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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낮은 속삭임 Sep 07. 2024

흔적만 남은 기찻길을 지키는 급수탑

기찻길은 사라지고 급수탑만 남아있다

고향 마을은 기찻길 옆의 작은 동네였다. 기차가 지나가면 그 진동으로 온 집안이 흔들렸지만 어느 누구도 그 진동에 놀라지 않는 사람들이 살고 있었던 그 동네. 그 당시의 가난한 동네들이 거의 그러했듯이 우리 동네 사람들도 기찻길 옆의 땅을 조금씩 텃밭으로 경작하면서 살아가고 있었다. 동네에서는 기차역이 멀리 보였다. 동네를 돌아나가도 걸어서 십여 분이면 닿을 수 있는 기차역은, 그래도 과거에는 제법 큰 역이었다. 그것을 알 수 있는 것이 기차역 부지 내에 있는 커다란 급수탑이었다. 어릴 때는 그 높은, 흰색에 가까운 다각 기둥 모양의 탑이 무엇인지 궁금하기도 했다. 가까이 다가갈 수도, 정체를 알 수도 없었던 그 탑. 나중에야 알게 된 것이었는데 그것은 과거 증기 기관차에 물을 공급하던 급수탑으로 1940년에 만들어진 것이라고 한다. 지금은 국가등록문화재로 지정되어 보존되는 탑이지만, 어린 시절에는 그저 높이 솟은 정체 모를 조형물이었을 뿐이었다.

이 소도시가 발달할 때 기차역과 버스터미널은 도심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위치해 있었고, 항상 사람들이 드나들어서인지 역이나 버스터미널은 늘 사람들로 붐볐다. 조금만 걸어 들어가면 바로 시내로 연결되니 이쪽은 도시 외곽에 비해 땅값도 비쌌고 그래서 개발이 느렸다. 그래서 도시의 외곽이 개발되기 시작했고 도심의 인구는 점차 외곽의 신도심으로 이동하게 되었다. 그에 따라 버스터미널이 먼저 외곽 신도심과 가까운 곳으로 이동했고, 버스터미널이 있던 자리에는 대형마트가 들어서서 이제는 그곳에 버스터미널이 있었던가 싶을 정도로 내 기억 속에서도 가물가물 했졌다. 기차역도 곧 이동한다는 말은 있었으나 꽤 오랫동안 진척되지 않고 있었다. 구불구불한 철로를 직선화하여 고속열차가 설 수 있는 역을 조성하고자 하는 것은 그렇게 쉽게 이루어질 일은 아니었다. 그러나 그 모든 작업이 순조로이 이루어졌고, 기차로 이동하는 사람들의 수가 점점 줄어들면서 간이역들이 하나둘씩 폐쇄되었다. 그리고 이 도시를 통과하던 철로의 직선화가 완전하게 이루어지면서, 기차역도 버스터미널 부근으로 이동하게 되었다. 기차역이 이동하면서 도심에 있었던 기차역의 선로 철거 작업이 이루어졌다. 직선화가 되어 더 이상은 기차가 다니지 않는 길의 선로는 어느 순간 죄다 사라지고 없었다. 오래된 기차 역사만이 문화시설로 남아 기차역이 이곳에 있었다는 것을 알려주고 있었다.

고향 마을의 철로도 마찬가지로 기차역의 이동과 함께 철거되었다. 신호등과 차단기가 있었던 철도 건널목과 건널목 사무소는 벌써 아주아주 오래전에 사라졌으며, 그 사무소를 지켰던 역무원들이 예쁘게 가꿔놓았던 작은 정원 동산도 돌보는 이가 없으니 조금씩 잡초로 뒤덮여 갔고, 선로가 있을 때는 사람들이 통행하지 않도록 커다란 철창으로 막아두어서 잡초들은 점점 더 자리를 넓혀가고 있었다. 그러다가 이제는 동네 뒤쪽에서 시내 쪽으로 가는 길을 가로막던 그 선로마저 어느새 철거가 되어 있었고, 선로 아래에  깔려있었던, 묵은 불그스름한 녹을 띤 자갈들만 그 자리를 채우고 있었다. 기차 차량 점검을 위해 차량을 붙였다 떼었다 하는 작업인 입판을 진행했던 보조철로는 마을길로 들어오는 진입로를 연결하는 부분만 마을을 위해 남겨두고 모조리 걷혀 있었는데, 그마저도 어느 순간 시멘트로 깨끗이 정리된 길이 만들어져 버려, 이곳에 보조철로가 있었는지조차도 잊어버리게 만들었다. 

그 옛날에는 선로 옆의 비탈진 곳까지 마을 사람들이 경작을 하는 바람에 기차역에서는 이를 막기 위해 비탈진 곳과 이어지는 좁고 평평했던 땅에 큰 나무들을 심어버렸다. 아래쪽까지 햇빛이 들지 않아서 결국은 사람들이 경작을 포기하게 만들어 버린 방법이라고 할까. 실제로 그 땅에 농사를 지었던 분들은 그 나무들로 인해서 꽤나 쏠쏠했었던 그 땅의 경작을 그만두었다. 무분별한 경작으로 인해 안전사고가 일어날 수도 있으니 아마 철도청에서 그리 실시했었던 것 같다. 지금도 동네 뒤편 입구로 들어가면 그 당시에 심었던 커다란 나무들이 검은 숲을 이룬 것처럼 푹 꺼진 곳에 자리하고 있다. 그러나 그때 그 좁은 땅조차 밭으로 가꿨었던 마을 사람들은 이제는 나이가 들어서 더 이상은 마을 텃밭을 경작할 힘마저도 없는, 구부정한 노인들이 되어 이 작고 허름한 동네를 지키고 있다. 옛 강변도로였던 둑길에 심어진 오래된 아름다운 벚나무들이 줄을 지어 봄에 꽃망울을 터뜨리면 그로 인해 사람들이 찾아오는 오래된 우리 동네, 그리고 곳곳에 작은 벽화들이 눈에 띄게 그려져 있어서 요샛말로 '감성적인' 풍경 사진을 찍을 수 있는 곳으로 알려지기는 했지만 우리 마을은 그곳에 사는 사람들처럼 늙어가고 있었다. 그나마 기차가 지나가는 동안이었던 그때만 해도 나름대로 조금은 시끌벅적한 도시의 느낌이 있었고, 그 도시의 언저리 어딘가의 마을로 남아있는 듯했던 우리 동네는, 이제 그곳에 사는 이들의 시간까지만 남아있을 동네가 되어버렸다. 그 모든 모습을 급수탑은 그 자리에서 바라보고 있었다. 흔적만 남은 기찻길의 그 넓은 부지에 홀로 서서, 옛날 증기기관차를 떠나보냈던 때와 마찬가지로,  급수탑은 기차역과 다른 모든 기차들을 떠나보냈다. 아마도 갑자기 무너지지 않는 한, 급수탑은 여전히 자신이 서 있는 그 자리에서, 더 이상은 기차도 사람들도 돌아오지 않을 우리 동네를 그렇게 오래오래 내려다보고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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