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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새부리 Mar 18. 2021

드디어, 영양사가 되었다.

영양사 아닌데, 영양사는 맞아요.(4)

[함께 곁들이면 좋을 bgm 추천드립니다. 347aidan-Dancing in my room]



본 편의 이전 이야기 '영양사 말고 미소지기'



‘뭐지.. 나만 남으라고? 흠.. 면접에 문제가 있었나..?’


나머지 지원자들과 다른 면접관이 나가고 난 후 나는 면접관과 1:1대치상황이 되었다.


어색한 침묵 속에 살짝 미간을 찌푸린 채로 면접관은 계속 뒤적뒤적 서류를 살펴보는 듯했다.


‘내 서류에 뭐가 문제가 있구나.’


식은땀이 흐르는 몇 분 정도의 시간이 흘렀다.

“새부리님 좀 가까이 와 보시겠어요?”


“넵.”


나는 엉덩이에 붙은 의자를, 앉은 채로 엉거주춤하게 들고가(일어서서 당당하게 움직이란 말이야!) 어색하게 면접관과 마주 앉았다.


“흠.. 새부리님 제가 자소서를 좀 살펴봤는데요.”


아.. 자소서..? 내 자기소개서가 너무 소설 같았나. 뭐 인생에 흩뿌려져 있던 기억의 조각을 컴퓨터 디스크 조각모음 하듯이 모아 약간의 각색(?)을 한 것뿐인데, 어쩌지. 그게 사실 제가 맞긴 맞는데 창작은 아니고요, 면접관님. 그게 제가 맞긴 맞습니다. 거짓말 한 건 아닌데요.


"사실 솔직히 말씀드릴게요. 새부리님 스펙이면 보조영양사는 조금 아쉬워요. 정확히는 아깝다고 표현해야겠죠.”


'네? 갑자기요?'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순간 안도의 마음이 들며 “아.. 하하..” 하는 당황스러움이 잔뜩 묻어난 머쓱한 웃음만 나왔다.


“취업 준비 하신지 1년? 정도 되신 것 같네요?”


“네. 맞습니다.”


“제가 남으라고 말씀드린 이유는, 당황스러우셨겠지만 사실 저희 회사에 새부리님과 같은 학교 나오신 분들 많이 계시거든요, 정규직으로. 저랑 친한 분도 있고요.”


“아, 그렇군요.(부럽다..)


“그래서 안타까워서요. 도움이 될지는 모르겠지만 말씀드리고 싶은 것이 있어서 남으라고 얘기드렸어요. 제가 살펴보니 자소서가 한눈에 안 들어오거든요. 준비하시면서 스펙 키우는 것보다는 자소서를 좀 다듬어보세요.”


"조언 감사합니다."


면접장을 나와 집으로 돌아가는 길, 머릿속 사고 회로는 물음표와 느낌표로 가득 찼고 구름 위를 둥둥 걷는 것 같은 비현실적인 기분이 들었다. 계속해서 내가 겪은 상황에 대해 곱씹어 보았다. 그러니까 자소서를 좀 고쳐보란 말이지.. 스펙이 문제가 아니고.. 그렇구나.. 자기소개서라.. 그러다 문득, '나 나름 인정받은 건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 학교 선배들도 많다잖아. 그럼 나도 들어갈 수 있지 않을까?(평생 취직 못할 줄 알았는데.. 엉엉.. 어머니!)’

‘와.. 잠깐만. 면접관이 저렇게 이야기해준다는 건.. 나 승산 있는 거 아닌가?’


당시 면접관이 베푼(?) 작은 선행이 이정표 하나 없던 '취업'이라는 초행길에서 혼자 길을 잃었다고 절망하고 있던 나에게 다시 걸어갈 수 있는 큰 힘이 되어 주었다. 어쩌면 난 길을 잃었던 것이 아니라 남들보다 많은 경험을 하며 인생의 지구력을 키우고 있는 중이지는 않았을까. 덕분에 그 경험을 소재삼아 이렇게 글을 쓰고 있는 것을 보면 말이다. 아무튼 그때의 경험은 당시에도 지금도 참 감사한 선물이었다.


그리고 다음 날, 보조영양사 자리에 합격 통보를 받았다. 취업준비 중 ‘첫 합격’이었다.


업체 담당자 : "안녕하세요. 새부리님. 어제 면접 보셨던 곳, 최종 합격하셨습니다. 축하드립니다."


새부리 : "아, 감사합니다. 하지만 저는 입사 포기하겠습니다. 기회 주셔서 감사합니다."


업체 담당자 : "네? 어렵게 붙으셨는데 포기라니요. 저희 쪽에서도 이렇게 포기하시면 곤란합니다."


새부리 : "네. 정말 죄송합니다."


‘면접관님, 정규직으로 인사드리겠습니다!(충성충성)’


그렇게 속으로 다짐했지만 과연 옳은 결정일 것인지 여전히 불확실한 미래에 대해 약간의 불안과 두려움도 있었다.(감히 합격을 거절해?) 그럼에도 불구하고 왠지 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자신감이 불안과 두려움을 확신으로 바꾸어주고 있었다. 그렇게 다시 영화관으로 출근을 했고 라커룸에서 유니폼으로 갈아입던 중 문자가 왔다.


‘안녕하십니까. 귀하께서는 2014년 인턴 영양사 공개채용 전형에 합격하셨습니다.’


대기업 인턴 영양사 서류전형 합격 문자였다. 이번에야말로 붙을 자신이 있었다. 일 년간의 취업준비로 여러 번의 면접 경험이 쌓인 데다가 자신감까지 탑재되었으니 말이다.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머릿속으로 틈틈이 면접 질문에 대한 답변을 준비하는데 이래도 되나 싶을 정도로 막히는 것 없이 술술 답변이 생각났다. 당장 면접을 봐도 되겠다 싶을 정도로 느낌이 좋았다.


그렇게 서류전형 합격 일주일 후 1차 실무진 면접을 보러 갔다. 때는 바야흐로 2014년. (요즘은 안 그러는 것 같은데) 한창 면접 시작 전 ‘조구호’를 만드는 것이 트렌드였다. 면접 시작 전, 첫 단계. 함께 면접을 보는 지원자들이 대기시간에 미리 회사를 위해 태어난 것처럼 둔갑술 혹은 자기 최면을 한다. 그리고 이 한 몸을 바친다던가 회사에 뼈를 묻겠다던가 하는 다짐을 우려낸 조구호를 정하게 된다. 그리고 면접장에 입장하여 그렇게 정해진 조구호를 외친다. 하는 사람이나 보는 사람이 모두 머쓱해지면 실패한 조구호가 되고, 차라리 아무 반응이 없으면 평타는 치며 면접이 시작되는 그런 문화가 있었더랬다.


하필 나는 면접 마지막 날의 마지막 시간대의 조였다. 면접관도 사람인지라 가장 지쳐있을 시간이고 혹여나 앞선 면접에서 맘에 드는 지원자들이 많았다면 특히나 빨리 끝내고 싶어 할 것이 뻔했다. 그래서 우리는 조원들이 도착하자마자 ‘남진-님과 함께’를 연습했다. 누누이 말하지만 그땐, 조구호가 트렌드였다.


면접관 A : “안녕하십니까, 다들 기다리시느라 수고 많으셨어요. 앉으세요.”


지원자 A : “저희 준비한 조 구호를 보여드리겠습니다!”


“원, 투, 쓰리, 포!”

“저 푸른 초원 위에, 짜짜라 짜라짜짜!”


서류에 집중해 있던 면접관들의 시선이 일제히 우리에게로 집중되었다. 신성한 면접장에서 갑자기 트로트라니.


“사랑하는 고객님과~ 한 평생 살고 싶네!”

“감사합니다!”


약간의 마가 뜨는 어색한 시간이 가고 한 면접관 분이 입을 열었다.


면접관 B: "어휴~ 보는 우리가 다 민망하네!"

경직되었던 면접장 안에 소소한 웃음소리가 퍼졌다.

면접관 C : "그래도 재밌네요. 준비하시느라 고생들 하셨어요. 앉으세요."


그렇게 화기애애한 분위기로 면접이 시작되었다. 다섯 명 모두 어떤 대답을 해도 잘 웃어주셨고, 그동안 경험했던 면접 중 가장 편하고 나답게 면접을 보았던 것 같다.



일주일 뒤 결과 발표가 났다.



‘합격’.



그리고 최종 면접을 보게 되었다.


면접장에 도착하니, 앞선 면접에서 함께 조구호를 노래했던 분들이 모두 와계셨다. 보통 면접장에서 만나는 것도 인연이라고 번호교환을 하는데, 우리는 어찌 될지 모르는 사이에 번호교환은 사치라며 헤어졌던 터라 견우와 직녀처럼 애틋한 반가움이 있었다.


2차 면접은 최종 임원면접으로 실무진 면접과는 사뭇 다른, 진지한 자세로 임하게 되었다.

당시 상무님께서 면접에 들어오셨다.


“새부리님은 졸업 하신지.. 1년? 되셨어요. 1년 동안 뭐 하셨어요?”


속이 쓰렸다.


‘취업이 안돼서 이래저래 살다 보니 1년이 되었네요.’라고 했으면 어땠을까?


실제 답변은 이러했다.


“졸업하자마자 취업이 되지 않아, 고향으로 내려가 상반기에 영화관 아르바이트를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하반기에는 위생사 자격증을 취득했고, 현재 한식조리사 실기시험 준비 중입니다.”



상무님은 답변을 듣고 두 번 정도 고개를 끄덕이셨다.



면접이 끝나고 희비가 갈리는 분위기 속에 내 옆자리의 면접자 분과 번호를 교환하게 되었다.



“합격하면 연락해요. 우리!”



그리고 그분은 내 첫 직장 동기가 것도 가장 친한 동기가 되었다.



'영양사 아닌데, 영양사는 맞아요' 매주 목요일 업데이트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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