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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영 Nov 22. 2024

나는 작가로 살기로 했다.

층간소음에서 시작된 이야기

 솔직하게 고백한다. 첫 번째 도전으로 글쓰기를 선택한 이유는 아랫집을 야유하는 나의 얄팍한 마음이 계기였다는 걸 밝힌다. 털어놓고 말해서 아주머니가 자신을 작가라고 소개했을 때 속으로 코웃음을 쳤다. 명필은 붓을 가리지 않잖아요. 글이 안 써지는 이유는 소음이 아니라 당신의 능력부족 아닐까요. 촌철살인은 속으로만 했다. 내 등에 칼이 꽂히는 건 싫었으니까.


 그쪽이 할 수 있는 일이라면 나도 할 수 있다고 맘 속으로 소리쳤다. 반쯤은 오기였다. 예민한 사람이 적격인 일이라면 지금의 나야말로 끝판왕 아닌가. 아니면 반대로 당신처럼 까탈스럽지 않아도 글은 쓸 수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다. 동기가 참 불손하다. 그래도 지금까지 당한 게 있는데 생각으로 앙갚음하는 것쯤 행태가 귀엽지 않나. 쓰고 나니 부끄럽다. 편들어달라고 떼쓰는 것처럼 보인다면 당신 생각이 맞다.


 공개적인 장소에 글을 남기는 이상 다른 사람이 읽고 싶은 글을 써야 했다. 세 가지 주제를 뽑는 숙제가 주어졌다. 선택한 글감에는 층간소음 이야기도 들어가 있었다. 주목받는 사회 문제이기도 해서 가장 추천받았다. 그런데 내가 적고 싶은 주제는 아니었다. 괴로움의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는 건 생각만 해도 속이 울렁거렸다. 그런데 스스로 지은 제목이 너무 마음 들었다. '아랫집에 미친 여자가 산다'니. 서점에서 발견하면 페이지를 한 번쯤 넘겨보고 싶은 타이틀 아닌가. 자화자찬에 김칫국으로 샤워를 했지만 상상만으로도 즐거웠다. 매대 위에서 내 책을 발견한 그녀의 얼굴을 떠올렸다. 최고의 복수라는 생각이 들었다.     


 목차를 쓰다 보니 옛 기억이 되살아났다. '이 책이 잘 되면 나중에 소송할 때 증거자료로 쓸 수 있을까'란 생각을 하면서 15개의 이야기를 구상했다. 사건을 회고하면서 화도 났지만 동시에 통쾌하기도 했다. 면전에서 하지 못한 욕을 글로 남기는 건 남다른 카타르시스였다. 할 말이 어찌나 많은지 목록이 두 배로 늘어났다. 이야기의 주제는 아랫집에 국한되지 않았다. 부끄럽고 행복했던 과거 얘기 모두 나 자신이었다. 숨어 지내던 기간만큼 주목을 갈망했다. 노출증에 걸린 사람 마냥 이야기를 써재꼈다.

 


 하지만 할 말이 많다고 글이 술술 써지는 건 아니었다. 첫 소절을 쓰기까지는 항상 시간이 오래 걸렸다. 추억의 바다에 드문드문 떨어진 회상을 뜰채로 건져 올렸다. 오랫동안 물속에 잠겨있던 기억은 쭈글쭈글했다. 힘을 주면 찢어질 것 같아 수건으로 꾹꾹 눌러 물기를 뺐다. 어떨 때는 아래에 숨어있던 다른 이야기가 삐죽, 얼굴을 내밀었다. 옳다쿠나, 너도 같이 가자. 바늘로 엮어서 같이 말리면 한 편의 글이 완성됐다.  


 취침시간이 반으로 줄었지만 신기할 정도로 피곤하지 않았다. 자력으로 카페인을 생산해 내느라 내 몸은 분주했다.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무작정 썼다. 한 시간을 투자해서 한 단락을 쓰는 날도 있었다. 양이 많지 않아도 그 한 단락이 마음에 들면 그걸로 되었다. 물 먹다가, 화장실 갔다가, 주전부리를 먹다가, 면봉으로 귀를 후볐다가, 냉장고를 열었다가, 머리카락을 주워서 버렸다가. 집중력이 부족해서 한 번에 긴 글은 쓰지 못했다. 그래도 틈만 나면 컴퓨터 앞에 앉아 글 쓰는 시늉을 했다.


 글쓰기 수업은 진작에 끝이 났지만 나에게는 든든한 AI 선생님이 있었다. 작문을 시작하기 전부터 쓰고 있던 인공지능을 불러와 글의 첨삭을 부탁했다. 무엇을 부탁해도 1초면 답이 나왔다. 유용하고 편리했다. 기술의 발전에 새삼 감탄했다. 하지만 AI의 지시에 수긍만 하다 보면 글이 재미없어졌다. 스마트 알고리즘은 표현을 매끄럽게 하는 대신 문장을 평이하게 만들었다. 개성을 잃지 않으려면 문제아가 되어야 했다. 시행착오를 겪는 과정마저 즐거웠다.


 어쩌다 가끔 마음속 화음과 생각이 일치하는 날이면 키보드 위에서 손가락이 춤을 췄다. 완성한 글을 인터넷에 올리고 기절하듯 잠이 들었다. 할 일을 끝내고 맞이하는 꿈속 세계는 충만했다. 그렇게 달콤할 수가 없었다. 다음날 썼던 글을 다시 읽어보면 대부분의 경우 부끄러웠다. 하지만 모든 초고는 쓰레기라고 하지 않았나. 그 모없는 것이 내 삶의 위안이자 결실이었다. 어설프고 서툴더라도 글을 통해 살아 있는 흔적을 남기겠다고 마음먹었다. 그렇게 나는 이야기의 주인공이자 작가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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