넓거나 좁거나

by B O S

내가 있을 당시에 진천선수촌은 현재와는 다르게 모든 종목의 선수들이 들어와 있지 않았다. 태릉선수촌도 함께 운영 중이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엄청나게 넓은 웨이트장을 정규 훈련 시간 때도 꽤나 쾌적하게 이용할 수 있었다. 보통 웨이트 트레이닝은 많은 종목 선수들이 기초적으로 하는 훈련이므로 웨이트장은 북적거릴 수밖에 없다. 그래서 많은 선수들의 훈련을 위해 진천 선수촌 웨이트장은 축구장 절반 크기인 1,300평 정도의 규모로 지어졌다. 처음에 들어갔을 때 작은 헬스장에서만 운동하던 나는 엄청나게 놀랬다. 높은 층고, 엄청나게 큰 시설, 일반 헬스장에는 몇 개 없는 수많은 비싼 기구들이 가득했기 때문이다. 이렇게 큰 웨이트장을 정규 훈련 시간 외에 이용하는 선수들이 그렇게 많지 않았다. 애초에 수영팀만이 항상 상주하여 훈련하였고, 다른 종목 팀은 선수촌 내에는 이용할 수 있는 훈련 시설이 없거나, 전지훈련으로 외부 훈련을 하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다.


나의 웨이트장 사용 루틴은 다음과 같았다. 정규 훈련이 끝나는 오후 6시쯤 저녁을 먹고, 약간의 휴식 후 바로 웨이트장으로 향했다. 그리고 코어 훈련과 소근육 운동을 했다. 웨이트장에는 웨이트장 전체 스피커와 연결되는 스피커 선이 있었고, 그곳에 휴대폰을 꽂을 수 있었다. 휴대폰을 꽂고 내가 좋아하는 노래를 그 큰 곳에서 나 혼자 들으면서 운동을 하는 느낌은 굉장했다. 주로 들었던 노래들은 EDM이나, 힙합이었다. 사람은 나 외에는 없으니, 마치 콘서트장에서 훈련을 하는 느낌이었다. 나는 그 느낌을 매우 좋아했었다.


당시에 나는 다른 선수들보다 훈련 시간이 많았다. 주말 외박을 줘도 정해진 입촌 시간보다 반나절은 빨리 가서 개인 운동을 했었다. 웨이트장에 가서 자전거를 타거나, 뛰었다. 명절에는 조금 일찍 와서 수영 훈련도 했다. 국제 경기에서 좋은 성적을 위해 이렇게 했을까? 차라리 그랬다면 스포츠 스타들처럼 멋지게 말할 수 있었을 텐데. 내가 이렇게 까지 훈련한 이유는 처음 태극마크를 달았을 때의 성적보다 좋아지기 위해, 아니 유지라도 하기 위해 나름의 몸부림이었다. 즉, 창피하게도 세계 대회를 위해서가 아니라 국내 대회를 위해서였다. 널뛰기하는 나의 기록이 나를 그렇게 만들었던 거 같다. 그리고 한 가지 이유가 더 있었다. 국제 경기에 출전해보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이런 노력 끝에 겨우 아시안게임까지 뛸 수 있었던 것인지도 모른다. 특정 대회에서 각 종목 1위마다, 세계선수권에 출전할 수 있게 한다라고 한 적이 있었다. 다행히도 그 대회에서 나는 국내 1등을 했었고, 스페인에서 하는 수영 세계선수권 출전에 잔뜩 기대에 부풀어 있었다. 그러나 선발전 얼마 뒤 갑자기 세계랭킹 100위 안의 선수들만 세계선수권 출전이 가능하다고 연맹은 말을 바꿨다. 101위였던 나는 그렇게 세계선수권을 경험하지 못했었다. 국가의 세금으로 운영되는 국가대표팀에서 어떻게 보면 나 같은 경쟁력 없는 선수들을 잘라낸 것은 당연했을 것이다. 아시안게임 때도 비슷한 경험을 했었다. 나의 종목이 특정 팀의 코치에게 휘둘려서, 본인 팀의 선수들이 선발이 되지 않았단 이유로 나를 비롯한 몇 명이 개인전 대회를 뛸 수 없게 했던 것이다. 치열하고, 공정하고, 힘들게 획득한 것이 특정 힘 있는 사람들에게 너무 쉽게 사라졌었다. 선수촌에 있으면서 노력으로도 안 되는 것이 있다는 것을 너무 많이 경험했다.


그렇다면 고등학교 때 웨이트장은 어땠을까? 고등학교 때 내가 다닌 웨이트장은 목욕탕과 붙어 있는 작고 소박한 헬스장이었다. 71번 버스나 508번 버스를 타고 체육고등학교에서 출발하면 15분 정도 걸리는 거리에 있었다. 엘리베이터가 없는 건물로 좁은 계단을 따라 목욕탕을 지나 올라가면 40~50평 정도 되는 작고, 꽉 찬 헬스장이 있었다. 옛날 느낌 가득한 헬스장이었다. 들어가면 직사각형 두 개를 대각선으로 합쳐놓은 구조였다. 한 개의 직사각형은 조금 크고, 한 개의 직사각형은 더 작았다. 파워랙도 한 개에 그것도 다른 기구들과 거의 겹쳐져 있을 정도로 규모가 작았다. 천장은 낮았는데, 작은 직사각형은 가뜩이나 낮은 천장이 조금 더 낮았다. 오전에 가면 햇살이 은은하게 비쳐서 나무바닥이 은은하게 광택이 빛났다. 옥상으로 연결되는 문도 내부에 있어서 훈련이 힘들 때는 그곳으로 나가 바람을 쐐기도 했었다. 체육고등학교 내에도 웨이트장이 있었다. 하지만, 전문 트레이너가 없었다. 내가 외부로 훈련을 다닌 큰 이유였다. 그리고 체육고등학교 내에 웨이트장에 덤벨이나 플레이트는 항상 짝이 부족하거나 부서져 있었다. 듣기로는 덤벨은 운동을 하기 위해 기숙사로 몰래 가져갔다가 돌아오지 못한 경우가 많았고, 플레이트는 훈련이 고되니, 바벨에서 끼고 뺄 때 하도 던져서 그랬던 것이라고 했다. 플레이트는 오래된 노래방 소파에서 나오는 스펀지처럼 뜯겨 있었다. 그러니 10kg 원판이라도 8.7kg 정도였을 거 같다. 앞쪽 허벅지를 운동하는 레그 익스텐션은 수평이 맞지 않아서 오른쪽 다리보다 왼쪽다리가 더 많이 구부리고 펴야 했다.


록키 영화를 보면 주인공 록키 발보아는 아날로그와 다름없는 훈련을 한다. 고철이 가득한 재활용장에서 망치질을 하며 근육을 단련하고, 눈 덮인 곳을 기어가며 전신 훈련을 한다. 반대로 상대방은 좋은 기구가 가득한 곳에서 최신식 트레이닝을 받는다. 그러나 다들 알다시피 록키가 승리한다. 나의 선수 때를 영화화한다면 이렇지 않을까 생각한다. 지나고 보니 마음이 편한 장소가 최고라는 생각이 든다. 넓고 쾌적했지만, 마음이 불편했던 곳에서는 늘 괴롭고 성적에 쫓겼다, 좁고 불편했지만 마음이 편했던 곳은 그와 반대로 좋은 성적을 유지했으니 말이다. 어찌 보면 그릇이 작다는 말이 될 수도 있을 거 같다. 그릇이 크고 싶은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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