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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새부리 May 13. 2021

독거노인을 대상으로 실험했더니 알게 된 것

영양사 아닌데, 영양사는 맞아요.(12)


보통 사람들이 흔히 생각하는 연구실은 비커, 삼각플라스크, 알코올램프가 있고 하얀색 가운을 입은 연구원이 투명 고글과 파란색 라텍스 장갑을 끼고 뭐가 들었는지 알 수 없는 유리병 안을 유심히 관찰하는 모습을 상상할 것이다. 내가 전공한 임상영양학 연구실은 이런 상상 속의 연구실과 비슷했지만 조금 달랐다. 연구실에서 하는 실험은 크게 두 가지 파트로 나누어졌는데 상상 속의 연구실처럼 실험을 하는 '동물'실험과 상상과는 다른 시험을 하는 '임상'실험이 있었다.


동물을 대상으로 하는 실험을 간단히 설명한다면(나도 잘은 모르지만) 실험하고자 하는 목적에 맞게 동물을 사육하고 해부한 후(아, 물론 죽인 다음에) 장기들을 적출해 분석하는 실험이다. 그리고 사람을 대상으로 하는 실험은 이 역시도 실험을 하고자 하는 목적에 맞는 조건에 사람을 노출시킨 후 혈액 및 소변 검사 등 그 외 의학적 검사 결과치를 분석한다. 당시 연구실에서는 동물을 대상으로 하는 실험의 논문이 좋은 저널에 투고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그만큼 중요하다고 여겨져서 신입생이 들어오면 실험을 통해 테스트를 하여 동물실험을 할 사람을 가려내곤 했다.


개인적으로 쥐(라는 글씨도 싫다.)를 정말 혐오하는데, 하필 동물 대상 실험의 그 '동물'이 '쥐'였다. 동물실험을 하기 위해서는 학교에서 운영하는 동물실험실 사용 교육을 받아야 했는데, 신입생 때는 동물실험 수행 여부와 상관없이 동물실험실에 방문해 정해진 시간에 사료를 배급해야 해서 다 같이 교육을 받으러 갔다. 케이지 안에 들어가 있는 크고 작은 수십 마리의 쥐들과 함께 작은 방안에 있어보니 정말 소름이 돋았다. 보는 것만으로도 이렇게 소름이 돋는데 쟤네들한테 밥도 주고 스트레스도 주고(물에 빠뜨리고 허우적거리는 것을 지켜보는 등) 나중엔 직접 죽이기까지 해야 하다니.. 바로 동물실험과는 손절을 해야겠다고 깨달았다.


"마지막으로 실험한 동물을 죽이고 사체를 보관하는 장소입니다. 이 통에 여러분이 실험하시는 동물을 넣고 밸브를 열어주면 이산화탄소가 나오고요. (취이이이-) 소리 들리시죠?"

"윽.. 진짜 싫다. 와.."


동물실험실에서 교육을 받는 내내 괴로워하는 나를 보는 동기들의 재미가 쏠쏠했을 듯싶다.


"산소포화도가 떨어지고 이 안에 있던 쥐는 왔다 갔다 하다 점점 움직임이 둔해집니다. 이 방법은 그래도 손을 안 대고 동물을 죽일 수 있습니다."


'그만.. 제발.. 그만!!'


"자, 마지막으로 죽인 동물의 사체는 이렇게~"


하, 정말 보고 싶지 않은 것을 봐 버렸다.


"냉동고에 보관을 해 두시면 됩니다."


검은 봉지로 꽉 찬 냉동고 안에는 죽은 동물의 사체들이 가득했고, 봉지 밖으로 살짝 삐져나온 쥐의 꼬리를 봐버렸다. (오, 마이 아이즈.)


"여기는 지금 꽉 차 있어서 개별적으로 연구실에서 사용하시는 냉동고에 보관해주시면 될 것 같아요. 그리고 냉동고 문 꼭 잘 닫아주시고요."


탁-

영양사로 일할 때는 냉동식품을 보관하던 냉동고가 여기선 사체 보관용으로 쓰이고 있었다. 으악.

 

"근데 쥐들 너무 불쌍하다. 뭔가 자기네들이 죽을 운명인 걸 아는 것 같아. 언니는 동물 실험하고 싶어요?"

"응~ 난 못해. 자진 포기합니다."


그리고 테스트 당일이 되어 동물실험을 하는 선배들의 시범으로 실험이 시작되었다. 나는 동물실험을 하고 싶어서라기 보다는 식품기사 자격증도 있겠다 배운 만큼 실험을 잘하고 싶은 욕심이 들었다. 그러나 실험을 시작하자마자 그럴 수 없을 것이라는 예감을 할 수 있었다.


"언니, 괜찮아요? 손 너무 떠는데?"

"어, 나 왜 이러지?"


잘하고 싶었던 마음이 컸던 것일까 실험을 시작하자 손에 힘이 너무 들어가 버렸는지 덕분에 손이 덜덜 떨려서 시작부터 실험이 제대로 되지 않았다. 그렇다고 나만 다시 실험을 시작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고 처음부터 망한 실험을 그대로 이어나가는 수밖에 없었다. 당연히 실험 결과는 좋을 수가 없었고, 자의 반 타의 반으로 동물실험에서 제외된 나와 다른 2명의 동기들은 연구실에서 진행되고 있던 '사람'을 대상으로 하는 실험 중 주제를 선택할 수 있는 또 다른 기회가 주어졌다.


횬 : 언니, 근데 노인 대상 실험은 진짜 괜찮아요. 혈액 분석하는 거는 무조건 SCI급 될 걸요?

본 : 맞아요. 나도 지금 하는 실험 안 했으면 그거 하고 싶은데. 노인은 진짜 데이터 엄청 많이 나올 거고 결과도 무조건 잘 나올 것 같아요.

새부리 : 그런가.. 근데 선배, 혈액 분석 400개? 600개? 하려면 한 학기로 돼요?

본 : 혈액이 언제 다 모이느냐에 따라 다를 것 같은데 언니 2기 때까지만 다 모여도 남은 3, 4기 1년 동안이면 충분하지 않을까요?

제니 : 맞아. 언니도 나랑 같이 노인 해요! 졸업논문 주제도 빨리 정해지면 좋으니까.


당시 연구실에서 핫했던 노인 대상 연구는 적은 돈이지만 연구비도 받을 수 있었고, 무엇보다 SCI급의 좋은 졸업논문을 쓸 수 있는 주제를 가지고 있었다. 석사 졸업을 하기 위해서는 졸업논문을 써야 하는데, 이 논문을 작가가 쓴 작품이라고 생각해보자. 작가가 되기 위해서 저명한 문예지나 신춘문예에 작품을 낸다 하더라도 당선되는 것이 쉽지 않은 것처럼 논문도 주제가 좋고 퀄리티가 높을수록 유명한 저널에 투고를 할 수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무조건 실리는 것이 아니다. 쓰인 논문의 주제를 평가할 수 있는 전문가(세계 각국의 교수들)들에 의해 평가를 받은 후 게재가 거절될 수도 있고 연구내용을 보완해야 할 수도 있다. 이 모든 과정은 당연히 영어로 진행되며 길면 수개월이 걸리기도 하는 엄청난 일이다.

흔히 말하는 'SCI급'이라 함은 매년 전 세계에서 출판되고 있는 학술지 중 학술적 기여도가 높은 저널들을 말하며 여기에 실린 논문들은 과학기술 발전에 기여도가 높은 질 좋은 논문임을 알 수 있다. 그러니 SCI급 논문을 쓴다는 것은 '일개 석사'로서 엄청난 커리어가 되는 것이다. 나는 선배들의 강력추천으로 결국 노인 연구를 선택하게 되었고, 이후 제니 선배와 함께 1년 반 동안 연구를 하게 된다.


종종 지하철을 타보면 임상실험 대상자를 모집한다는 홍보물을 본 적이 있을 것이다. 내가 제니 선배와 함께 담당하게 된 임상실험은 지하철 광고에서 보던 그런 실험이었다. 우리는 대상자를 모집하기 위해 노인 복지관을 돌며 홍보를 했다. 65세 이상의 노인을 대상으로 한 실험이었고 조건에 부합하는 대상자를 걸러내려면 몇 가지 신체계측과 기능 검사, 문진 등을 하게 되는데 이 과정을 '스크리닝'이라고 한다. 최대한 많은 어르신을 대상으로 스크리닝을 해야 우리가 원하는 대상자를 충분히 추려낼 수 있기 때문에 약 400명의 어르신들을 스크리닝 했고 대상자로 선택된 어르신들은 대략 150명 정도였다.


"어르신, 잘 지내셨어요? 영양제는 잘 챙겨 드시고 계시죠?"

"네네. 잘 먹고 있어요. 입맛에 잘 맞아요."

"다행이네요. 그럼 어제 하루 종일 드신 거 말씀 좀 해주세요."


실험을 하는 중간중간 어르신께 전화를 드려 식사내용을 조사하고 영양제 섭취를 잘하고 있는지 확인을 했다. 이 영양제의 성분에 따라 근육량, 운동기능 등 노화와 관련된 각종 신체 조건들이 어떻게 달라지는지를 보는 실험이었다.


"어제? 맨날 똑같아~ 아침에 밥에 물 말아먹고 복지관에서 가져다주는 반찬 먹었는데."

"복지관에서 무슨 반찬 가져다주셨어요?"

"김치 하고 김하고 멸치볶음 조금 먹었나?"

"조금이 얼만큼이에요? 몇 젓가락 드셨어요?"

"두 젓가락?"

"그러셨구나. 세 끼 다 그렇게 드셨어요?"


어르신들의 식사내용을 듣다 보면 양심에 가책을 느꼈다. 대부분 기초생활수급자이셨던 어르신들은 보통 끼니를 복지관에서 가져다주는 반찬으로 해결하셨다. 게다가 혼자 사시는 분들이 많으셔서 식사내용을 듣다 보면 더 잘 챙겨드셨으면 하는 마음이 들곤 했다. 하지만 실험 대상자이기 때문에 식사내용을 듣고도 어떠한 개입을 할 수가 없었다. 실험에서는 일정한 식사량을 유지하는 것이 중요했기 때문에 나의 식사 제안으로 인해 평소와 다르게 식사량이 늘거나 특정 음식을 많이 먹게 되는 경우 실험 조건에 영향을 주기 때문이다. 그나마 위안이 되는 것은 우리가 제공해드리는 영양제가 어르신들의 부족한 식사량을 채워드리고 있다는 것이었다.


"어르신, 영양제 이제 얼마 안 남으셨죠? 저희가 새로 또 가져다 드리려고 하는데 다음 주 수요일 아침에 갈게요."

"그래요. 어디로 갈까? 복지관?"

"복지관으로 오실 수 있어요? 영양제에 물도 있어서 무거워요. 더우신데 저희가 집으로 가져다 드려도 되고 어르신 편하신 데로 해드릴게요."

"아이고 됐어. 내가 복지관까지 가면 돼. 수요일에 복지관 1층으로 갈게요~"


젊은 우리가 고생하는 것이 미안했는지 늘 어르신들은 복지관으로 오라고 하셨다.


"어르신, 여기요~! 안녕하세요. 오시느라 고생하셨어요. 많이 더우시죠?"


한 여름에 걸어서 복지관까지 오시느라 땀범벅이 되신 어르신을 보니 왠지 죄송한 마음이 들었다.


"괜찮아요. 아가씨들이 여기까지 오느라 고생했지."

"아니에요. 저희는 젊은데요, 뭘. 어르신 이거 책가방에 넣어서 가져가실 거예요?"

"응. 여기 다 들어가."


제니 선배와 나는 서로 약속이라도 한 듯이 동시에 어르신 집까지 가져다 드려야겠다는 생각을 했고, 숨을 돌린 어르신과 함께 댁으로 향했다.


"미안해서 어떡해? 언덕이라 힘들 텐데."

"에이. 어르신 걱정하지 마세요. 다음부턴 무조건 저희가 집까지 가져다 드릴게요. 아셨죠?"


복지관을 떠나 키카 큰 아파트 들을 지나 좁은 골목길로 들어섰고 골목은 이내 가파른 언덕이 되었다. 어르신 아니었으면 그곳에 올라가는 길이 있는지도 몰랐을 법 한 길이었다. 오르다 보니 생각보다 많은 집들이 따닥따닥 붙어있었다. 어르신의 댁은 언덕 꼭대기의 가운데 골목, 첫 번째 초록색 대문 집이었다. 벽에는 대학생 봉사단들이 그려놓은 벽화로 알록달록 꾸며져 있었다. 대문 옆에는 '000 할머니네'라고 페인트로 귀여운 글씨가 쓰여 있었다.


"어르신 이거 학생들이 써준 거예요? 너무 귀엽다~"

"아, 배달하시는 아저씨들이 여기는 집 찾기가 어렵잖아. 그러니까 이렇게 써놓으면 찾기가 쉽지."

"그렇구나~"


초록색 대문을 열쇠로 열고 들어가니 어르신의 지나온 삶이 고스란히 묻어있는 잡동사니들이 옹기종기 모여있었고 짧은 호스가 연결된 작은 수돗가가 있는 마당과 걸터앉을 좁은 툇마루가 있었다.


"더운데 잠깐 안에 들어와서 물이라도 한 잔 하고 가야지. 요구르트라도 드려?"

"아니에요. 어르신 뭐 주지 마세요. 괜찮아요."

"아니야. 더운데 여기까지 올라오느라 고생했잖아. 이거라도 안 주면 내가 마음이 안 편해서 그래."

"아휴.. 감사합니다. 이것만 마실게요. 더 뭐 주시면 안 돼요~"

"알았어요, 알았어."


세로로 긴 방 한 칸에 딸린 작은 부엌. 마당에 따로 있는 화장실. 시골 할머니 댁에 온 듯했다.


"어라. 제니 선배. 요구르트 유통기한 지났어요."

"어? 나 마셨는데?"

"괜찮겠지, 뭐. (꼴깍꼴깍)"   


"왜들 그래요?"

"어르신 이게 유산균이 다른 것 보다 엄청 많을 것 같아요."

"그래? 왜? 좋은 거야?"

"아니, 유통기한이 지나가지고 숙성이 잘 됐겄어."

"정말? 어디 보자."


어르신은 게슴츠레하게 눈을 뜨시고는 손을 길게 뻗어 요구르트를 최대한 멀리 둔 채 유통기한을 확인하셨다.


"아이~ 안 보여. 많이 지났어?"

왠지 모르게 우스운 상황 덕분에 어르신과 우리 둘 모두 다 같이 한바탕 웃어버렸다.


"별로 안 지났어요~ 우리는 괜찮은데, 혹시 어르신 드시고 탈 날까 봐. 조심하셔야 돼. 이런 유제품은."

"어? 어르신 저 한복 입은 사진은 언제 찍으신 거예요?"

방안에 사진을 보고 제니 선배가 물었다.


"아~ 저거는 나 칠순잔치 때. 영정사진으로 써야지."

"어르신 이렇게 정정하신데 벌써 영정사진을 준비하셨어요, 왜~"

"에이, 나중에 자식들 귀찮게 안 하려고 미리 찍어둔 거야. 그래도 잘 나왔지?"

"네. 분홍색 너무 잘 어울리셔요."


"아, 맞다. 어르신 영양제 오늘 안 드셨죠? 저희 있을 때 챙겨 드셔요."

"그래. 여기에 아가씨들이 준 물통 있는데."

"어르신, 물통 설거지 안 했네요. 이거 제가 씻어드릴게요."

제니 선배는 이때부터 착했다.


"여기 호스, 이거 물 틀어도 되죠?"

"아이고 미안해서 어째."


어르신이 영양제를 드시는 것을 확인하고 우리는 시간이 되어 돌아가야 했다.


"어르신, 저희는 이제 이만 가볼게요~"

"그래요. 고마워요. 여기까지 무겁게 가져다주고."

"네, 저희 다음 주에 전화드릴게요. 안녕히 계세요~ 나오지 마시고~"


연구실로 다시 돌아가는 길. 낮은 지붕의 단칸방들 사이 좁은 골목골목을 지나 언덕을 내려오는데 반대편 저 멀리에 높은 빌딩들이 보였다. 그 위로 쾌청한 하늘에 하얀 구름들이 흘러가는 경치 좋은 모습을 바라보고 있자니 여러 가지 생각이 들었다.


"언니, 기분 괜히 이상하지 않아요?"

"네. 저런 풍경을 여기에서 보고 있으니까 되게 묘하네요. 서울이 참.. 그러네요."


서울에 올라오고 나서 처음으로 내가 모르는 또 다른 서울의 모습을, 다른 세상을 접했던 날이었다. 이 언덕을 내려가면 나는 다시 내가 사는 세상으로 돌아갈 것이다. 늘 그래 왔듯이 친구들과 강남, 압구정 한복판에서 만나 부어라 마셔라 신나게 놀 것이다. 예쁜 신상 옷을 입기 위해 백화점에 가서 쇼핑을 하고 주말이면 누가 더 핫하고 멋진 카페에 갔는지, 유명 맛집에 가서는 어떤 음식을 어떻게 먹어야 하는지 자랑하는 사진을 찍어 SNS에 올릴 것이다. 같은 서울 하늘 아래에서 너무나 다른 세상에 사는 것 같다는 생각을 하면서 언덕을 내려갔다. 이 날의 기억은 영양사로 일할 때 겪었던 다사다난한 사건들처럼 강렬한 인상을 주지는 않았지만 내 기억 속 한 켠에 몽글몽글 알 수 없는 느낌으로 확연히 자리매김되었다. 그렇다고 해서 내가 어려운 이들을 위해 앞으로 희생과 헌신하며 무소유의 마음가짐으로 남은 생을 살아가겠다거나 하는 것은 아니지만, 이 경험과 이 기억은 내가 어느 자리에서 어떤 일을 하는 사람이 되었던지 간에 잊지 말아야 하는 조각이라는 생각을 했다.


까만 밤하늘 아래에서도 찬란하게 반짝거리던 빌딩 숲, 그 사이 도심 한복판에 즐비하게 늘어선 스포츠카, 멋들어지게 차려입은 사람들. 내가 동경하던 서울의 모습이 다가 아니라는 사실에 서울이라는 도시가 꽤나 모질게 느껴졌고 그런 서울에게 왠지 모를 섭섭한 마음을 한 채 연구실로 돌아갔다.


   



'영양사 아닌데, 영양사는 맞아요.' 매주 목요일 업데이트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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