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날 아침.
집 근처에 맥도널드가 있지만 평소엔 들르기 쉽지가 않다. 그래서인지 여행 중엔 늘 맥모닝으로 하루를 시작하곤 한다. 맥모닝과 감자튀김으로 아이들은 배가 부른 지 항상 남겨주니, 결국 아빠가 호강을 누린다.
이런 게 아빠에게 주어진 소소한 특권이 아닐까. 그런데 아이들이 부쩍 커감에 남기는 양도 줄어드니 이게 기쁜 건지 슬픈 건지 모를 일이다.
숙소 바로 옆에 있는 김만덕 기념관에 들렀다. 여행을 오기 전 아이들과 제주와 관련된 그림책을 여럿 읽었지만, 김만덕 이야기는 글밥이 많아 미뤄뒀던 책이었다.
기념관에서 그녀의 삶을 찬찬히 둘러볼 수 있었다. 여장부로써 조선시대 피박 받던 제주인들을 위해 헌신한 모습에 감탄을 금치 못했다. 아이들은 아직 어려 실내에 놀이공간을 주로 이용했지만, 초등학교 고학년이 방문하면 좋을 것 같다. 언젠가 아이들이 조금 더 자라면 다시 함께 오고 싶다.
김만덕기념관 옆 고씨주택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고즈넉하게 마루에 앉아 책도 보고, 여유로운 시간을 보냈다. 겨울이라 그런지 방문객이 우리뿐이었다. 밖을 나와 산지천을 걷는데 그림 그리는 사람들이 있었다. 아마 지역 동호회에서 나온 것 듯했다. 각자 자리를 잡고 스케치에 열중한 모습이었다. 조심스럽게 옆으로 다가가 자리를 잡는 아이들이다. 사진을 찍어 놓은 듯 풍경을 그대로 종이에 옮기는 것은 정말 대단한 것이라 생각된다. 아이들도 점점 완성되어가는 그림이 신기한 눈치다.
제주에서의 마지막 시간을 그렇게 평온하게 보냈다. 버스를 타고 공항으로 향하는 길, 유난히 바람이 거세게 불었다. 비행기를 탈 땐 걸어서 탑승을 했는데 바람이 어찌나 불던지 아이들이 휘청거렸다. '정말 제주엔 바람이 많구나.' 실감할 수 있었다. 비행기가 잘 뜰 수 있을까 걱정도 잠시, 우리는 어느새 하늘을 날 고 있었다.
대구공항에 도착해 구미로 가는 리무진 버스를 타려 했지만, 시간이 맞지 않았다. 결국 택시를 타고 동대구역으로 이동했다. 오늘 하루 버스, 택시, 기차, 비행기까지 모든 대중교통을 경험하는 날이 되었다. 점점 집에 가까워지며 바깥 풍경이 익숙해지고 있었다. 둘째는 조용히 창밖을 내다보고 있었다.
"엄마 보고 싶어?" 묻자 고개를 끄덕인다.
집에 두고 온 애착이불도, 엄마의 품도 그리운 모양이다. 아마 집에 도착하면 제주에서 있었던 모험담을 엄마 앞에서 쉴 새 없이 쏟아놓겠지.
나도 아내가 보고 싶다. 며칠간의 긴장감, 매일 이어진 일정, 아이들의 안전을 지켜야 한다는 책임감이 서서히 풀려나갔다. 이제는 말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우리가 해냈어!"
구미역에 도착하니 아내가 플랫폼까지 내려와 있었다. 마침 겨울이라는 것을 알리기라도 하는 듯, 하얀 눈발이 흩날리고 있었다. 제주에서 북쪽으로 조금 올라왔을 뿐인데 공기가 확연히 차가웠다. 하지만 집에 왔다는 안도감에 마음은 따뜻했다. 오늘 하루 아내는 끝도 없는 이야기에 시달리겠지만 정적한 집 안을 깨우는 혼잡함을 아내는 또 원하고 기다렸을 것이다.
따듯한 김이 모락모락 나는 밥과 따듯한 국, 익숙한 반찬이 식탁 위에 있었다. 몸과 마음이 동시에 녹아내렸다.
긴 여정이 끝이 났다. 그래도 벌써 다음 여행을 꿈꾸는 내가 있다. 어디든 좋다. 가족과 함께, 조금 불편하더라도 천천히 세상을 거닐 수 있게 다시 한번 배낭을 메고 떠나는 그날을 기다린다.
"놀고제비, 놀박사 아빠의 여행은 아직도 진행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