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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영 Nov 21. 2024

죽고 싶지만 글은 쓰고 싶어.

초록섬 작은 방의 이야기

 추억 속 식탁에는 약바구니가 놓여 있다. 시장에서 과일을 사면 으레 같이 딸려오는 빨간 소쿠리였다. 길게 이어진 약봉투는 멀리서 보면 흰 뱀 같아 보였다. 피리소리에 춤추는 일 없이 얌전하게 꽈리를 틀고 있었다. 점선을 따라 반투명한 네모칸을 하나 뜯었다. 흰색의 알약이 두 개. 마치 처음부터 거기 있었던 것처럼 숨죽이고 있었다.


 철이 들기 전 기억부터 아버지는 정신과를 다녔다. 공황장애셨다. 어느 날 길을 걷고 있는데 갑자기 시공간이 뒤틀리는 느낌을 받으셨다고 다. 주위의 모든 것이 자신을 압박하는 느낌에 서 있을 수 조차 없으셨다고. 쿵쾅거리는 심장과 온몸을 적시는 식은땀에 당신은 그 자리에서 죽는 줄 아셨다고 한다. 어릴 부터 봐 온 광경이라 산처럼 쌓여있는 약이 이상하다고 생각한 적은 없었다. 다만, '어른이 되면 저런 걸 먹어야 하는구나'하고 막연히 생각했다.


 걷잡을 수 없이 우울한 감정이 치솟는 날에는 아버지를 떠올렸다. 나도 언젠가 당신의 길을 따라가게 될까. 멍하니 그런 상상을 했다. 오랜 병원치료에도 공황은 나아지지 않았다. 우울증 때문에 약의 개수만 많아졌다. 아버지는 마음의 고통을 잊으려 일에 매달리셨다. 주말 없이 출근하고 집에 돌아오면 기절하듯 주무셨다. 그게 당신이 찾은 살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었다.  


 그런 아버지의 영향을 받아서일까. 이 커갈수록 마음이 불편했다. 아이가 스스로 할 수 있는 일이 늘어나는 만큼 내 일은 줄어들었기 때문이다. 남편이 집에 있는 게 아니라서 생활은 무척 여유로웠다. 오전 중에 집안일을 마무리하고 나면 소파에 누워 휴대폰을 봤다. 끝도 없이 이어지는 영상을 보고 있으면 시간은 순식간에 흘러갔다. 허탈한 마음 뒤로 무거운 죄책감이 찾아왔다. 노동의 신이 나의 게으름을 꾸짖으며 명치를 압박는 느낌이었다.


 아이가 학교에 있는 시간을 이용해서 일을 하려고도 해 봤다. 전공을 살려 가르치는 일을 해봐도 좋겠지 싶었다. 훌륭한 선생님을 만나 수업을 듣고 특강 준비도 했다. 오랜만에 살아있는 느낌이 들었다. 그런데 막상 사람들 앞에 선다고 생각하니 손발이 덜덜 떨렸다. 이미 한 번 움츠러든 마음이 버석거렸다. 경력이 단절된 십 년 동안 물 한 번 제대로 주지 않 기는 거칠게 메말라 있었다. 이대로 도망칠까. 진지하게 그런 생각을 했다.


 하지만 약속한 수업을 취소할 수는 없었다. 일단 해보자. 하고 나면 예전의 기세를 회복할지도 몰라. 그런데 예정된 수업을 이틀 앞두고 아이가 아팠다. 법정전염병이었다. 시부모님은 멀리 계시고 엄마, 아빠는 일을 나가셨다. 언니는 다른 지방에 있고 남편은 배를 타고 있었다. 나는 그저 집에서 혼자였다.


 차라리 잘됐다고 생각했다. 새로 산 정장을 게 접어 옷장에 넣었다. 가스불 위에 올려놨던 의욕을 그릇에 옮겨 담고 불을 껐다. 열정, 배짱, 담력, 기개. 밀폐용기에 갇힌 여러 감정과 함께 내 마음은 여전히 초록섬 작은 방에 갇혀있었다.



 아랫집을 핑계 삼아 도망치기로 했다. 층간소음은 절묘한 구실이었다. 집에 있으면 시끄러우니까, 아주머니가 올라올지도 모르니까 나가야지. 그렇게 생각한 이면에는 아이를 데리고 일을 나간다는 기쁨이 있었다. 축제 행사장을 방문하고 도서관 프로그램을 쫓아다니면 좋은 엄마인 척, 바쁜 엄마인 척하는 게 가능다. 나에게도 할 일이 있다고 말하고 싶었다. 존재 가치를 인정받고 싶었다. 그렇게 노력하면 할수록 아이에게 집착하는 자신이 보였다. 이건 내가 바라던 모습이 아닌데. 그렇게 좌절과 열망을 반복했다.  


 그러니까 나의 우울은 복합적이. 스스로에 대한 실망과 아랫집에 대한 분노가 섞여 마음이 지옥불처럼 타올랐다가 꺼지기를 반복했다. 초인종 소리를 동반한 지독한 오해는 예민해진 신경을 자극해 나를 더 침울하게 만들었다. 새까맣게 타버린 마음이 재가 되어 쌓였다. 걸어온 길은 전부 진창이었다. 소파에 멍하니 앉아 사라지고 싶다고 중얼거렸다.


엄마, 사랑해요.



 무표정한 내 눈에 상처받은 아들의 얼굴이 들어왔다. 눈물에 씻긴 말간 눈동자가 그래도 엄마를 사랑한다고 말해주고 있었다. 심장이 쿵 내려앉았다. 아아. 권태에 파묻힌 나를 구해준 건 아이였다. 짧은 손가락이 무기력한 마음을 쓰다듬었다. 나도 조심스레 따라 해 봤다. 아이의 얼굴은 나를 꼭 닮았다. 이대로 주저앉아 있으면 넌 무너진 너를 보게 되겠구나.


 도대체 무엇을 그리 겁내왔던가. 눈물이 왈칵 솟았다. 껴안은 아이의 몸은 말랑하고 부드럽고 좋은 냄새가 났다. 좁았던 시야가 마법처럼 넓어졌다. 이렇게 나를 믿고 기다려주는 존재가 있었는데, 너의 존재 자체가 위로였는데 지척에 두고서 그걸 몰랐다. 쓰다듬는 손바닥 사이로 짧은 머리카락이 산들거렸다. 아이의 뒤통수는 사과를 닮아 동그랗고 예뻤다. 그게 나를 더 눈물짓게 했다.  


 아들을 학교에 보내고 컴퓨터 앞에 앉았다. 무엇이든 좋으니 시작해 보자고 생각했다. 마우스 휠이 상판 위에서 기분 좋게 움직였다. 아버님이 권유한 주식투자는 어차피 전세금이 돌아와야 시작할 수 있었다. 거기다 손가락으로 움직이는 돈의 세계는 낯설게만 느껴졌다. 나에겐 다른 돌파구가 필요했다.


  마침 동네 도서관에 글쓰기 수업이 열린다공지가 올라 있었다. 온라인에서는 좋아하는 작가님의 글쓰기 교실이 신청을 받고 있었다. 마음속 불이 꺼질까 봐 후다닥 수업 두 개를 신청했다. 누군가 등을 부드럽게 밀어주고 있었다. 교실 속 아이일까. 바다 위 남편일까. 아니, 소리는 자신의 내부에서 가장 크게 들려오고 있었다. 쁘지 않았다. 오랜만에 느껴보는 기대감이었다.


 도서관 수업일이 다가왔다. 이번에는 도망가지 않았다. 눈을 감고 아이의 얼굴을 떠올리며 심호흡했다. 온라인 수업에서 과제를 제출할 때도 마찬가지였다. 도서관에서 우연히 본 책에는 이런 말이 적혀있었다. 10년 뒤 수확하려면 바로 지금이 씨앗을 뿌릴 때라고. 용기를 내기로 했다. 그리고 조금씩 글을 쓰기 시작했다.


 푸른 섬 작은 방 문틈으로 부드러운 바람이 새어 들어왔다. 따뜻한 기운이 발바닥을 간질였다. 오랫동안 접어놨던 팔다리를 쭉 펴고 기지개를 켰다. 저장용기에 갇혀있던 감정들이 뚜껑을 열어달라고 소란다. 새삼 주위를 둘러본다. 여기가 이렇게 좁았구나. 이제는 문을 열어도 될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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