 적 이야기를 즐겨하며
웃으시는 모습을 보고
어릴 때 나의 행동에 대해
현재의 내가 너무 고마움을 느끼고
과거의 나에게 스스로 잘했다고 되뇌게 되었다.
지금의 나는 어른들에게 쉽게 다가가지 못하고 타인의 눈을 신경 써서
삐걱삐걱 고장 나는 경우가 많은데
과거의 나는 그러지 않아
부모님에게 행복한 기억을 선사했다는 것에 대해 감사함을 느끼고
과거의 내가 현재의 나에게 이렇게 영향을 미치는 것을 보아
현재의 나는 미래의 나에게 긍정적인 영향을 주도록 노력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