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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봄순 Jun 03. 2022

콩깍지의 유효기간은 언제까지?

[결혼에 대하여]

결혼 1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떠난 거제 여행에서 남편과 나는 필수코스라는 외도 보타니아에 방문했다. 유람선을 타고 외도에 도착하자 푸르른 정원과 서양 느낌 물씬 나는 조각상들이 우리 부부를 반겼다. 둘 다 자연을 워낙 좋아하기에 만개한 꽃과 잘 관리된 녹색 정원을 눈에 담으며 이곳저곳 돌아다니 바빴다.


그렇게 손을 잡고 함께 꽃밭을 지나는데, 장난기가 발동한 남편이 갑자기 고장 난 듯 허우적거린다. 또 뭐지? 하고 쳐다보니 "우리 ㅇㅇ이 어디 있지? 어디 갔지?" 하며 날 못 찾는 듯한 장난을 친다. 설마 하는 마음에 입을 꾹 다물고 있자 남편의 말이 이어진다. 


"어휴 꽃밖에 없네, 어쩔 수 없다. ㅇㅇ이 두고 가야지!"


나는 순간적으로 몸서리치며 남편의 팔을 찰싹찰싹 때렸지만, 내 입꼬리가 올라가고 있는걸 스스로 느낄 수 있었다. 지금 나는 서른을 곧 앞둔 스물아홉에, 결혼하고 살이 꽤나 찐 상태인데도 남편은 항상 이렇게 이뻐해주기만 한다. 가끔은 내가 남편이 되어서 내 모습을 보고 싶을 정도이다. 이런 내 생각을 말하면, 남편은 그런 생각을 하는 것 자체도 귀엽다며 배시시 웃음 짓는다. 정말 대체 뭐가 이쁘다고 그 난리일까?


하여튼 우리는 신혼의 풋풋함에 힘입어 서로 남사스러운 장난을 자주 치고는 하는데 가끔은 누가 볼까 두렵기도 하다. 하지만 또 언젠가 이런 장난이 없어진다면 너무 서운할 것 같다는 생각도 한다. 그때야말로 콩깍지가 벗겨진 순간이겠지 싶다.


다행히 아직까지는 남편의 콩깍지가 단단히 씐 상태고, 심지어 아침에 눈곱이 껴 눈도 못 뜨는 내 모습이 가장 귀엽다고 한다. 그리고 나조차도 남편의 눈곱 낀 모습이 귀엽기만 하다. 그렇다. 사실 나도 콩깍지가 제대로 씌었다.


스스로 내가 저 모습도 사랑한다고? 생각할 때가 있을 정도로 모든 모습을 포용하게 된다. 그런 내 심정을 아는 건지 남편도 매우 자유분방한 모습을 거리낌 없이 보여준다. 그런 남편을 보면 마치 내가 이렇게 더러워도 사랑할 거지?라고 말하는 듯하다.


어쩌겠는가. 나도 사랑에 빠져있지만, 정말 사랑은 알다가도 모르겠다.


내가 엉겁결에 꽃이 된 장소인 외도 보타니아는 부부가 직접 두 손으로 일군 장소이다. 물론 일꾼들의 도움은 받았겠지만, 부부 둘이서 이 넓고 아름다운 정원을 가꾸기 시작했다는 것만으로도 로맨틱하다. 사랑은 그런 게 아닐까? 도저히 할 수 없는 일을 할 수 있게 만드는 것. 아무리 더럽고 못생긴 모습도 사랑할 수 있는 그런 것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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