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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화. <서로를 사랑하는 법>

다시 쓰는 결혼 일기 - 2월 4일 자

by 재섭이네수산

오늘은 그의 목소리가 어제와 다르게 참으로 달콤했다. 뿐만 아니라 아침부터 툴툴대는 나의 짜증스런 말투에도 가볍게 웃음으로 받아주는 넘치는 센스까지 장착하였다. 이거 뭔가 잘못 됐는데? 내가 아침에 뭘 먹였더라? 남편이 뭔가를 잘못 먹은 것이 아닐까? 나는 몇 초 좋았다가 갑자기 크나큰 불안함에 그에게 눈을 흘기고 있었다. 얼굴표정과 말투가 어제와 너무나 확연히 다르다는 것은 무언가 우리 사이에 어떠한 큰 일이 있었음을 암시하고 있었다. 무얼까?



남편은 기술자다. 잠시도 가만히 있는 걸 못 견디고 항시 무언가 만들고 연구하고 배우는 것을 좋아한다. 그래서 나는 그를 이렇게 부른다. '공미자'. 풀어 설명하자면 공구에 미친 자. 무언가를 만들 때 필요한 공구들을 알아보고 사보고 써보고 만족하거나 실망하거나를 반복하는 그, 공구를 향한 그의 마음은 찐사랑이다. 그런 그에게 내가 어떤 짓을 저질렀단 말인가? 서프라이즈로 그가 평소에 가지고 싶어했던 어떠한 한 공구를 사주는 크나큰 짓을 벌여, 그의 얼굴에 함박웃음을 선사했고, 나를 향한 강한 호의와 몸에 벤듯한 센스와 버터를 바른듯한 달달한 말투를 아침부터 내게 건네줄 수밖에 없도록 만들었던 것이다.




얼굴에 써있었다.

"사랑합니다."

덕분에 나도 기분이 좋아졌다.




공구 하나로 이렇게 서로에 대한 사랑이 불붙게 되다니. 내가 그동안 너무 무심했다 싶은 것이, 오래 같이 살고 있지만 사람의 마음을 표현하는 것에 선물이라는 것이 빠져서는 안 되는 것이었다는 사실이다. 특히 공미자씨에게는 공구만한 선물이 또 어디에 있겠는가?




그가 나에게 다정스럽게 하는 말로 인해 나는 아침이면 늘 나쁜 컨디션이 좋아졌다.

그가 나에게 웃어주는 함박웃음으로 인해 나는 지루하기 짝이 없는 집안일이 흥흥흥~ 흥미로워졌다.

그가 나에게 베풀어주는 선심으로 인해 나는 하기 싫은 요리를 좀 해볼까 하는 마음이 생겼다.

결국 우리는 서로를 조금 더 아껴주고 배려해주고 예뻐해주게 되었다. 쉽게 말하자면 다시 사랑하게 되었다고나 할까?




그가 좋아하는 것을 내가 알아주고 또 응원해주기를 그는 아마도 많이 기다렸던 것 같다. 내가 선물을 해주는 행위만이 그의 마음을 흐뭇하게 한 것이 아니라 내가 그의 취미와 그의 찐사랑을 받아들여주었다는 것으로 느껴지니까 그 사실에 감격하고 아주 많이 감사해 하는 것만 같았다. 그 단순한 호의와 사랑을 내가 너무 그냥 저냥 지나쳤던 것 같아 미안하기까지 했고, 콧노래까지 부르며 감격스러워해주는 그를 보며 나는 참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다. 바람부는 창문을 꽉 닫은 것처럼 황량하고 춥기만 하던 우리 둘 사이가 새봄처럼 따스해지려 하는 것 같아 나는 남자치곤 여자머릿결 같은 그의 가늘고 부드러운 머리칼을 쓰다듬어주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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