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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새부리 Apr 29. 2021

대기업 인사팀은 의외로 모르는 신입사원이 퇴사하는 이유

영양사 아닌데, 영양사는 맞아요.(10)


"언니, 지난주 브런치 글 마지막에 쓴 내용 있잖아요. 그때 걔가 언니 뭐라고 욕하고 다녔었죠?"

내 글의 열혈 구독자이자 회사 동기였던 지니에게 연락이 왔다.

 

"나 일 안 하고 뺀질거린다고?"

"아니 걔가 그걸 어떻게 알아요? 같이 일한 적이 없는데?"

"내 말이~ 나만 욕하고 다녔나 혤이도 욕하고 다녔잖아."

"진짜 이상한 애였다, 걔는."


자, 지난주 약간의 스포일러를 남겼던 '그 이야기'를 시작해 볼까 한다.

실무 영양사가 되어 갖은 고초와 수난을 겪다 지쳐 나가떨어질 때쯤 나에게도 쨍하고 해 뜰 날이 찾아왔다. 함께 일하던 점장님이 본사로 발령이 나면서 업무에 많은 변화가 있었기 때문이다. 물론 새로운 점장님도 오게 되었다. 새로운 점장님께서는 기존의 방식을 크게 벗어나지 않기를 원하셨기에 일하는 데 있어서 나의 의견이 많이 반영이 되었고 그만큼 선택권이 넓어졌다. 이로 인해 업무적으로 인정을 받는다고 느낄 수 있었고, 무엇보다 이해가 가지 않던 업무들이 많이 줄어들어 이대로 유지만 된다면 다닐만하다고 생각하며 그렇게 나름 괜찮은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식당에 큰 행사가 있어서 본사 연회팀이 방문을 한 적이 있다. '연회팀'이란 (다른 단체급식 회사에도 존재하는지 모르겠지만) 업장으로 들어오는 행사 중 기존 조리실 인원으로 수행하기 어려운 큰 규모의 행사를 위해 조리실장, 찬모, 지배인 등으로 구성된 연회팀이 전국 업장을 돌아다니며 지원을 다니는, 쉽게 말해 출장뷔페팀이라고 표현할 수 있겠다. 실력이 출중한 팀이기에 연회팀이 방문하는 날에 진행되는 행사는 손님들의 호평이 자자했다. 아무튼 행사를 마무리한 점심시간. 나와 점장님은 연회팀과 함께 업장에서 식사를 하고 있었다.


"오늘 생각보다 행사 규모가 컸어요. 홍보가 잘 됐나 봐요."

지배인님이 점장님께 말을 걸었다.


"그러게요. 그래도 음식 모자라지 않아서 천만다행이었죠."

"그런데 영양사님은 여기서 일하는 것 어때요?"


묵묵히 밥을 먹고 있던 나에게 지배인님이 별안간 말을 걸었다.

"저는 여사님들이나 실장님, 점장님도 다 너무 좋으시고, 일도 많이 배운 것 같아요."

"아..~ 영양사님은 고생 좀 덜 했나 보다, 아직. 고생 좀 더 해야겠네."


'음? 갑자기?'


말에 가시가 돋아있는 듯한 느낌. 무슨 소리지? 약간의 당황스러움을 안고 식사를 마친 후 점장님과 영양사 사무실로 돌아왔다.


"영양사님, 문 좀 닫아 볼래요?"

사무실 문이 닫히자 점장님께서 생각지도 못한 이야기를 하나 해주셨다.


"사실 영양사님이 들어도 좋을 것이 없다고 생각해서 안 하고 있었는데, 오늘 보니까 해줘야 할 것 같아서요."

"아...? 무슨 일이라도...?"

"제가 여기 발령 나기 전에 들은 말이 있는데, 친한 동료가 그러더라고요. 여기 실무 영양사가 그렇게 일을 안 한다더라.. 가면 고생 좀 하겠다고.."


'이건 무슨 소리..? 내가 일을 안 한다고?'

갑자기 들은 날벼락같은 소리에 억울함이 솟구쳐 올랐다. 쏟아지는 일 때문에 사람들이 모두 떠난 어두워진 캠퍼스를 등지며 홀로 터덜터덜 퇴근하던 기억, 주말에 늦잠 한 번 자지 못하고 출근해 점심 배식을 챙기던 나의 지난날들이 일순간 영화처럼 스쳐 지나갔다. 이제 일 좀 익숙해져서 편해진지 얼마나 됐다고 그동안의 노력이 다 수포로 돌아간 듯한 저런 소문에 얼마나 억울하고 분했는지.


"그래서 사실 나도 처음에 올 땐 영양사님에 대한 이미지가 좋지는 않았어요. 그래도 사람 겪어보지도 않고 판단하는 건 아닌 것 같아서 오고 나서 영양사님 일하는 것 쭉 지켜봤는데 내가 들었던 이야기랑 너무 달라서 그냥 헛소문인가 보다 하고 말았거든요."

"네.."

"그런데 오늘 지배인님이 저런 이야기 하는 것 보니까 그 친구가 여기저기 소문을 많이 내고 다니는 것 같다고 생각이 들어서 영양사님도 좀 알고 있어야겠구나 싶었고, 무엇보다 연회팀에서 저렇게 이야기하고 다니면 회사 안에서 소문나는 건 금방이거든요."


'그 친구..? 누굴 말하는 거지? 그럼 소문의 근원지가 명확하다는 이야기인데.'


"아... 어... 저... 그러니까 누가...."


차마 말을 잇지 못하는 나의 모습을 보고 점장님께서 말을 이어주셨다.

"영양사님은 전혀 모르는 눈치네요 정말. 영양사님 동기 중에 경기도에 있는 연수원 영양사가 그런 소문을 내고 다닌다고 하더라고요. 근데 뭐 영양사님 뿐만 아니라 영양사님네 동기들을 그렇게 험담 한다고 하던데.. 그런 사람이 낸 소문을 믿는 사람들도 문제죠."


'아니 걔가 왜?'


궁금한 것 투성이었지만 오후 업무를 안 할 순 없으니 다시 일을 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머릿속으로는 이 사태에 대한 생각을 멈출 수가 없었다. 도대체 걔가 왜, 나에게 무슨 앙심이 있어서 그런 말을 하고 다닌다는 것인가. 동기라고 해서 모두 마음이 잘 맞고 두루 친하게 지내기는 어렵다. 그리고 나이가 먹다 보니 나랑 결이 맞지 않는 사람은 몇 번 대화를 나누다 보면 알아차릴 수 있지 않은가. 사실 그 친구가 그런 동기였다. 그렇다고 해도 딱히 큰 트러블이 있었던 것도 아니고 개인적인 연락은 딱 1번 그 동기가 먼저 연락이 왔던 게 전부였다. 퇴근길 그 동기에게 전화가 온 적이 있다. 자기가 불금이라 서울에 왔는데 지금 볼 수 있냐며 물었고 나는 갑작스러운 연락에 막 퇴근을 한 뒤라 피곤하고 집에 가고 싶은 마음에 거절을 했었더랬다. 그 이후론 개인적인 연락을 한 번도 한 적이 없는데..


열이 받은 나는 당장이라도 전화를 해서 네가 내 욕을 하고 다녔다고 들었다, 무슨 생각이냐며 윽박지르고 싶은 생각도 들었다. 하필 소문을 내도 일을 안 한다는 소문을 내다니, 직장인에게 가장 치명적인 소문 아니겠는가. 그러나 실행에는 옮기지 못 한 채 시간이 흘렀다. 얼마 지나지 않아, 모든 사건이 시작되었던 그날도 나는 조리실을 이리저리 다니며 '내가 일을 안 한다고?'라는 생각을 머리에서 떠나보내지 못한 채 총총 일을 하고 있었다.


"영양사님~ 팀장님 오셨어요! 사무실로 와보세요~"

점장님의 호출로 하던 일을 멈추고 영양사 사무실로 돌아갔다.


"앗, 팀장님. 안녕하세요."

"어, 그래. 잘 지냈어? 많이 바쁘지, 요즘도?"

"아닙니다. 커피 드릴까요?"

"아니. 오늘 시간이 많이 없어서 할 얘기만 하고 얼른 본사 다시 가봐야 돼. 영양사님, 잠깐 시간 되죠?"


팀장님이 나에게 할 말이 있다니. 극히 드문 일이었다. 무슨 일이지?


"다른 게 아니고, 경기도에 영양사님 동기 있지?"


'아, 그 인간(말을 순화해본다.)'


"그 친구가 요새 몸이 너무 안 좋다고 하더라고. 일이 힘들어서. 그래서 집 근처로 발령을 내줄까 하는데 거기 들어갈 사람이 잘 없어, 사실. 영양사님도 알겠지만."


올 것이 왔구나. '발령'

근데 하필 왜 거기냐. 업장도 경기도에, 내 욕을 하고 다니던 동기가 있던 자리 대체자로 가라니. 이유도 그 동기가 아파서, 그 동기를 위해서 가라고 말씀하시는 겁니까. 이건 좀 아니지 않나요? 물론 이런 배경을 알리가 없는 팀장님은 나에게 내가 왜 그 업장에 가야만 하는지 구구절절 설명을 해주기 시작했다.


"영양사님 집이 원래 강원도지? 경기도에서 기차 타면 서울보다 가깝잖아. 찾아보니까 30분? 이면 되겠던데. 그리고 거긴 연수원이라 안에 숙소도 있어. 점장님이랑 같이 쓰면 되는데 돈도 절약되고, 영양사님 지금 서울서 자취하면서 월세 나가고 돈 들어갈 일 많잖아. 거긴 그럴 일도 없고. 훨씬 좋은 조건 아니야?"


'그건 팀장님 생각이고요.'


첫 번 째, 제가 경기도에서 일할 거였으면 왜 굳이 몇 백대 일의 경쟁률을 뚫고 어렵게 어렵게 서울로 지원을 해서 회사에 들어왔을까요.

두 번째, 점장님이랑 같이 사는 숙소가 좋다고 말씀하시는 겁니까? 진심이세요?

세 번째, 제가 돈 나가는 것 아쉬웠으면 강원도에서 올라왔을까요? 부모님 밑에서 다녔지.

이렇게 다 말은 못 했지만 의미 전달을 하기 위해 노력했다.


"아, 팀장님. 저 경기도는 가기 어려울 것 같습니다."

"그래, 그럴 수 있어. 근데 가서 딱 3년? 아니 2년만 고생하면 다시 서울로 오게 해 줄게. 내가 무조건 약속해."


'팀장님이 그때 다른 팀으로 가시면 저는 어쩝니까.'


하지만 나는 어렸고, 첫 사회생활이었으니 확고하게 거절 의사를 전달하는 법을 몰랐다. 더 이상 말을 못 하고 듣고만 있던 내 모습이 무언의 수락이라고 생각됐는지 팀장님은 만족할 만한 결과를 얻었다는 표정을 지으며 인사를 남기고 떠나셨다. 나는 다시 일을 하기 위해 조리실로 향했다. 내가 지금 무슨 일을 당한 건지, 진짜 이러다 경기도 산골에 처박히게 생겼는데 딱히 어떻게 해결해야 할지 방법이 생각나지 않아 하던 일을 때려치우고 다시 사무실로 돌아가 점장님께 상담을 요청했다.


"점장님, 저 다른 데는 다 가도 거기는 진짜 못 가겠어요. 하필 그 친구 대체자라니 너무 억울하잖아요."

"그러게. 근데 그 친구가 하혈을 한다고 했데요. 팀장님이 남자니까 얼마나 놀랬겠어. 그래서 더 급하게 옮겨주려고 하는 것 같아요."

"점장님. 저희도 힘들잖아요. 여기는 뭐 일하기 편해서 놀고먹는 것도 아닌데... 저 그럼 무조건 가야 돼요?"

"그럼 영양사님 지금이라도 다시 팀장님께 전화해봐요. 내가 자리 비켜줄 테니, 전화로는 좀 더 잘 이야기할 수 있을 것 아니에요. 그렇죠?"

그렇게 점장님께서는 나를 위해 자리를 피해 주셨고, 팀장님과 다시 통화를 했다.

"어 그래~ 영양사님."

"저 팀장님, 정말 저 말고는 대책이 없을까요?"

"영양사님도 알잖아~ 다들 서울 벗어나기 싫어하는데 그나마 영양사님은 집도 가깝고, 영양사님이 딱이야. 그리고 동기가 아프다는데 영양사님이 희생 좀 하자."


'네?? 제가 왜 걔를 위해서 희생을 하죠? 팀장님. 저는 뭐 몸 튼튼 마음 튼튼이라 회사 잘 다니는 줄 아시나요.'


"팀장님, 그래도 못 갈 것 같.."

"내가 지금 연수원 쪽에 말해놨고 거기서 이력서 보고 싶다고 하니까 증명사진 하나만 보내 놔, 내 메일로."


달칵.


내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팀장님은 전화를 끊으셨다. 일 처리도 빠르셔라. 이대로 가다간 정말 발령이 날 게 뻔했다. 본사로 돌아간 팀장님은 이번 발령과 관련된 영양사들에게 이 소식을 전한 듯싶었다. 왜냐 기다렸다는 듯이 그 동기에게 연락이 왔기 때문이다.


"언니! 언니 발령 난다며~ 나 연락받았어. 여기로 온다는데? 진짜야?"

한껏 상기된 그녀의 목소리를 듣자 괘씸하고 얄미운 생각이 더했지만, 우선 차분하게 대응했다.


"아직 확정은 아니야. 팀장님하고 면담만 한 정도지. 나는 가기 싫다고 말했어."

"언니, 그래도 아마 여기 올 것 같은데? 이력서도 넘겼데."


'신나셨네, 아주.'


"어, 그래. 나 일하는 중이라 통화 오래 못 해."


그렇게 짧은 통화를 끊고 찜찜한 다음 날이 되었다. 다시 그녀에게 전화가 왔다. (나 너랑 통화하고 싶지 않아.. 전화하지 말아 줄래?)


"여보세요?"

"아 언니, 내가 할 말이 있어서 전화했어. 여기 이제 월말이라 인건비 마감할 건데 미리 와서 배워야 하지 않겠어? 여기 인건비 마감하는 게 다른 업장이랑 달라서 어렵거든. 언니 이거 배우러 이번 주 토요일에 와. 내가 마감 가르쳐줄게. 언니도 오기 전에 한 번 해봐야지."


'얘가 지금 무슨 소릴 하는 거야. 정신 못 차리네.'


"나도 여기 인건비 마감해야 돼."


"어, 근데 여긴 다른 데랑 달라서 어렵다니까? 와서 언니가 해봐야 될걸?"


'아, 지금 네가 할 일을 나보고 대신하라는 말이구나?'


"우선 끊자. 다시 통화하던지 해."


사회생활을 하다 보면 익히 들어 알고 있는 말이 있을 것이다. "돌아이 보존의 법칙" 나를 활화산으로 만들었던 검은 정장 학생들에 이은 두 번째 빌런이 등장했다. 아직 발령이 난 것도 아닌데 본인이 나서서 친히 나를 가르쳐 주겠다고 하시니, 이 고마움을 어찌 표현할 길이 없어 점장님에게 이를 전달했다.


"뭐? 영양사님한테 토요일에 출근을 하라고 했다고요? 누가? 거기 점장이?"

"아니요. 그 연수원 영양사님이요. 점장님 저 토요일에 거기 출근해야 하나요?"

"어이가 없네 진짜. 지금 누가 누구보고 오라가라야."


점장님은 전화기를 드셨다.


"여보세요? 점장님, 난데요. 거기 이번 주 토요일에 인건비 월 마감하죠? 그거 하는데 우리 영양사님 필요해요?"


'와! 점장님 대박. 박력 쩔어.'


"아니, 거기서 우리 영양사님 보고 인건비 마감하는 걸 배워야 한다고 토요일에 출근하라 그랬다던데 점장님은 알아요?"


'점장님 파이팅!'


"아직 발령 난 것도 아닌데 왜 사람을 오라 가라 해요. 이 이야기 못 들은 걸로 할 테니까 거기 영양사 간수 좀 잘하세요."


와! 속 시원해. 인간 사이다인가. 나 대신 힘써주신 점장님 덕분에 사건이 일단락되는 듯싶었다. 하지만 나의 발령이 취소될 리는 만무했다. 모른 척 외면하던 영양사라는 직업에 대한 고충과 이제는 직접 대면해야 할 때가 온 것이다.


그리고 그날 밤. 퇴근 후, 그때만 해도 핫했던 얼굴책을 둘러보고 있던 와중에 보고 싶지 않은 그녀의 소식을 보게 되었다. 주말마다 남자 친구와 산이며 바다며 놀러 다니는 모습을 고스란히 담아놓은 그녀의 얼굴책을 보니 행복한 나만의 저녁시간을 망친 기분마저 들었다.


'행복한가 보내. 아프다더니 놀러 다니는 건 괜찮은가 보지.'


그러다 언니로부터 전화가 왔다.


"뭐해~ 쉬고 있었어?"

"응. 그냥 누워있었지. 왜?"

"아니 발령 난 건 어떻게 됐나 해서."

"아, 몰라 진짜. 가기 싫은데 무조건 밀어붙이기만 해. 회사 때려치우고 싶다."
"그렇게 힘들어? 하긴 자꾸 발령 나고 하면 바뀔 때마다 새로 적응하는 것도 그렇고 힘들겠다. 발령이 안 날 순 없는 거지 앞으로도?"

"그러니까. 평생 여기저기 가라면 가고 오라면 오고 그렇게 일해야 되나 봐 영양사는. 심지어 그만두게 만들고 싶으면 일부러 집이랑 엄청 먼 곳으로 발령 내버린다는 소문도 있더라. 언니, 나 정말 가기 싫어. 그냥 그만둘래."

"그래 그만둬."


음? 내가 생각했던 반응은 이게 아닌데.


언니가 그만두라고 하니 당황스러웠다. 누군가에게 듣고 싶었던 말 중 하나이기도 했지만 가족에게 그 말을 들으니 진짜 그만둬도 될 것 같았다.


"진짜?"

"응. 그만둬. 그렇게 힘들고 괴로워하면서 회사 다닐 필요 없어. 너 더 공부하고 싶다고 했었잖아. 대학원을 가든 다른 데로 이직을 하든 한 살이라도 어릴 때 해보는 게 좋지. 아빠도 동의하셨어."


인생의 큰 갈림길에서 가족, 부모님의 지지는 엄청난 힘이 된다. '아빠'라는 단어에서 오는 엄청난 존재감과 영향력. 천군만마를 얻은 기분이었다. 그리고 바로 다음 날, 회사에 출근해 점장님께 먼저 퇴사에 대해 이야기를 꺼냈다. 내 이야기를 가만히 들으시던 점장님께서는 인상 깊은 한마디를 해주셨다.


"영양사님, 나는 지금이 영양사님한테 좋은 기회라고 생각돼요. 앞으로 살아갈 날 들 중에 또 이런 기회가 올 수 있을지 확신할 수 없고, 지금 아니면 평생 영양사로 살아야 될 수도 있어요. 그런 말 있죠. 10년 뒤 내 모습이 궁금하면 자기 상사를 보라고. 영양사님이 생각하는 그 미래가 이 길이 아니라면 지금이 기회예요."


점장님과의 대화를 마치고 나는 회사에 퇴사를 알렸다. 그제야 발령을 취소해주겠다며 붙잡으시던 팀장님. 하지만 이미 정 떨어진 회사에 미련이란 게 없었더랬다.


그리고 마지막 근무를 하던 날. 그동안 고생 많았다며 토닥여주시는 여사님들의 손길에 그만 왈칵 눈물이 쏟아져 나왔다. 한 분 한 분 인사를 드리고, 함께 죽이 잘 맞았던 보조영양사님과 점장님께도 마지막 인사를 드리고 진정한 퇴근길에 올랐다. 이후 남은 연차를 쓰는 동안 인사팀에서 전화가 왔다.


"새부리 영양사님? 안녕하세요. 인사팀 부장 OOO입니다."

"아. 안녕하세요. 부장님."

"퇴사한다는 소식 듣고 전화했어요. 지금 통화 괜찮죠?"

"네, 괜찮습니다."

"원래는 얼굴 보고 면담을 해야 하는데, 이미 연차 중이라고 해서 이렇게 전화통화로 대신해야 할 것 같네요."

"네."

"혹시 부당한 사유 때문에 퇴사를 한다거나 하는 점이 있으면 지금이라도 말해주시면 반영하도록 할게요. 제가 들은 이야기가 좀 있어서, 하시고 싶은 말씀 다 해주실 수 있을까요?"


잠시나마 고민이 되었다. 부당하다고 느꼈던 그동안의 일들을 모두 말해볼까. 부장님 시간 괜찮으신가. 오늘 안에 안 끝날 듯. 하지만 이내 마음을 접었다. 나로 인해 일이 커져 남은 사람들에게 피해가 가길 바라지 않았다.


"음.. 그런 일은 없었습니다. 저의 개인적인 사유로 퇴사를 하는 것입니다."

"그렇군요.. 혹시 다시 돌아오실 마음이 생긴다면 재입사 절차도 충분히 잘 마련되어 있으니 언제든지 연락 주시고요. 그동안 고생하셨어요. 앞으로 좋은 일만 있기를 바랍니다."

"네. 그동안 감사했습니다."


 그렇게 나는 탈영양사 계획 2탄을 준비하기 시작했다.



'영양사 아닌데, 영양사는 맞아요.' 매주 목요일 업데이트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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