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동화 Oct 18. 2024

여기는 코리빙하우스입니다 1

여기가 대나무 숲인가요?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

오늘은 내가 묵고 있는 숙소라고 해야 할지, 집이라고 해야 할지, 아무튼 지금 내가 살고 있는 코리빙하우스에 대해 이야기해 보겠다. 물론 정확한 숙박업체의 명칭이나 위치 정보에 대해서는 굳이 설명하지 않을 것이다. 이 글이 혹시나 문제가 되어 문 앞에 내용증명이 붙어있어도 나는 금융치료를 해결할 능력이 없기 때문이다.    


나는 서울에서 살 집을 구하는데 꽤 많은 공을 들였다. 예전에도 말한 적이 있지만 처음에는 오피스텔이나 원룸 위주로 알아보았는데, 보증금 문제나 긴 계약기간 때문에 다른 방법을 찾아보다가 대안이 될 만한 코리빙하우스를 선택하게 되었다. 그리고 내가 지금 살고 있는 이곳은 여러 후보들 가운데 두 번째로 괜찮다고 생각해서 고른 곳이다.      

그럼 1순위에 가지 않고 왜 2순위로 온 것일까? 대부분의 측면에서 볼 때 1순위가 가장 최상의 선택이었지만 나의 1순위는 곧 다른 이들에게도 1순위였기 때문에 입주가 가능한 공실이 없었다. 그리하여 위치나 가격 등, 여러 가지 측면에서 고려했을 때 2순위인 지금의 숙소를 선택하게 된 것이다.  


또 같은 코리빙하우스라 할지라도 지점별로 가격이 천차만별이고 관리비도 다 다르기 때문에 월세가 싸다고 바로 선택할게 아니라 관리비까지 꼼꼼하게 알아봐야 한다. 그리고 차가 있다면 주차가 가능한지, 주차대수가 여유 있는지도 잘 알아봐야 한다. 물론 코리빙하우스는 주차장이 있더라 대부분 주차비를 추가로 받으니 그 부분 또한 월세에 플러스를 해야 한다. 주차비가 저렴하지는 않았기 때문에 나는 차를 본가 주차장에 버리고 왔다. 배터리 선을 뽑아 놓은 채로. 조금만 쉬고 있으렴. 곧 내려올게.


그럴듯하지도 않은 가짜 창문 논란

그렇게 2순위 코리빙하우스를 약하고 입주 당일 처음 본 객실 컨디션은 좋았다. 바닥이나 화장실은 물론이고 창틀까지 깨끗하게 청소가 되어 있었다. 바닥 깨끗했지만 그래도 다이소에서 산 청소포를 가지고 두 번 정도 닦았다.      


계약 당시 남동쪽과 북서쪽의 방이 있다길래 당연히 남동쪽으로 선택했다. 전망이 좋은 건 아니지만 그래도 바로 앞에 가리는 건물이 없어 그나마 다행이라 생각했는데 어째서인지 창문을 활짝 열어놓아도 바람이 전혀 들어오 않는다. 어? 왜지? 그러다 문득 창밖의 나무를 바라보았다. 푸릇푸릇 잎이 무성한 나무는 헤어스프레이를 뿌려 단단하게 고정시켜 놓은 것 마냥 나뭇잎 하나 움직이질 않는다. ‘어머 세상에 그림인 줄.’


아무래도 이곳은 바람길을 완벽하게 비켜 간 것 같다.     

“바람 안 들어오는 게 뭐 대수냐. 그럼 겨울에 외풍도 없고 따숩겠네.”

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바람이 안 들어온다는 건 그만큼 환기가 안 된다는 뜻이다. 입주하고 얼마 안 돼서 마라탕 한번 시켜 먹었다가 일주일 동안 집에 들어올 때마다 중국의 향을 느껴야 했다. 내가 지금 사는 곳이 서울인지, 북경인지… 결국 나는 어쩔 수 없이 수동으로 환기시키는 법을 고민하다가 한 가지 방법을 찾아냈는데 차마 눈뜨고 보기 힘들 만큼 몹시 촐싹 맞은 게 문제다.


애착비닐 활용법

누구도 궁금해하지 않겠지만 굳이 굳이 수동 환기 법을 공유해 보자면, 내가 장바구니로 자주 쓰는 검은 비닐봉지가 있는데 용량이 30리터 정도로 제법 크다. 나는 이 애착비닐을 들고 연을 날리듯 방구석을 휘저으며 뛰어다닌다. 그럼 이 애착비닐에 공기가 빵빵하게 차는데 그렇게 모은 방 안의 공기를 그대로 창문 밖으로 내보내는 것이다. 그 짓을 몇 분 동안 하다 보면 현타가 살짝 온다. 내가 무슨 부귀영화를 누리겠다고 여기까지 와서 이러고 있는 것인가.


비닐봉지 수동 환기법은 현타가 올 만큼 촐싹 맞은 방법이긴 하지만 써큘레이터 선풍기보다 효과는 더 좋았다. 부가기능으로 칼로리 소비 기능도 있으니 밥 먹고 한 두 번 정도 해주면 소화와 칼로리 소비에 도움을 주기도 한다.

아무튼 결론은 바람, 정말 중요하다. 너무 많이 불어도 안 되겠지만 적당히는 불어야 환기가 된다.  

   

농담 반 진담 반으로 하는 얘긴데 혹시 누군가 이사를 계획하고 있다면 창문을 열어 밖을 보아라. 눈앞에 미동 하나 없는 그림 같은 나무가 서 있다면 입주를 다시 생각해 보거나 큰 비닐을 준비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이 집은 희한한 게 남동향에 가리는 건물이 딱히 없음에도 햇볕이 속 시원하게 들어오는 꼴을 못 봤다. 이 정도면 이건 창문이 아니라 창문 모양의 액자가 아닐까? 아니면, 저 밖의 세상이 홀로그램이거나 그냥 사진이 아닐까?

누가 작가 지망생 아니랄까 봐 창문 하나 가지고 홀로그램 우주까지 생각한다. 에효. 이래서 사람이 햇볕도 좀 쬐고 사람이랑 말도 좀 하고 그래야 하는 거다.


터무니없는 가짜 창문 논란은 그 뒤에 수시로 들어오는 날벌레를 통해 바깥세상이 진짜였음을 깨닫게 되며 일단락되었다.     

그리고 가짜 창문이네, 그림 나무네. 하는 것들은 아무 문제도 아닌 일들이 그 뒤로도 쉴 새 없이 벌어지는데 기회가 되면 2탄을 통해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를 외쳐보겠다. 여기는 내가 만든 대나무 숲이니까.


이전 09화 알람이 울리지 않는 삶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