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이 없게 느껴지는 파란색의 길
수영이라는 종목(여기서 수영은 경영)은 훈련 시간이나 거리에 비해 경기 시간이 매우 짧다. 선수들은 많을 때 한 번에 10km 이상도 훈련한다. 시간으로는 3시간까지도 말이다. 하지만 실제 경기 시간은 아무리 길어도 16분 정도다. 최장거리인 1,500m 선수가 이 정도의 시간이고 나머지 선수들은 4분 정도의 경기시간이 대부분일 것이다.
'수영은 두벽을 왔다 갔다 하는 답답한 운동이다'라고 과거에 들은 적이 있다. 외국의 수영선수 출신이 말했다고 들었다.(자세히는 모른다.) 기억에 남아 있는 걸 보면 꽤나 공감한 거 같다. 수영이라는 종목의 훈련은 꽤나 지루하고 답답할 때가 있다.(당연히 힘든 훈련일 때는 그런 느낌을 느낄 틈이 없다.) 수영이라는 종목은 대부분 실내에서 이루어진다. 실내에서 하면 당연히 계절이나 시간에 대한 인식을 하기 어렵다. 실내에서 하는 스포츠는 날씨나 계절의 영향은 받지 않지만, 풍경이 없어 시각적으로 답답하다.
그중 100m * 100개 훈련을 할 때는 더더욱 그렇다. 이 훈련을 할 때 코치들은 약 5초 정도 휴식을 가질 수 있는 시간으로 시간을 준다. 1분이나 1분 5초로 페이스를 기준으로 두고, 시간은 1분 10초 정도로 말이다. 이렇게 되면 호흡할 때와 페이스를 확인하기 위한 시간을 볼 때 빼고는 대부분 물속에 시선을 둔다. 처음에 10개는 숫자가 올라가지 않는다. 머릿속에 노래를 트는 시점이다. 가사가 기억 안 나면 노래의 같은 부분을 계속 따라 부른다. 20~40개 구간에는 정말 괴롭다. 숫자가 똑같이 올라가지 않고 힘마저 든다. 훈련에 의문마저 든다. 그 이후에는 어느 순간 정신을 놓기 시작하고 정신을 차리면 70개 90개가 되어있다. 중요한 건 마지막 10개째가 괴롭다.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 개수를 채우는 느낌이 든다. 91... 92... 이 훈련을 할 때 '의식'을 가지고 있으면 정신적으로 신체적으로 괴롭다. 마지막 10개쯤 의식이 돌아와 나를 괴롭게 하는 것처럼 말이다.
고등학교 때 겨울에 국가상비군으로 합숙 훈련을 했을 때였다. 태릉 선수촌 수영장에서 훈련을 했었다. 해가 뜨기도 전인 새벽이었다. 일반인들이 올 수 없는 수영장들의 경우 물의 온도가 더 낮다. 안 그래도 한 겨울 새벽에 수영장 바닥도 차가워서 괴로운데 물에 입수하고 열이 오르기 전까지는 정말 생지옥이 따로 없다는 말이다. 어쨌거나 400m 10개 훈련을 할 때 코치 몰래 물속 구석에서 쉬고 있을 때였다. 유독 더 파란 염료를 썼는지, 내 물안경이 그렇게 보이게 했던 건지 물속에서 본 수영장은 더 파랗게 느껴졌다. 마치 파란색의 끝도 없이 보이지 않는 길 위에 있는 느낌이었다. 그때 느낌이 아직도 기억난다. 훈련이 끝이 나지 않을 것만 같고, 너무나도 지루하고 답답하다고 느껴졌다. 왜 이 두벽을 계속 왔다 갔다만 해야 되는지 모르겠다는 생각을 했다. 마치 파란색으로 색칠된 박스 안에 갇힌 느낌. 위의 이미지에서 보이다시피 진천 선수촌과는 다르게 태릉은 내부 인테리어가 어둡다. 곰팡이도 엄청나게 보인다. 물안경을 끼고 있으면 더욱 침울한 느낌이 든다. 수영장 내부의 파란색은 바깥과 심각하게 파란 느낌마저 든다.
불편함과 고통은 다르다고 한다. 운동이나 일을 할 때 힘든 것은 불편함으로 그 행위가 끝나면 편안해지니 불편함이다. 하지만 고통은 그 행위가 끝나더라도 이어지는 것이다. 나는 유독 수영장의 '답답함'이라는 불편함을 과하게 느꼈던 거 같다. 의식하는 순간 그 느낌은 더욱 강하게 다가온다. 의식한 것과 관련된 것만 눈에 더 잘 띄고, 정보도 과하게 해석하게 된다.
시간이 지나면 싫었던 것도 아름다워 보인다던데 지금도 수영장의 그 답답한 느낌을 싫어한다. 그 외에도 답답한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특히 수영장의 물과 같이 공기가 답답한 것을 싫어한다. 어디에 있든 환기는 필수고, 환기가 되지 않는다면 내가 나가야 한다. 물론 답답한 것을 좋아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그 역치가 더 낮은 거 같다. 가끔 이렇게 생각한다. 원래는 '답답함'의 역치가 정상(일반인 수준)이었는데 수영을 하면서 역치가 낮아진 건 아닐까 하고 말이다. 나는 답답함이라는 느낌을 유독 강하게 의식하는 사람인 것이다.
수영이 야외에서 하는 스포츠였다면 답답한 훈련도 즐겼을 것 같긴 하다. 지금의 내가 경치를 즐기며 풀코스까지 뛰듯이 말이다. 그런데 어쩌면 정말 순수하게 풍경을 즐기다가 성적보다는 즐기는 것에 집중하는 선수가 되었을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