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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새부리 Apr 22. 2021

대기업 영양사 되면 좋을 것 같죠?

영양사 아닌데, 영양사는 맞아요.(9)


"손님."



"그러면 뭘 어떻게 해드릴까요?"


꾹 참아오던 인내심이 한계치를 초과하는 순간이었다. 화풀이를 하겠답시고 있는데로 컴플레인을 늘어놓으며 이도 저도 못하게 곤란한 상황을 만들어 붙잡아 놓고 갑질을 하는 검은 정장 학생들을 더 이상 참고만 있을 수 없었다.


"네?"


뜻밖의 질문이란듯이 학생들의 얼굴에는 당황과 황당 그 중간즈음의 표정이 비추는 듯했다. 마냥 굽신거리며 사과만 할 줄 알았을 텐데 예상치 못한 공격으로 데미지를 입었겠지. 그 정도 사과면 나도 할 만큼 했고 그대들도 받아들여 줄때가 되지 않았냐는 의미의 한마디였다. 이를 시작으로 나는 부글부글 들끓는 속을 그대로 드러내 보였다.


"제가 어떻게 하면 손님들 기다리신 시간까지 다 보상해드릴 수 있을까요? 제가 제안한 것은 하나도 못 받아들이겠다고 하시니 손님께서 방법을 알려주시죠."


'내가 사회화된 인간으로서 활동하는 동안은 휴화산이지 사화산이 아니란다, 학생들아.'


의미전달이 잘 됐을런지 모르겠지만 (똑똑한 분들이니 잘 알아 들었겠거니.) 이 말을 할 때의 내 표정이 어땠을지 궁금하다. 영양사도 서비스직의 일종이니 평소에는 최대한 감정을 드러내지 않고 일을 하지만 아마 저 순간에는 나도 정색이란 것을 하지 않았을까 싶다.

  

"그러면. 흠흠."

한 학생이 헛기침을 하더니 앞장서서 말을 이어가기 시작했다.


"저희 10명, A 코너로 지금 들어가서 바로 밥 먹을 수 있게 해 주세요."

하고 많은 요구 중에 하필 해달라는 것이 '새치기'라니. 너네도 참 대단하다.


"네, 이리 오세요."


앞선 글에서도 말했듯이 홀에는 배식을 기다리는 수십 명의 학생들과 교직원들로 그득그득했다. 하지만 이미 약이 오를 때로 오른 나는 검은 정장을 차려입은 남녀 학생들 10명을 대동하여 A 코너로 걸어갔다. 당연히 시선이 우리에게로 쏠렸고, A 코너에서 기다리고 있던 손님들을 스쳐 지나가며 나는 다음과 같은 대사를 던졌다.


"정말 죄송합니다. 이분들이 B코너에서 너무 오래 기다리셔서 A 코너를 먼. 저. 드시겠다고 하십니다. 죄송합니다."


그렇게 A 코너 대기 손님들에게 보란듯이 사과를 하며 그 학생들 10명을 배식받기 직전의 대기줄 사이로 욱여넣어버렸다. 모든 상황을 지켜보고 있던 A 코너의 손님들은 인상을 찌푸리며 검은 정장 학생들에게 볼멘소리를 냈다. 그제야 이건 아닌 것 같았는지 머쓱하고 뻘쭘해하는 검은 정장 학생들의 표정을 뒤로한 채 나는 그대로 조리실로 복귀했다.


점장님에게 박 터지게 혼나고 손님들에게 화풀이를 당하는 모습을 그대로 지켜본 여사님들과 조리사님들에게도 상황이 불편한 것은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아무래도 내 기분이 얼굴에 그대로 비췄을 테니. 어쨌든 점심시간은 끝나지 않았고 배식은 계속되고 있었으니 나도 그 틈에 들어가 다시 배식을 시작했다. 차마 손님들과 눈을 맞추지는 못하겠어서 고개를 숙이고 음식들만 뚫어지게 바라보며 입으로만 "감사합니다. 맛있게 드세요."라는 인사를 했다.(차마 웃지는 못하겠어서.) 그런데 그때,


"저기, 영양사님...." 함박 개수를 파악하던 조리사님이 나를 불렀다. 뒤를 돌아봤더니 조리사님의 표정이 매우 곤란해 보였다.


"네? 왜요?"


"함박이 10개 더 있어서요."


나 뭐 잘못 들었나? 뭐가 더 있다는 거야. 이해가 되지 않는다는 표정을 한 채 굳어버린 나를 보고 찬모님께서 말을 이어갔다.


"아까 조리사님이 오븐에서 함박을 한판 꺼내서 배식대 아래에 넣어뒀는데 우리 둘 다 잊어버렸나봐요.. 그런데 그걸 이제 봤네요."


이런 된장.... 못 들은 걸로 하고 그냥 아까나 지금이나 완전히 없는 것으로 하자고 하고 싶었다. 아니 차라리 내가 봐도 못 본 걸로 할 테니 나한테 그 사실을 말하지 않아줬으면 했다. 제발요!  


"...... 제가 나가서 점장님께 말씀드리고 올게요."


이 정도 되니 에라 모르겠다, 자포자기하는 심정도 생겼다. 이미 바닥을 친 자존심, 더 깨질 것도 없는데. 이런들 어떠하리, 저런들 어떠하리. 내 멘털은 한 줌 먼지가 되어 날아가는구나.


"점장님, B코너 추가 10명 배식 가능하다고 하십니다. 함박이 10개 더 있었습니다."

두 번째 샤우팅을 초연하게 기다렸다.


“..... 영양사님, 10명 더 받을 테니까 배식 끝나고 다 모이라고 하세요.”

약간의 침묵을 지나 이번엔 단체소집이란 명령이 떨어졌다. 일이 점점 커지는 것 같았다. 그래도 어쨌든 배식은 하라고 하니 울며 겨자 먹기로 10명의 추가 손님에게 배식을 했다. 하필 개수도 딱 맞춰 10개라니 운명의 장난인가. 그 난리를 치고 품절이 됐던 B코너가 다시 배식을 하고 있으니 지켜보는 손님들도 얼마나 황당했을까. 그 황당함에 더해서 10배 차원이 다른 어이없음을 추가한 기분이 딱 내 기분이었다. 다사다난 했던 점심배식이 끝난 후 나를 포함한 보조영양사님, 조리사님, 찬모님 등 '함박 실종사건'과 연관이 있는 인원들이 작디작은 영양사 사무실에 모였다.


“오늘 일 어떻게 된 건지 설명들 해보세요.”

“제가 개수 파악을 제대로 하지 못해서 일어난 일이고 저의 불찰로 인해 모든 분들께 불편을 드렸습니다. 죄송합니다.”


배식에 대한 책임은 내가 지는 것이 맞으니 먼저 말을 꺼냈다. 이왕 얻어터진 거 몇 대 더 맞는다고 크게 달라질 것도 없었다. 그러자 찬모님께서 나를 감싸주셨다.


“점장님, 제가 정확하게 파악해서 알려드렸어야 했는데 조리사님이랑 손발이 안 맞았어요. 영양사님 너무 나무라지 마세요. 저희가 더 챙겼어야 했는데 죄송해요.”

"저도 꼼꼼하지 못했습니다. 죄송합니다."


찬모님과 조리사님의 이야기를 듣고 곰곰이 생각하시던 점장님은 이내 두 분을 내보냈다.

그리곤 점장님은 나를 향해 두 번 째 샤우팅을 내기 시작했다.


“영양사님, 오늘 본인이 잘못해서 이 사단이 난 것 알고 있어?!"

"네. 알고 있습니다."


“내가 영양사님 뭘 믿고 앞으로 배식을 맡겨! 믿음이 안가잖아!”


"찬모님이나 조리사님한테 의지하지 말고 본인이 알아서 잘 챙겨야 될 것 아니야! 알겠어?"

"네. 죄송합니다."


‘똥줄이 탄다.’라는 걸 몸소 체험해볼 수 있었다. 마음이 조급해서의 의미가 아니라 점장님의 분노 가득찬 말들로 온 몸을 샤워하면서 내 자신이 겁에 질린 것을 느꼈기 때문이다. 학창시절, 학교에서 선생님들께 혼났던 것은 정말 아무것도 아니였구나 싶었다.

점장님은 어쩌면 이 일을 통해 내가 무언가를 배우길 바랐을 수도 있다. 그런데 그런 바람과는 다르게 나는 되려 영양사가 내 길이 아니라는 교훈을 배워버렸다. 이런 일들을 겪으며 영양사로 지낸 5년 뒤, 10년 뒤 나의 모습을 상상하니 눈앞이 깜깜했고, 무엇보다 스스로에게 자랑스럽거나 뿌듯하지는 않을 것 같다는 확신이 들었다.


"그리고 영양사님 때문에 저녁에 나갈 돈가스 다 쓴 거니까 학생식당 연락해서 모자란 것 빌려와요. 저번에 빌려준 것도 받아오고. 보조영양사님은 재고조사해야 되니까 혼자 다녀오세요.”


마치 본인이 책임지고 챙겨야 할 업무를 제대로 해내지 못한 것에 대해 무거운 것을 옮기는 형벌을 주겠다는 의미로 느껴졌다. 그렇게 나는 '벌'을 받기 위해 사무실을 나서는데 보조영양사님이 붙잡았다.

"영양사님.. 그래도 같이 다녀올까요? 너무 무거울 것 같은데.."

"아니에요. 재고조사하셔야죠. 혼자 다녀올게요."


분명 혼자 들고 오기 버거운 양일테지만 우선 이 공간을 벗어나 혼자 있고 싶다는 생각이 커서 도움을 거절하고 학생식당으로 향했다. 가는 도중 친구들에게 연락을 했다.


새부리 : 얘들아, 나 영양사 때려치울 거야. 못해먹겠다. 열 받고 너무 분해서 눈물 날 것 같은데 참고 있음.

최소 : 무슨 일 있어?

링롱 : 뭔데 뭔데.

박주 : 헐. 곪은 게 터진 거 아냐?


털어놓을 곳이라곤 영양사라는 직업을 잘 알고 나를 잘 아는 대학교 친구들 뿐이었다. 문자로 구구절절 설명하기 어려우니 퇴근하고 통화를 하자는 메시지를 끝으로 학생식당에 도착했다.


똑똑.


"점장님, 안녕하세요~"

"아~ 오셨어요. 영양사님~ 이리 오세요!"


학생식당 점장님과 함께 조리실을 가로질러 냉동고로 향했다. 저녁에 써야 할 돈가스와 지난번 우리 식당에서 빌려준 냉동식품까지 모두 가지고 오라는 점장님의 지시데로 가져가야 할 것들은 12~3kg 정도가 되었다. 식당 간의 거리도 거리인데 언덕과 계단을 올라야 해서 꽤 험난한 복귀가 될 것이 뻔했다. 그때 마침 곁에서 나와 점장님을 지켜보던 학생식당 조리실장님이 걱정 어린 투로 물어보셨다.


"영양사님, 근데 이거 다 혼자 가지고 갈 수 있어요? 너무 무거울 것 같은데? 계단 어떻게 올라갈 거예요?"

"내 말이요. 실장님, 그럼 지금 시간 좀 되시면 영양사님이랑 같이 옮겨다 주실 수 있으세요?"

“그래요. 가서 커피나 얻어 마시고 와야겠다~”

점장님께서 대신 도움을 요청해 주셨고, 실장님께서는 흔쾌히 응해주셨다. 그리곤 끌차에 냉동식품을 싣고 교직원식당으로 돌아갔다.


"아니, 이걸 어떻게 혼자 다 가지고 갈 생각을 했어요? 끌차도 없이?"

"그러게요. 그 생각을 못했네요."


‘도망치듯이 뛰쳐나와서 그런 이성적인 생각을 할 겨를이 없었는걸요.’


아무튼 실장님의 도움으로 무사히 식당으로 돌아왔다. 식당에 도착하자 여사님들께서는 삼삼오오 모여 티타임을 가지고 계셨다.


"어라~ 실장님 오셨네~"

"네, 여사님. 아니 왜 영양사님을 혼자 보냈어~ 이 무거운 걸 어떻게 들고 가라고~"


나는 못들은 척 영양사 사무실로 들어갔다. 오후에는 밀린 업무를 기계처럼 마치고 저녁 배식 후 퇴근을 했다. 집으로 돌아가 오늘의 일들을 친구들에게 털어놓자 그제야 서러움이 폭발해 참았던 눈물이 주룩주룩 흘렀다. 내가 이러려고 대학교 나왔나부터 시작해서 대기업 들어가면 주변 사람들이 좋은 거지 내가 좋은 건 하나도 없다고, 회사에 돈이나 벌어다 주는 기계 취급, 아니 기계 들어간 부품 중 하나이니 언제든 갈아 끼우면 그만이라고 신세한탄을 주저리 늘어놓다 내일 출근을 위해 어쩔 수 없이 친구들과의 통화를 끝맺었다. 침대에 누워 한눈에 들어오는 천장을 바라보니 한숨이 절로 나왔다. 아침이 되면 내 자존심이며 자존감을 모조리 짓밟아 놓은 굴욕적인 그 장소로 다시 돌아가야 한다니. 잠이 오질 않았다.


생각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어떻게 하면 출근하지 않을 수 있을까에 대한 고민을 하기 시작했다. 아프다고 할까, 아니면 고향 집에 일이 생겼다고 할까, 이런저런 궁리를 했지만 그렇다 할만한 논리 정연한 거짓말이 생각나지 않았다. 게다가 이런 거짓말들은 일시적으로 문제를 외면할 수 있는 방편일 뿐이었다.


해답을 찾지 못한 나는 단체급식 영양사로 일을 하면서 내가 이 일을 통해 사람들에게 어떤 도움을 주고 그로 인해 내가 얻어갈 보람이랄께 과연 있을지 까지 생각이 미쳤고 깊은 고민에 빠졌다. 직업관에 대해 생각을 하게 된 것이다. 단순히 '취직'이 목표일 때는 몰랐던, 보다 근본적인 "직업 가치관"에 대한 생각을 그제야 해 볼 수 있었다. 이때부터 나의 가치관과 영양사라는 직업의 결이 다르다는 문제점을 인식하기 시작했던 것 같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다양한 방법을 시도해 볼 수는 있겠으나(인사이동, 발령 등), 퇴사를 해본 사람은 알겠지만 그 다양한 방법조차도 나에겐 부질없는 것이라 느껴졌다. 아무튼 나는 차라리 그만두는 것이 유일한 해결방법이라는 결론을 내리게 되었다. 어쩌면 그만두는 것은 단순히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겠으니 회피해버리는 행동일지 모르겠다. 하지만 그땐 퇴사라는 방법이 유일한 해결책으로 보여졌다.


실무 영양사가 되어 '책임'질 일이 많아졌지만, 내가 왜 그 업무들에 대해 책임을 지고 감당해내야 하는지 납득을 시켜준 사람은 한 명도 없었다. 회사가 힘드니 (설마 내 통장잔고보다 힘들까) 무보수 야근과 주말출근을 하는 희생을 해서라도 각종 행사들을 치러내어 매출을 올려야 한다고 강요를 당하기도 했고 (매출이 우수하다고 남들처럼 성과급이라도 주면 모를까..), 위생점검을 잘 받기 위해 평가 규정에는 없는 보여주기 위한 새로운 일을 만들어 업무를 하며 밤 11시~12시 까지 남았던 적도 있었다. 그리고 업무 외에 친목도모라는 명목으로 나의 주말을 희생해야 하는 경우도 종종 있었다. 어쩌면 이런식으로 평소에 쌓여있던 부정적인 감정들이 '함박 실종사건' 덕분에 수면 위로 드러난 것 일수도 있겠다.


사람마다 차이는 있겠지만 나는 특히나 이유 없고 동기부여가 되지 않는, 소위 말해 까라면 까라는 식의 업무지시에 반감이 크다는 것을 시간이 흘러 사회생활의 경험이 쌓이다 보니 알게 되었다. (누군가는 그런 나를 사회 부적응자로 볼 수도 있겠다.) 그러다 보니 납득이 안되고 이해가 가지 않는 업무에 대해 책임감이 커진다는 것이 달갑지 않다. 도대체 스스로 받아들여지지 않는 업무를 단순히 상사의 지시와 '해야 한다.'라는 이유만으로 어떻게 책임감 있게 진행을 할 수 있을까, 분명 한계가 있을 텐데. 아무튼 그때의 나라면 내가 왜 그만두고 싶은지에 대한 이유를 '짜증 나서, 못 해 먹겠어서.'라는 감정적인 이유를 들었겠지만 지금의 나는 그 원인을 명확히 알게 된 것이다.


'함박 실종사건'은 2015년의 일이다. 벌써 수년 전이지만 그때의 기억을 회상해 다시금 글을 쓰고 있는 지금도 가슴이 두근두근거리고 열받아서(!) 글쓰기를 몇 번이고 중지했다가 다시 쓰기를 반복했다. 어쨌든 이 사건 덕분에 위기를 기회로 삼아 나의 두 번째 탈영양사 계획을 추진하게 해주는 굵직한 계기가 되긴 했다만.


그러니 오늘의 결론은 그때의 내가 지금껏 물음표를 내려놓지 않고 살아온 것은 정답인 삶이었고 앞으로도 나는 나에게 주어진 업무에 대해 끊임없이 물음표를 붙일 것이다. (일 안하겠다는 말로 들리나?) 여전히 사회에는 동기부여를 통해 구성원의 능력을 한껏 끌어올릴 수 있는 양질의 회사는 극히 드물어 보인다. 그러니 업무의 이해도가 높고 명석하게 책임을 지는 방법까지 통달한 상사는 더더욱이 만나기 어려울 것이다. 나 역시도 그 자리에 올라간다고 해서 그런 좋은 상사가 될 수 있을 거란 확신도 없을 뿐더러 자신감은 더더욱이 없다. 하지만 언젠간 배울 점이 많고 성과와 목표만 운운하지 않는 그런 상사와 회사를 만나기를 바란다. (없으면 내가 회사 차리지 뭐.)


아무튼, 이쯤에서 궁금할 것이다. '함박 실종사건'으로 퇴사를 했는지 아닌지.


 

결론부터 말하자면 아니다. 결정적인 사건이 하나 더 있었다. 이 사건을 명명해보자면...


"내 뒷담화를 하고 다닌 동기에게"


  


'영양사 아닌데, 영양사는 맞아요.' 매주 목요일 업데이트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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