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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보다 해몽

심해 속 피라니아

by 유영해

선홍빛 얼굴로 꼬물거리는 젖먹이를 보고 있노라면 하는 말이 있다.

“넌 커서 뭐가 될래?”


사랑을 담은 질문은 아이가 커서 몇 번의 사고를 치고 나서도 계속된다.


'넌 커서 뭐가 되려고 그러니.'


꿀꺽 삼킨 물음에 담긴 표정은 다르지만, 자식의 안위를 걱정하는 부모 마음은 같다.

이왕 태어났으면 잘 살았으면 했다. 가능하면 나보다 더 말이다. 고사리처럼 오므라든 손바닥에서 생명선의 길이를 확인한 건 그런 이유에서였다. 불확실한 미래의 보증을 찾는 건 비단 나뿐만이 아니었다. 태어날 날짜와 시간, 이름을 받아오고 실리적으로는 태아보험을 찾아들었다.

그런데 그보다 먼저 하는 게 있었으니, 태몽의 확인이었다. 아무리 신기가 없는 사람이라도 꿈 하나면 무속인이 될 수 있었다. 친한 친구에게 임신 사실을 털어놓은 날, 전화 속 목소리가 흥분해서 소리쳤다.


어쩐지 이상하더라! 며칠 전에 내가 꿈을 꿨어.”

“어떤 꿈?”

“깊은 숲 속을 헤치고 들어갔더니 맑은 샘이 보이는 거야.”

“그래서, 그래서?”

“막, 얼굴이 비칠 만큼 깨끗한 물이 한가득 고여 있더라고. 깨서도 안 잊어버릴 만큼 생생했어.”

혹시 내가 대단한 아이를 잉태한 건 아닐까. 김칫국을 사발째 들이켜니 속이 간질거렸다. 가만히 있을 수 없어 친구를 불러냈다. 참기름 냄새 가득한 진수성찬을 앞에 두고 상을 치며 채근했다.


“처음부터 끝까지 빠짐없이 말해 봐.”


이야기의 골자는 전화 내용과 다름없었다. 용한 점쟁이에게 합격을 보장받은 것처럼 기대에 부풀었다. 한 가지 고민은 내가 밥을 사느냐, 마느냐였다. 밥을 사고 꿈을 받아야 하나. 아님, 친구가 한턱낸다고 했으니 가만히 있어야 하나. 태몽을 산다는 얘기는 들어본 적이 없어 허둥거렸다.


그냥 기분 좋게 밥 한 끼 샀으면 됐을걸, 고민하는 사이에 그녀가 화장실 가는 척 결제를 끝내버리고 말았다. 헤어지고 나서도 찝찝한 마음을 감출 수 없었다.


가진 듯, 가지지 못한 태몽에 집착하는 이유는 내가 가진 태몽이 없어서였다.


“날달걀 먹으면 애가 잘 나온다고 해서, 할머니가 달걀 사러 간 사이에 네가 쑥, 태어났지.”


엄마의 추억담에 태양을 품거나, 용이 승천했다는 식의 얘기는 없었다. 게다가 태어난 시간마저 기억이 안 난다니. 재미 삼아 인터넷 사주를 볼 때마다 섭섭했다. 함께 임신한 친구한테는 이런 전화가 걸려 왔다.

“오늘 우리 언니가 태몽 꿔줬는데, 너른 마당에 금빛 고양이가 걸어 들어오더래.”

“좋겠다....”


부러움 위에 은은한 질투가 고였다. 시어머니가 꿔 준 빨간 고추 꿈은 평범하고 뻔해서 영 맘에 들지 않았다. 그런 거 말고 좀 귀한 꿈 없나. 떡 줄 사람은 생각도 없는데 혹시나 연락이 올까, 휴대전화를 소리 모드로 바꿔뒀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운명처럼 태몽이 찾아왔다. 꿈속에서 나는 다시 면세점 직원이었다. 반짝이는 대리석 바닥을 웬 남자가 환호받으며 걸어왔다. '이승기'였다. <누난 내 여자니까>라는 노래로 전국의 누님을 설레게 했던 그 '이승기' 말이다. 이름 한 번 검색해 본 적 없던 그는 꿈에서도 분명 연예인이었다.


짙은 눈썹에 큰 눈, 오뚝한 코에 시원한 입. 어머, 이게 웬일이야. 나를 향한 발걸음에 가슴이 두근거렸다. 훤칠한 키의 그가 환한 웃음 대신, 측은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그러고는 손바닥에 기다란 연녹색 상자를 쥐여주었다. 스킨이나 로션이 들었을 법한 그린티 계열의 화장품 상자였다.


‘응? 이걸 왜 주는 거지?’


그렇게 생각한 순간, 잠에서 깨어났다.

눈을 뜨고 나서도 멍하니 천장만 바라봤다. 개꿈이라고 하기에는 색깔, 소리, 질감 모두 선명했다. 바쁜 면세점의 분위기도, 본 적 없는 연예인의 모습도, 내 손에 건네준 화장품 상자의 무게까지도. 황급히 휴대전화를 들어 검색창을 열었다. 연예인이 나오는 꿈은 태몽일 가능성이 있단다. 실실 웃음이 새어 나왔다.


그런데 승기 씨는 어째서 그런 표정을 지었지. 신난 와중에 궁금했다. 혹시, 삼신할머니가 대신 꿈에 나온 건 아닐까. 안달복달하는 어미의 마음을 불쌍히 여겨 "옜다."라는 심정으로 말이다. 어찌 됐든 선물을 받았으니 괜찮다고 치기로 했다. 나도 태어난 아이에게 "너의 태몽은..."이라고 운이라도 띄울 수 있어 만족했다.

‘다재다능한 모습을 닮으려고 그러니.’


스크린에서 활약하는 배우이자 가수의 동영상을 보며 기대를 부풀렸다.

엄마가 되는 건 처음이었다. 불안한 마음에 무언가라도 붙잡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태몽은 내가 잡은 동아줄이었다. 놀 거 다 놀면서도 공부는 잘했으면 했다. 아이가 편하게 살았으면 하는 마음이었다. 그런데 그런 인생이 보통 존재하지 않는다. 노력해도 대가를 보장받기 힘든 세상이었다.


길몽도 마찬가지였다. 좋은 꿈은 아이의 건강조차 장담해 주지 못했다. 갓난아기는 세상에 나온 지 일주일도 안 돼서 수면마취를 받고 검사를 받았다. 결과를 기다리며 무언가 착오가 있기만을 손이 닳도록 빌었다. 태몽도 태교도 아무 소용없었다. 그저 허무한 기원이었다. 그게 아니면 건강하게만 태어나라고 빌지 않았던 내 욕심 탓이다. 자신의 탐욕에 진저리가 났다.


아이의 병명은 ‘선천성갑상선기능저하증’이었다. 먼저 떠오른 건 일본의 원전 사고와 거기서 내가 먹은 음식들이었다. 초반에는 생수와 한국에서 도착한 반찬만 먹었다. 외식은 줄이고 편의점 음식도 피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그것도 흐지부지됐다. 아예 일본 음식을 안 먹을 수는 없었다.

‘아이가 아픈 건 나 때문이야.’

과거의 모든 일은 현재로 귀결됐다. 자책이 들 때마다 주먹으로 가슴을 내리쳤다. 나는 심해에 가라앉은 피라니아 같았다. 피 냄새를 찾아 여기저기를 헤집었다. 서서히 남편 탓을 하기 시작했다.


‘아내가 갑상선암이라고 거짓말을 하더니, 벌은 아들이 받았네.’

아무렇지 않게 넘겼던 지난 일에도 의미를 부여했다. 남편이 제일 좋아하던 네기토로 초밥도 떠올랐다. 일본항에 도착하면 신이 나서 먹었다는 그 생선들을.

‘이게 다 네가 먹은 스시 때문이야.’


마음속 화살이 빙글빙글 돌았다. 나를 탓하고 너를 탓하고 다시 나를 탓했다. 진료 대기실에서 차례를 기다리는 시간은 자신을 칼로 저미는 시간이었다.


발등으로 주삿바늘이 들어갔다. 혈관이 얇고 작아 몇 번이나 찔렀다. 아이의 울음소리가 송곳처럼 뾰족했다. 병풍처럼 줄을 선 실습생들이 두 손을 모아 쥐고 고개를 숙였다. 그때 느낀 감정은 살기였다.

‘내 아이를 구경하지 마.’

나는 그때 반쯤 돌아있었다.

꿈속 연예인의 측은한 표정은 이걸 말한 걸까. 현실을 받아들이고 나서도 병실 속 그 장면만큼은 악몽이 되어 나를 덮쳤다. 처음으로 느낀 처절한 악의에 화들짝 놀라곤 했다.


더 이상의 불행은 없기를 바랐다. 하지만 인생은 언제 몰아칠지 모르는 폭풍이었다. 재난 문자는 없었다. 삶을 송두리째 뒤흔들 커다란 해일이 등 뒤에서 소리없이 밀려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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