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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관실의 온도는 여름보다 뜨겁다.

재승선

by 유영해

반지하방이 경매로 넘어갔다.

등기부등본의 붉은 글자가 화면을 뚫고 나왔다. 공포 영화의 경고문처럼 단호한 글씨체였다. 이럴 줄 알았으면 자주 들여다볼걸. 불행은 여전히 백사장의 모래를 허물듯 갑자기 찾아왔다.


남편은 인천에서 1년을 버티고 부산으로 돌아왔다. 모이지 않는 돈에선 무기력이, 부모와의 동업에선 다툼이, 혼자 덮는 이불에선 외로움이 피어났다. 패잔병처럼 귀가한 남편을 돌 지난 아이가 반겼다. 셋이 누워 함께 보는 천장은 넉넉했다. 오랜만에 발을 뻗고 잠이 들었다.


“나 취직했어.”


한 달간의 재충전 끝에 그가 입을 열었다. 갑자기 외출하나 싶더니 듣던 중 반가운 소리였다. 다시 배를 나가는 건가 싶었는데, 그건 아니었다. 남편은 집 근처 자동차 시트 조립 공장에 일자리를 구했다. 배 대신 공장, 엔진 대신 조립 라인인가. 갑자기 웬 생산직인가 싶었지만, 고개만 끄덕였다. 끝없는 다툼에 너도나도 지쳐있었다. 인천이 아닌 부산에 가족이 함께 있다는 걸 위안 삼았다.


남편은 취직하면서 나에게 한 가지를 당부했다. 인천에서 살던 반지하는 2년짜리 전세였다. 1년만 살고 내려왔으니, 계약은 아직 1년이 남아 있었다. 거리가 멀어 직접 들여다보기는 어려웠다. 혹시 모를 상황에 대비해 가끔씩 등기부등본을 확인해 달라는 부탁이었다. 알겠다고 끄덕이는 고개는 힘이 없었다. 반지하 집 주소만 봐도 심장이 요동쳤다. 나도 모르게 그 시절의 악몽이 되살아났다.


지난 1년은 내 인생에서 가장 지우고 싶은 시간 중 하나였다. 아기를 안고 남편을 찾아가다 접질린 발목에 인대가 끊어졌다. 시부모님께 참고 있던 원망을 표출하며 큰 소리로 대들다가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 아이를 재우고 나면 시커먼 천장이 바닥으로 내려왔다. 등기부등본을 확인할 때마다 바다에 던진 플라스틱 병처럼 과거가 떠올랐다. 자연히 열람을 등한시하게 되었다. 의도적인 회피였다.


“나는 의외로 이런 일이 적성에 맞나 봐. 일 잘한다고 이번에 계약직으로 뽑혔어.”


남편은 역시나 열심히 일했다. 아무 생각 없이 몸만 움직이면 된다며, 땀으로 버는 돈에 크게 기뻐했다. 배라는 공간은 그렇지 못했다. 선박은 작은 사회였다. 기계와 마주하는 일 자체도 힘겨운데, 크고 작은 사건까지 예고 없이 일어났다. 위계질서가 확실한 곳에서 누가 옳은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권력을 가진 자가 대부분 이기는 세상이었다.


“아니, 자꾸 이유 없이 3기사를 괴롭히잖아.”


화합을 중시하는 남편은 불합리한 일을 넘기지 못했다. 기관장이 이유 없이 후배 기사를 모욕하자 방으로 찾아가 직접 항의했다. 정의감은 칼날처럼 되돌아왔다. 그날부터 표적은 남편으로 바뀌었다. 넘치는 모멸에 대항하다 돌발성 난청과 불면증을 얻었다.


새로운 직업의 세계에서 남편은 동료와 신임을 얻었다. 스트레스 없는 일은 행복했지만, 큰 단점이 있었다. 아무리 아껴도 돈이 모이지 않았다. 지난 1년은 적자였고 은행 대출도 있었다. 처음에는 작았던 구멍이 조금씩 커졌다. 뒤에 안 얘기지만, 남편은 나에게는 비밀로 친동생과 우리 언니한테도 잠깐 돈을 빌렸다. 평정을 가장했지만, 별것 아닌 일에도 크게 화를 내고는 했다.


“내 작업 바지 어디 있어?”

“빨았는데?”

“주머니에 영화표 없었어?”

“... 확인 안 했어.”


남편이 황급히 베란다로 달려갔다. 곧, 바지에서 떡이 된 영화표를 찾아들고 망연자실했다. 가루가 된 종이조각이 뒤집힌 주머니에서 꽃가루처럼 떨어졌다.


“이거... 회사에서 너랑 나랑 둘이 가서 보라고 준 무료 영화권이란 말이야...”

“.....”

“오랜만에 너랑 영화 보러 갈 생각에 내가 얼마나 들떴는데!”


그의 울분에도 내 반응은 한 겨울 연못 같았다. 무엇보다 나는 남편과 한가하게 영화를 보러 갈 마음이 전혀 없었다. 당시 내 관심은 오로지 아이한테 가 있었다. 돌이 지난 아들은 여전히 3개월마다 대학병원에서 피를 뽑았다. 평균이던 신장과 체중이 중간선을 벗어나 아래로 향할수록 마음은 더 조급했다. 당시, 아이에 대한 집착은 남편과 내 입에 들어가는 식재료가 아깝게 느껴질 정도였다. 그러니 찢어진 영화표 따위, 마음에 들어올 리 없었다.


“애는 어떡하고 둘이서 영화를 보러 갈 생각을 해?”

“장모님한테 잠시 맡기면 되지.”

“너, 우리 엄마랑 친해?”

“.....”

“나랑 좋은 시간 보내고 싶어서 그거 받아온 거 아니야? 지금 상황을 봐. 영화표 때문에 소리 지르는 너 때문에 우리가 지금 행복한지, 불행한지.”


멈춰 선 얼굴에 당혹과 슬픔이 뒤섞였다. 오기에 가시를 뱉은 나조차, 자기 말이 얼마나 부당한지 느껴졌다. 분명 육지에서 함께하고 있는데도 우리는 좌초된 배처럼 흔들렸다. 도대체 북극성은 어디에 있는 걸까. 드리운 구름을 걷어내려 애쓸수록 ‘여기가 아닌데.’라는 느낌만 짙어졌다.


그러던 어느 날, 인천집이 경매로 넘어갔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머리가 하얘졌다. 차마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사안이 중대해서 보고를 미룰 수도 없었다. 눈을 질끈 감고 이실직고했다. 등기부등본을 확인한 그가 애써 침착한 목소리로 나를 다독였다.


"미안해. 내가 더 자주 확인해야 했는데."


사과는 내 몫이었다. 내가 좀 더 꼼꼼하게 확인해야 했다. 보기 싫다는 이유로 현실을 외면하지 말아야 했다. 남편은 이번에도 나를 탓하지 않았다. 의연한 모습에 더욱 속이 타들어 갔다. 자존심에 미안하다는 말도 못 했다. 다음날부터 무료로 상담받을 수 있는 곳을 찾아다녔다. 모두가 약속이나 한 듯 말없이 고개를 저었다. 배당요구 종기일이 지난 시점에서 돈을 청구할 방법은 없었다. 집주인의 계좌에 돈이 들어왔을 때 압류하는 방법이 그나마 최선이었다. 물론, 확인한 집주인의 계좌는 텅텅 비어 있었다. 몸에서 빈 깡통 소리가 났다.


“나 다음 달부터 배 타러 나가려고.”

“정말...? 괜찮겠어...?”

“응. 다시 해볼게. 많이 쉬었잖아. 이제 괜찮을 것 같아.”


천만 원이 공중분해 되자, 남편은 다시금 키를 잡았다. 돌고 돌아 다시 바다였다. 그렇게 벗어나려고 발버둥 쳤는데, 제자리였다. 미안함과 안도감이 뒤섞여 머리를 쥐어뜯었다. 그 괴리감을 덜어보려고 이직 준비를 도왔다. 이력서의 자기소개를 대신 써주고 할 수 있다는 믿음을 심어줬다.


“돈 많이 안 벌어도 되니까, 무조건 부산으로 자주 오는 배로 가. 그럼, 내가 아기와 만나러 가면 되잖아. 내가 임신했을 때부터 말했던 그 회사는 어때?”

“한 번 알아볼게. 나 좀 오래 쉬었으니까, 우선은 2기관사로 타려고.”

“그래. 진급은 천천히 하면 되지.”


남편은 면접을 한 방에 통과했다. 그동안의 갈등이 무색할 만큼 너무 쉽게 선원으로 돌아갔다. 월급은 공장시절의 딱 두 배였다. 3주를 일하면 일주일은 가족과 함께 보낼 수 있었다. 집으로 돌아오는 남편의 얼굴에 거짓말처럼 웃음이 돌아왔다. 나도 모르게 안심했다. 마음 한 구석이 시큰했다.


“왜 진작 이 배를 안 탔지? 자주 볼 수 있으니까 너무 좋아.”

“어이구, 진작에 내 말 들을 걸 그랬지? 하지만 난 널 알지. 아마 이것도 저것도 안 해봤으면 자꾸 생각나서 미련이 남았을걸?”

“네 말이 맞아. 최선을 다했으니까 후회도 없어. 그리고 나, 기계 만지는 일 자체는 좋아해. 같이 일하는 사람이 이상하면 그게 문제지.”

“이번에는 참지 말고, 이상하면 바로 내려. 배는 옮기면 되잖아.”

“그래. 무리 안 할게.”


우리는 노력하는 사람들이었다. 떨어져 있는 동안에도 각자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했다. 다시 만날 일주일을 생각하면 못 할 게 없었다. 남편은 무사히 진급했고 아이는 마침내 병을 이겨냈다. 생활은 무한한 안정을 되찾았다. 너무 평화로워서 어쩐지 불안한 날들이 이어졌다.


상선을 탄 지 3년째 되는 여름, 돌발성 난청이 다시 찾아왔다. 저번과 같은 왼쪽 귀였고, 저번과는 다른 바다 위였다. 침대에 누운 남편은 청력을 잃을 것을 예감했고, 그것은 곧 현실이 되었다.


“산업용 귀마개를 안 해도 이제는 절반만 시끄러워.”


웃는 남편의 얼굴에 어떤 위로도 건넬 수 없었다. 학생 때 그는 기타도, 드럼도 치던 사람이었다. 지금도 배를 탈 때 플레이리스트에 좋아하는 노래를 담아갔다. 부드러운 미성으로 흥얼거리던 그의 노래를 나는 참 좋아했다. 그런 사람이 이제 한 귀로만 들을 수 있다니. 얼마나 괴로울지 상상조차 할 수 없었다.


기관실 온도는 여전히 한여름보다 높았다. 땀은 비처럼 쏟아지고 예민한 피부는 벌겋게 달아올랐다. 매연과 분진으로 손톱 밑은 거메지고 고압 스팀에 화상을 입기도 했다. 그래도 남편은 배에서 내리지 않았다. 조심해서 타겠다며 오히려 나를 위로했다.


엔진은 배의 중심이다. 작은 부품 하나라도 고장나면 전체가 영향을 받는다. 그래서 기관사는 언제 기계가 고장 날지 몰라 늘 마음을 졸인다. 망치를 들고 드라이버를 돌리는 남편의 직업을 존경한다. 하지만 가끔은 그 뜨거운 엔진룸에도 겨울이 찾아오길 바랐다. 가뜩이나 더위를 많이 타는 남편이 편해지기를, 그 사람의 손끝이 잠시라도 시원해지기를 빌었다.


그리고 나의 바람은 거짓말처럼 현실이 되고 말았다. 남편이 그토록 뜨거워하던 기관실에도 차가운 공기가 스며들었다. 대륙에서 불어온 북서풍은 바다를 건너 우리 삶의 틈새까지 침투했다. 2020년 2월, 세상이 얼굴을 감췄다. 선상이라고 예외는 없었다.




긴 여행의 시작과 함께,
연재 요일이 매주 수요일로 변경됩니다.
연재일이 아닌 날에도 올라올 수 있습니다:)
여행 중 틈틈이 짬을 내보려고요;)

파도는 잔잔하고 바람은 순합니다.
이 모든 항해는 여러분 덕분입니다.
진심으로 감사 드립니다!

유영해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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