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비는 사실, 봄의 종언은 아닐런지요

by 언제나 여름

여느때처럼 이어폰으로 귀를 틀어막고 출근을 하던 날이었어요.

지하에서 올라오니,

아니 이게 웬걸,투명한 플라스틱 지붕을 때리는 빗방울이 아우성치더군요.


참으로 반갑고 기꺼운 비였어요.

좋아하는 노래를 듣던 출근길, 이어폰을 빼자 그제서야 소란한 마음이 차분히 정리되더라구요.


맞아요, 저는 비 내리는 아침을 참 좋아합니다.

창문을 우다다 노크하는 물소리에 일어나는 것도 좋아하고,

공들여 컬을 넣은 머리가 눈 깜짝할 새에 원래대로 돌아가는 것도 싫지 않아요.

잔뜩 낮아진 하늘이 괜시리 아늑하게 느껴지구요, 물을 가득 머금어 무거워진 공기는 살며시 다가온 포옹같아요.

먹먹하게 짙어지는 나무와 풀의 초록색도 너무나 예쁘잖아요!


우산을 세차게 때리는 빗방울에 그런 것들을 떠올리던 찰나,

발밑을 내려다보니 엉망으로 뒤엉킨 분홍색 벚꽃잎이 낭자하게 펼쳐져 있었어요.

기분좋은 빗소리를 선사해준 그 봄비가 벚꽃을 다 떨어뜨린 거에요!


다른 꽃들에게는 미안하지만, 봄이라면 떠오르는 꽃은,

봄의 시작을 알리는 꽃은 뭐니뭐니해도 벚꽃이잖아요.

이런 벚꽃이 모두 지고 후덥지근한 공기를 들이켜니 '여름일까?'하는 생각을 해버렸어요


그래서 핸드폰을 꺼내 이런 낱자들을 적어봤더랍니다.



세찬 여름비가 나린다

봄꽃을 다 떨구면서.


봄날의 종언을 말하면서 ,

찬란한 봄날의 흔적을 지우면서.


여름을 말하는 빗방울은 거세게 봄날의 문을 두드린다

봄의 만찬을 온통 흩어놓고는,

바닥에 엉망으로 엉클어 놓고는.


뜨끈하고 습한 공기가 밀고 들어와

사람들의 머리칼을 축 늘어뜨린다

그들의 숨결에 습기를 서리내리면서




글로 쓰고 나니 어찌나 그럴듯 한지요.

정말로 그렇게 느끼기도 했구요.

벚꽃이 지고, 더운 바람이 비를 뿌리면 여름이 다가오고 있다는 신호를 느껴요.


하지만 며칠이 지나 생각해보니 벚꽃이 아닌 꽃들에게 얼마나 불공평한 일인지!

나를 봐달라며 공들여 피운 꽃들이 봄을 장식하는 그 열심을 냅다 여름으로 넘겨버린 거잖아요.

단지 벚꽃이 지고 비가 내렸다는 이유로!

아직 4월인데도요.

그렇지만 아직도, 그 비가 쏟아진 뒤 시작된 화창한 '봄날'의 햇살은 어쩐지 여름의 그것과 더 닮아있다는 인상을 지울 수가 없네요. 아무래도 아주 크게 열린다는 고양 꽃 축제에 가서 꽃들을 면담하며 고민해봐야 할 것 같아요. 벚꽃이 떨어진 4월은 봄에 가까운가요, 여름에 더 가까운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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