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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빈방 Dec 01. 2022

40대에 새로운 꿈을 꾸기 시작했다

이번 생은 망했다고 생각했다. 결혼 대신 선택했던 유학생활의 끝자락에서 갑작스런 병에 걸려 발목을 잡혔고, 결국 아무것도 없는40대 백수 미혼여성이라는 유쾌하지 않은 타이틀을 달게 되었다. 언제 재발할 지 모르는  병을 시한폭탄처럼 안고 사는 상태에서는 직장을 얻는 것도, 무엇인가를 새로 시작하는 것도 쉽지 않았다. 끝없는 병원행에 가족들도 지쳐갔고 그렇게 부모형제와도 서서히 멀어졌다.


자꾸 재발하는 병에, 제대로 된 일을 하지않고 허송세월하는 딸 그리고 동생의 모습에 가족들은 점점 짜증스러운 반응을 보이기 시작했고, 부모형제에게조차 이해받지 못한다는 생각에 우울감은 점점 심해져갔다. 병이 재발하고 통증이 심해지면 늘 떠오르는 한 가지 생각은 죽음이었다.


어려서부터 죽음에 대해 유달리 심한 공포심을 가지고 있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병원에서 몇 차례 죽음의 문턱을 넘나들며 그러한 공포심이 사라졌다. 마약성 진통제로도 통증이 가라앉지 않을 때에는 습관처럼 ‘스위스’, ‘안락사 비용’ 등을 검색했고, 유서를 작성하거나 물건들을 중고매매 사이트에 올리면서 신변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맥시멀리스트라기보다는 호더 (hoarder)에 가까울 정도로 아무 생각없이 사고싶은 것, 예쁜 것들을 모조리 사들이던 소비습관은 아이러니컬하게도 죽음에 대비한 신변정리를 시작하면서 바뀌기 시작했다. 엄청난 양의 물건을 비워내며 마음도 조금씩 정리되기 시작했고, 삶의 무게도 가벼워졌다. 내가 죽고난 후 가족들에게 짐을 안겨주기 싫어 시작했던 일이 오히려 내 마음의 짐을 덜어주었고, 내 인생이 조금 가볍게 생각되기 시작했다.


좋은 직업, 명예로운 타이틀에 대한 집착을 내려놓고 내가 할 수 있는 일들을 생각하기 시작했다. 안정적으로 출근하지 않아도 되는 일, 경력이 필요하지 않은 일, 병이 재발해도 남에게 잠시 맡길 수 있는 일, 큰 자본금을 들이지 않아도 되는 일이 뭐가 있을까 생각하던 끝에 작은 공유 숙소를  운영해보기로 했다. 본가 근처에 월세집을 얻어 이사하고, 기존에 내가 살던 작은 아파트를 손보기 시작했다. 월세집에는 최소한의 가구와 짐만 가져가고, 내가 쓰던 가구와 중고 사이트에서 구입한 세간살이들로 집을 꾸미기 시작했다. 한여름 무더위 속에서 몸에 무리가 가지 않을 정도의 노동으로  석달 만에 공유숙소를 완성했다.


정리정돈과 청소에 능하고 집꾸미기를 좋아하는 나의 성향을 고려했을 때, 공유숙소 운영은 꽤 괜찮은 선택이었다. 인터넷에서 침구와 수건, 세면용품 등을 주문하고, 드디어 공유숙박 사이트에 집을 등록했다. 정말 정성껏 꾸미고 준비한 집이 여행객들에게 외면당하면 어쩌나 하는 조바심은 기우였다. 목요일 밤 11시에 사이트에 업로드한 지  7시간 만인 오전 6시에 첫 예약이 확정됐고, 9시간 후인 오후 3시에 고대하던 첫 게스트를 맞이하게 되었다.


막연하게 공유숙소를 계획하면서 불안한 마음에 역술인을 찾았었다. 나에게 임대업이 천직이라던 역술인은 공유숙박업을 준비 중이라고 하자 무조건 잘 될테니 해보라고 했고, 복채를 지불하고 나오는 내 뒤통수에 대고 말했다. “글도 한번 써봐요!”


예전에는 단 한 번도 생각해 보지 않았던 새로운 도전들이 그렇게 시작되었다. 나는 글을 쓰는 게스트 하우스 주인이 되기로 마음먹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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