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성이 붙기까지는 시간이 필요하다.
아무도 없는 큰 수영장에 나 홀로 수영할 수 있는 경험은 수영선수 출신이라도 어렵다고 자부할 수 있다. 보통의 경우에 누군가가 당연히 있기 때문이다. 조용한 수영장에 혼자 있다 보면 가끔은 무서운 느낌도 든다. 내가 수영하는 소리가 어딘가로 사라지고 있는 듯한 느낌과 물속에서 누군가가 쳐다보고 있을 거 같은 느낌이랄까? 마치 시간이 멈추고 나만 움직이는 듯한 느낌이 든다. 배수구로 물이 빨려 들어가는 소리는 바닷가에 있는 듯한 느낌이 든다. 그리고 물속에서 수영할 때는 내가 움직이는 소리 외에는 아무것도 들리지 않는다. 나는 무서우면서도 조용한 그 느낌이 너무 좋았다. 지금도 그리운 것 중에 하나다.
그토록 간절히 원하던 선수촌에 처음 들어간 그때가 생각난다. 선수촌 숙소 방 앞에 내 이름이 붙었던 게 너무 신기했었다. 어쨌거나 나는 선수촌에 있을 때 주말 외출을 하지 않았던 적이 있다. 그때마다 혼자 수영장에 가서 약간의 훈련을 했다. 100*20개 1분 20초. 그때의 나는 약간의 자기혐오와 불안감에 빠져있었다. 나름 전국체전에서 여러 개의 금메달을 땄고, 좋은 기록으로 들어왔었다. 그러나 대단한 사람들 사이에서 나는 보잘것없었고, 기록마저 줄지 않고 있었기 때문이다. 선수촌에 들어가면 TV에서만 보던 스포츠 스타들을 볼 수 있다. 그들 틈에서는 나도 국가대표가 아닌 일반 선수인 느낌이었다. 그 외에도 선수촌의 최고의 시설은 부산에서만 수영하던 나의 기를 죽였다. 그런 시기에 수영장에 혼자 있는 그 느낌은 나에게 약간의 휴식이었다. 나는 그 조용함을 원했던 거 같다.
선수촌의 생활은 설레면서도 쉽지 않았다. 수모, 수영복, 가방, 옷에 박힌 태극기는 당연하지만 1등 외에는 허락하지 않았다. 경쟁 최전방에 있었던 것이다. 대단한 선수들과 함께 훈련을 하면서 나는 왜 저렇게 될 수 없을까? 어떻게 저렇게 해낼 수 있을까라는 생각을 했다. 그들의 마인드를 배우려고 했고, 생활 습관이나 행동을 배우려고 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좋은 것만 했던 것도 아닌데 말이다.
내가 대표팀에 들어가는 목표를 가진 것은 중학교 때다. 그전까지는 소방관이 되고 싶었다. 그냥 아무 생각 없이 수영을 하고 있었다. 나는 중학교 때 부산 사직수영장에서 훈련을 했었다. 그 당시에 내가 훈련하는 시간에 옆에서 경성대학교 선수들이 함께 훈련을 했었다. 그 선수들 중 한 명은 국가대표 출신이었고, 중학생인 우리와 함께 훈련을 가끔 같이 해줬다. 그때 당시에 사직수영장 남자 샤워실에는 온탕이 있었다. 훈련 후에 그 국가대표 출신 선배에게 이렇게 질문했던 기억이 아직도 선명하다. "어떻게 하면 국가대표가 될 수 있어요?". 지금 생각해 보면 정말 멍청한 질문이다. 케첩에 왜 토마토가 들어가요? 차가운 물은 왜 차가워요? 어떻게 하면 나이 먹어요? 같은 질문 같다. '어떻게 하면 국가대표가 되냐고요. 어떤 훈련을 하고 어떤 걸 먹고, 어떤 행동을 해야 하는데요?'라는 의미에서 질문한 거겠지만 말이다. 어쨌거나 돌아온 대답은 "하다 보니까 되던데? 그냥 해."였다. 그 당시에는 내 질문만큼이나 대답이 실망스러웠다. '하다 보니까 되던데라니 당신 같은 수영 천재나 그렇게 되는 거 아니냐고요.'라고 생각했었다.
근데 돌이켜보면 그냥 하는 게 맞았다. 특별한 방법은 없었다. 신체적으로도 성장하는 시간이 필요했고, 많은 훈련량을 소화해 내고 경기를 뛰어볼 필요가 있었다. 어느 정도 묵묵히 시간이 쌓여가고 그 틈에서 성장한다는 것이다. 노력하고 인내해야 한다. 어느 정도의 단련의 시간도 필요하다. 특별한 재능이 있는 경우는 그 시간이 매우 짧겠지만 나의 경우는 아니었다. 수영을 처음 배우고 19살에 대표팀에 들어갔으니 14년의 시간이 들어간 거다. 나는 가끔 내가 급해질 때면 이것을 기억하려고 노력한다. 무엇이든 아무리 노력해도 최소한의 시간이 필요하다. 그러므로 인내할 시간이 필요하다고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