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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식년을 가지기로 했어.

무등타기

by 유영해

두 줄로 앉은 어린이의 등은 뻣뻣하거나 말랑했다. 단상을 지켜보는 작은 머리에 차례대로 은색 왕관이 씌워졌다. 주고받는 부모와 아이의 시선으로 작은 강당은 번잡했다. 콩만 했던 우리 아들이 벌써 초등학생이라니. 마이크에서 울리는 소리가 가슴을 두드렸다.


“엄마, 우리 반 선생님이 제일 예뻐요.”


자동차로 돌아온 상기된 얼굴이 들떠서 조잘거렸다. 똑같은 생각을 한 게 들킬 것 같아 멋쩍은 미소만 지어 보였다. 아들은 6년 동안 속마음을 감추는 법을 배우게 될 터였다. 기역으로 꺾은 학교가 한층 커다래 보였다. 처음으로 어린이집을 보낼 때 겪었던 번뇌가 떠올랐다. 그때를 생각하면 초등학교는 한눈을 감고 보내는 거나 마찬가지였다. 남편은 외식을 약속한 식당으로 천천히 차를 몰았다. 흔들리는 보조석에 몸을 기대자 절로 눈이 감겼다. 바깥바람에 유리창이 차가웠다.


연말에 배를 내린 남편은 큰 결심을 했다. 아이가 어느 정도 컸으니 더 많은 돈을 벌러 더 넓은 바다로 나가겠노라 결단을 내린 것이다. 잠잠해진 코로나로 아이의 무사 입학이 확정된 참이었다. 달뜬 마음이 조용히 가라앉았다. 이직과 이사, 긴 육아 생활에 세계적인 유행병이 더해진 날들이었다. 나는 어느새 변화보다는 안정을 추구하는 사람이 되어 있었다.


“매너리즘에 빠진 것 같아. 어느샌가 내가 근무할 때만 일이 안 터지면 된다고 생각하고 있더라고. 거기다 애가 클수록 들어가는 돈도 늘어나잖아. 이쯤 돼서 배를 바꾸는 게 맞는 것 같아.”

“조금 적게 벌어도 자주 보는 게 더 낫지 않을까? 애가 곧 초등학생인데 나도 나가서 일하면 되지. 먼바다 나갔다가 다시 귀라도 아프면 어쩌려고 그래.”

“괜찮아. 이제는 경력도 많이 쌓였고 코로나도 끝나가잖아. 나, 잘할 수 있어.”


각오가 대단하면서도 석연찮았다. 누구보다 가족과 떨어지기 싫어하는 남편이었다. 동료를 사지로 모는 듯한 기분에 대답을 망설였다. 불안한 나의 시선에 어딘가 신나 보이는 얼굴이 포착됐다. 영문을 몰라 눈을 껌뻑이는데 남편이 입을 열었다.


“그래서 말인데, 먼바다에 나가기 전에 8개월 정도 쉴까 하는데 어때? 코로나도 잠잠해졌으니, 여행도 실컷 다니고 추억도 잔뜩 만들자.”


흔들리던 내 눈이 반짝 빛을 냈다. 깊은 잠에 빠져있던 여행 DNA가 급격한 해동을 시작한 모양이었다. 머리를 채웠던 걱정 대신 설렘이 한 자리를 차지했다. 사람이 이렇게 간사할 수가 있나. 8개월 뒤의 이별보다는 눈앞의 모험에 신이 났다. 중요한 건 앞으로 몇 개월을 다시 함께 있을 수 있다는 점이었다. 나는 꾸벅 고개를 끄덕였다.


남편은 안식년을 기념하여 오랜만에 머리를 갈색으로 물들였다. 배에서는 머리를 손질하기 어려워 항상 짧게만 깎고 갔었다. 숱 많은 머리가 결 좋은 갈대처럼 찰랑거렸다. 바다로 나가기 전에 몇 번이나 더 미용실에 갈 수 있을까. 변한 머리 모양을 마음에 들어 하는 모습에 등을 토닥여주었다.


여행 계획은 아이가 학교에 간 사이 은밀하게 짜였다. 입학 적응 기간을 놓칠 수 없어 고심 끝에 첫 여행은 5월의 제주도로 정했다. 예전에 같은 배를 탄 남편의 동료가 제주도 여객선으로 이직하면서 승선권을 할인해 주었다. 삼천포항에서 출발한 배가 힘차게 파도를 갈랐다. 함께 태운 자동차에는 제주도에서 한 달을 살아도 될법한 짐이 실려있었다. 넉넉한 준비에 마음까지 여유로웠다.


마루형 객실에 요를 깔고 눈을 감았다. 심야에 출발한 탓에 아이는 눕자마자 꿈나라였다. 매트리스 사이로 엔진의 진동이 느껴졌다. 그러고 보니 남편과 배를 타고 여행을 가는 건 이번이 처음이었다. 힐끗 옆을 보자 쇼츠에 빠진 얼굴이 키득키득 웃었다. 몇 시에 자려고 저러나. 바닥에 머리만 대면 자는 나와 다르게, 남편은 수면에 빠지기까지 시간이 오래 걸렸다. 중간에 깨면 다시 잠들지 못해 한참을 뒤척이는 사람. 그래서 그의 휴대전화에는 시간을 때울 수 있는 각종 동영상이 가득했다. 배에서 내리면 다음 배를 준비하며 이동식 디스크를 재밌는 영상으로 가득 채우곤 했다.


“우리 6시 도착이야. 빨리 자야지.”

“응. 1시까지만 볼게.”


지켜지지 않을 걸 알면서도 눈을 감았다. 이번에는 꼭 싸우지 말고, 행복한 추억을 만들어가야지. 배라면 징글징글하다면서도 함께 배를 타 준 남편이 여러모로 고마웠다.


자동차로 돌아보는 제주도는 한결 여유로웠다. 안전모를 쓰고 굽이굽이 돌았던 만장굴과 유리 바닥 보트를 통해 본 투명한 바다, 현란한 기마 공연과 아슬아슬한 말타기 체험. 아이와 함께 방문한 제주도는 할 것도 볼거리도 두 배는 늘어나 있었다.


특히, 제주돌문화공원은 푸른 정원과 다양한 암석들의 전시로 눈이 즐거웠다. 단순히 규모만 큰 게 아니었다. 제주도를 만든 설문대할망의 전설을 모티브로 꾸민 모습이 맘에 쏙 들었다. 송송 뚫린 현무암 구멍으로 시원한 바람이 오갔다. 돌로 만들어진 설문대할망의 자식은 무려 오백 명이었다. 그 사이를 달리며 서로를 놀리는 아들 두 명은 부산에서 왔다. 엎치락뒤치락 장난치는 아들과 남편의 뒷모습을 보며 작게 고개를 흔들었다.


순간, 집에 있는 아빠를 낯설어하던 아들의 모습이 떠올랐다. 섬세한 아이는 아빠의 장난에 종종 눈물을 글썽이곤 했다. 남편은 남편대로 친해지려고 다가갔는데 짜증과 울음으로 결론이 나버리니 속상해했다. 중간에서 둘을 친하게 만들려고 노력했지만, 늘어나는 다툼에 피곤하기는 나도 마찬가지였다. 익숙해질 만하면 바다로 떠나는 아빠와 돌아오면 몇 센티씩 커져 있는 아들. 둘에게 필요한 건 풍족한 시간이었다.


“아빠, 다리가 너무 아파요.”

“아빠 잡으면 목말 태워줄게.”


잡힐 듯 잡히지 않는 어른의 발걸음에 아이는 몇 번이고 시도하다 얼굴이 발갛게 달아올랐다. 뭐가 좋은지 껄껄껄 웃는 남편의 등을 한 대 치고 나서야 사태는 마무리됐다. 아빠의 목을 차지한 아이는 엉덩이를 들썩였다. 끝없이 펼쳐진 초록 들판과 푸른 하늘, 검은색 돌조각이 모바일 배경 화면처럼 완벽했다. 뒤에서 연속으로 촬영 버튼을 누르던 내 입가에 흐뭇한 미소가 떠올랐다. 둘 사이의 틈새가 제주도 흙냄새로 메꿔졌다. 이 시간이 영원하면 좋겠다. 그런 마음을 담아 1년 후의 우리에게 편지를 썼다.


매년, 일 년을 돌이키며 사진을 정리하면 어느 시점에선가 아빠는 없었다. 한참을 내린 스크롤에 그리운 얼굴이 불쑥 나타나곤 했다. 하지만 올해는 달랐다. 사진을 정리하는 마우스가 쉴 새 없이 따각거렸다. 남편과 함께한 한 해는 세 명분의 사진으로 폴더가 묵직했다.


크리스마스를 앞두고 새로 만든 신년 폴더에는 다시금 아이와 나의 얼굴만 남겨졌다. 여백을 남긴 배경에도 모자의 미소는 한층 부드러웠다. 새로 돋아난 남편의 검은 머리처럼 그는 틀림없이 우리 곁으로 돌아올 것이기 때문이다. 제주도에서 날아온 편지에는 사랑한다는 말이 가득했다. 비에 젖은 엽서를 창가에 세워 두었다. 창문으로 들어온 햇살이 물기를 날렸다. 네모난 귀퉁이 한쪽이 햇살을 반사한 듯 반짝거렸다. 모두의 안식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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