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새부리 Mar 25. 2021

대기업 인턴 영양사 2주차에 느낀 점

영양사 아닌데, 영양사 맞아요.(5)


본 편의 이전 이야기



그토록 바라고 바라던 ‘대기업 인턴 영양사’가 되었으니 영화관 매니저 준비는 놓아줄 수밖에 없었다.(제대로 된 준비는 시작도 못해봤지만..)


매니저 : 새부리님 여기 퇴사 서류 작성해주세요.

새부리 : 네~ 그동안 감사했습니다. (서류 적는 중) 입사날짜.. 2013년.. 6월.. 1일..

매니저 : 본인 입사날짜 알고 있는 사람 잘 없는데, 새부리님은 기억하시네요?

새부리 : 그런가요? 제가 딱 9개월 채우고 가서 그런가 봐요.

매니저 : 새부리님은 형제가 어떻게 돼요? 첫째예요?

새부리 : 아니요~ 형제 많은데 거의 막내예요.

매니저 : 그래요? 난 새부리님 일하는 것 보면 꼭 첫째 같았거든요. 이번에 좋은데 취직해서 가신다고 들었어요. 거기 가서도 지금처럼 열심히 하시고 앞으로 파이팅하세요!

새부리 : 네. 덕분에 좋은 추억 많이 만들고 갑니다. 그동안 감사했습니다.


그렇게 영화관에 퇴사 소식을 알리고 나서도 입사 하루 전날까지 영화관에서 근무를 했으니, 지금 생각해보면 나는 영화관일을 꽤나 재밌어했던 것 같다.

그렇게 나는 영화관 매니저와 영양사의 갈래길 중 주저 없이 영양사의 길로 들어서버렸다.


그리고 신규직원 교육을 받기 위해 캐리어를 들고 서울로 상경했다.


'아! 기다리고 기다리던 나의 취직!

1년을 기다려 만난 나의 운명,

나라는 존재의 가치를 알아봐 준 사람 보는 눈 있는 그 회사!'


회사 앞에 도착하니 나도 이제 이 빌딩 숲을 거니는 수많은 커리어 우먼들 중 한 명이 되었구나 싶은 뿌듯함과 감격스러움이 파도처럼 밀려들었다. 1년 만의 취뽀(취업뽀개기)라니! 그럴만하지 않은가..!


집합장소에는 나를 포함한 25명의 인턴 영양사들, 아니 '동기'들이 와있었다. 동기란 것은 참 신기하다. 학창 시절을 함께 했던 동창도 아니고, 유년시절부터 못볼꼴 다 본 xx친구도 아닌 우리가 회사라는 곳에서 만나 동기라는 이유로 험난한 사회생활의 유일한 버팀목이자 속마음 다 터놓을 수 있는 대나무 숲이 되어주니 말이다.(모든 동기가 다 그렇다는 것은 아니지만..)


우리 동기들은 6개월의 인턴과정을 거친 후 심사를 거쳐 정규직으로 전환이 되는 조건으로 입사를 했고 첫 번째 과정으로 합숙교육을 받게 되었다.


인사담당자 : 자 다들 다시 한번 입사를 축하드립니다. 오늘부터 앞서 안내드린 것처럼 총 2주간의 합숙교육을 진행하게 됩니다. 해당 기간 동안은 여러분이 ‘OO인’으로 거듭나기 위해 영양사 업무 외에도 서비스 및 비즈니스 매너, 회사 지침 및 규정 등을 습득하는 시기로 단순 합숙이 아닌 '교육 및 역량강화'의 시기임을 강조드립니다. 그에 따라 인턴분들은 최선을 다해 합숙에 임해주실 의무가 있습니다.


인사담당자의 상황설명을 시작으로 나의 영양사로서 그리고 직장인으로서의 사회생활이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합숙교육 시기는 글을 쓰는 지금의 시점으로부터 햇수로 약 7년 전의 이야기이니 솔직히 말하면 교육내용이 머리에 남아있는 것은 한 가지도, 단 한 가지도 없다고 자부한다. 대신 리조트 시설이 약간 올드했다는 것과 식사는 그럭저럭 먹을만했다는 것, 동기들과 밤을 지새우며 보냈던 시간들은 선명하다.

리조트로 향하던 버스 안에서는 1차 면접부터 같이 합격한 동기 '혤이'와 수십 장의 셀카를 연신 찍으며 앞으로 닥칠 시련은 모른 채 직장인이 된 기쁨의 인증샷을 열심히 남겼다. 지금 그때 찍은 사진을 보면 참.. 해맑다.(촌스러움은 덤이고)


나와 혤이는 합숙교육기간 동안도 같은 조로 교육을 들었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헬이와 짝꿍이 되어 활동을 하게 되었고 저녁시간에도 혤이네 숙소에 가서 두런두런 이야기하는 일이 많았다.


지니 : 우나야 너 그거 기억나? 우리 저번에 면접 때 만났던 거?

우나 : 정말? 어디?

지니 : 거기 면접 볼 때 밥 주는 곳! 화장실에서 봤었는데

새부리 : 헐! 너네도 거기 면접 봤었어? 나돈데~ 난 너네 전등 나갔다고 전등 좀 갈라고 지적하고 나왔다.

지니 : 언니 진짜에요? 대박이다. 진짜 웃겨.

혤이 : 결국 여기서 다 만날 운명이었나 보네~

우나 : 그러니까. 난 면접을 어떻게 봤는지 기억도 잘 안나.

새부리 : 좋은 해석 감사합니다. 아, 이제 자러 가야겠다. 내일 아침에 또 구보 뛰어야 되지? 너무 싫어~


영양사 교육을 받는데 왜 아침마다 구보를 시키고 체조를 시켰는지.. 여전히 도무지 이해가 안 가지만 아무튼 전국단위로 뽑힌 25명의 인턴 영양사가 함께 모일 수 있는 유일한 시기였던 합숙교육 (디테일하게는 저녁시간) 덕분에 우리는 더욱더 단단한 동기가 되었다. 그렇게 합숙교육이 마무리되는 마지막 날. 그 날은 화이트데이이자 '발령'이 나는 날이었다.

교육장소에 도착해보니 화이트보드에 각자의 발령 장소가 적혀있었다. 나의 발령 장소는 서울 소재 한 대학교 교직원 식당이었다. 그토록 바라던 서울인 데다가(애초에 서울로 지원을 해서 붙은 것이긴 했다.) 서울 중심부라니 거기다 대학교라..! 학교 다닐 때 보던 학생식당이라 생각하니 익숙해서 그런지 다른 동기들에 비해 꽤나 만족스러운 발령이라고 생각했다.


혤이 : 다들 어때? 만족해? 난 기분이 싱숭생숭하다, 괜히.

지니 : 하.. 언니 부럽다. 여의도면 정말 좋을 거 같은데. 난 가평이에요 언니..

우나 : 난 천안.. 산업체라는데. 그래도 난 다른 동기랑 같이 사택 준데요.

새부리 : 난 당장 집부터 구해야겠어, 주말에.

혤이 : 우리 같이 서울이다! 집 빨리 구해야겠네?


각자 지원한 지역별로 발령이 났고 그렇게 우리는 합숙교육을 마치게 되었다. 서울이나 수도권 근교로 발령 난 동기들은 발령지로 출근하기 전 본사로 첫 출근을 하였다. 그리곤 회의실에 모여 앉아 해당 팀장님이 출장나갈 준비가 되면 함께 발령지로 향했다.


팀장 1 : 여의도? 나오세요~ 갑시다.

혤이 : 네..!(바이 바이)


이렇게 한 명씩 불려 나갈 때마다 서로 우려 섞인 격려의 인사를 나누었고 먼저 떠나는 동기들은 꼭 살아남자는 눈빛과 함께 회의실 밖으로 사라져 갔다.


팀장 2 : OO대학교? 가요~

새부리 : 넵..!


나의 발령지는 본사와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었기에 팀장님과 지하철을 타고 움직였다. 뻘쭘함과 어색함, 긴장감 등이 얼굴에 덕지덕지 묻어났는지 팀장님은 그런 나의 모습이 재밌다는 듯이 살짝 놀리는 투로 이런 말씀을 하셨다.


팀장 2: 교육은 어땠어요? 회사 관해서 들은 이야기 없어요?

새부리 : 음.. 네. 특별히 들은 이야기는 딱히..

팀장 2: 우리 회사에 수백 개의 업장이 있잖아요? 그만큼 많은 영양사님들이 계시고, 지금 영양사님이 발령받으신 곳이 그중 손에 꼽히는 곳이라고 할 수 있죠.

새부리 : 어떤.. 면에서요..?

팀장 2: 빡센 업장이자 빡센 점장님이 계시는 곳.

새부리 : ...?


학생으로 쓰는 '빡세다.'라는 표현이 사회로 나오면 어떤 의미로 탈바꿈하는지 잘 알지 못했던 인턴 새부리. 지금의 내가 그때의 나에게 어떤 신호를 보낼 수 있다면, 아무것도 보내지 않겠다. 모르고 당하는 편이 알고 당하는 것 보다 나으니까.


팀장 2: 안녕하세요, 영양사님. 잘 지내셨죠? 여기 새로 온 인턴 영양사님.

새부리 : 안녕하세요.

영양사 : 안녕하세요~ 팀장님, 지금 점장님 잠깐 학교 과장님 뵈러 가셨어요.

팀장 2: 그래요? 그럼 사무실에서 잠시 기다릴게요~


'오~ 여기가 사무실이구나! 아.....? 여기가.. 사무실이구나...?'


분명 사무실로 들어간다고 했는데, 아무래도 팀장님은 비밀의 방을 열기 위해서는 원하는 것을 잘 생각해야 한다는 것을 모르셨던 것 같다. 1~2평 남짓되는 작디작은 공간에 책상 두 개가 우겨져 있었고, 없는 것 빼고 있는 것들이 나름의 질서를 가지고 자리하고 있었다. 하지만 정말 작았다.


영양사 : 팀장님, 차 좀 드릴까요?

팀장 2: 저는 커피 주세요~

영양사 : 인턴 선생님도 차 드릴까요?

새부리 : 아, 저는 괜찮..

영양사 : 녹차 드릴게요~

새부리 : 네..


(좋아하지 않는) 녹차를 홀짝홀짝 마시며 사무실이라고 칭하던 작은 방을 둘러보고 있었다. 음, 그래 내가 일할 곳이 이제 여기란 말이지. 아담하고 작고 소중하다.


점장 : 아~ 팀장님. 오셨어요? 과장님이랑 이야기가 좀 길어졌어요.

팀장 2 : 점장님, 여기 새로 온 인턴 영양사님.

점장 : 아~ 얘기 들었어요. 인턴샘 집이 강원도라고 들었는데 집은 구하셨어요?

새부리 : 이번 주말에 구하려고 합니다.


아마 나는 점장님의 노련함과 오랜 사회생활로 쌓인 내공에서 오는 자연스러운 당당함에 살짝 기가 눌렸던 것 같다. 내 첫 직속 상사라는 무서움도 가미되어 좀 더 솔직해져 보자면, 쫄았다.


점장 : 그래요. 부장님이 새부리님은 따로 집 구해야 한다고 일찍 들여보내 주라고 하셨어요. 오늘은 들어가 보세요~

새부리 : (호엥)

팀장 2 : 들어가요~ 괜찮아요.

새부리 : 그럼.. 먼저 들어가 보겠습니다.


없던 순발력을 단전부터 끌어올려 잽싸게 퇴근을 했다. 26년 인생 중 출근이라는 것을 처음 해봤지만, '퇴근'은 정말 달콤했다. 이런 건 학교에서 배운 적 없는 것 같은데 어떻게 아는 걸까?


그리고 일요일 저녁이 찾아왔고 자기 위해서 누워 천장을 바라보는데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음... 내일 드디어 정식으로 첫 출근하네. 와.. 출근하기 싫다.'





[Photo by. NatableHistory]

'영양사 아닌데, 영양사는 맞아요.' 매주 목요일 업데이트됩니다.



이전 04화 드디어, 영양사가 되었다.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