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동화 Oct 15. 2024

알람이 울리지 않는 삶

한 때는 필수였으나 지금은 필요 없어진

 

6년 동안 알람에 맞춰 일어나던 게 습관이 된 나는 백수가 된 이후에도 어김없이 알람에 맞춰 일어나 하루를 시작했다. 새벽 늦게야 잠이 들어 몹시 피곤했던 어느 날, 시끄럽게 울리는 알람 소리에 깬 나는 신경질이 났다. 그리고 잠결에 그런 생각이 들었다.   

   

‘지금 내가 알람이 왜 필요해?’     


 

그 생각이 왜 지금에야 떠오르는 건지, 아무튼 나는 다음날부터 알람을 켜지 않았다. 더 이상 알람을 맞출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8시에 일어나든 18시에 일어나든 아무 상관이 없었다. 알람이 울리지 않는 며칠간은 정말 좋았다. 한없이 풀어질 수 있었으니까. 그런데 나는, 늦잠이라는 자유의 상징과도 같은 일을 매일 경험할 수 있었음에도 정말 피곤하지 않은 이상, 출근할 때와 같은 시간에 일어났다. 알람 없이도 그 시간에 자꾸 눈이 떠지는 거다. 습관이라는 게 이래서 무섭다는 건가.


일찍 일어나면 하루가 더 길다. 두 끼 먹을 거 세끼를 먹어야 하고 식비는 그만큼 늘어난다. 그러니 점심때 일어나면 아침값이 절약되겠지. 나는 일찍 눈이 떠지면 다시 눈을 감고 잠을 청했다. 하지만 쉽게 잠이 오질 않았다. 알람이 울리진 않지만 이미 그 알람이 오랜 세월에 걸쳐 천천히 몸에 이식된 것처럼 나는 매번 비슷한 시간에 일어났다. 젠장. 세끼를 다 먹어야 하다니. 아니면 숙면에 좋다는 마그네슘을 좀 먹어볼까?  

   

늦잠을 자지 않고 일어나면 식비는 더 많이 나오겠지만 좋은 점도 있다. 하루를 길게 쓸 수 있다는 점. 아침에 책을 읽을 수도, 그간 놓쳤던 드라마를 볼 수도, 지금처럼 글을 쓸 수도 있다. 나는 앞에서 말한 세 가지를 돌아가면서 했다. 결론적으로 나는 세끼를 먹더라도 늦잠을 자지 않는 편을 택했다.      


방구석 붙박이

서울 온 지 한 달 정도는 서울 구경하느라 나름 바쁘게 보냈다. 강남, 홍대, 건대, 성수, 종로, 동대문, 여의도 등등 매일 같이 싸돌아 다니며 관광객모드로 실컷 즐겼는데 이제 그것도 한 달 하고 나니 딱히 보고 싶은 것도 없고 혼자 다니려니 재미도 없었다. 관광지를 가면 뭐 하나 흔한 맛집도 못 가고. 나도 맛있는 레스토랑에서 파스타 먹고 디저트 카페도 가고 싶은데 혼자서는 가기 쉽지 않더라. 이래저래 서울살이 한 달 만에 나는 방구석 붙박이가 되었다. 그래. 안 나가야 돈을 안 쓰지. 나는 저녁에 마트 가는 것과 일주일에 한 번 학원 가는 것을 제외하고는 거의 집에서 생활했다.    

  

나는 그래서 학원가는 날이 좋았다. 일주일 내내 혼자 밥 먹고 혼잣말하고 가끔 친구들과 통화하는 게 전부였던 내가, 그날만은 사람과 대면 대화를 할 수 있으니, 출장 간 집주인 기다리는 강아지처럼 그날만 기다렸다.

                

고구마와 사이다의 퐁당퐁당

작법 수업 시간에 이야기의 원형에 대해 배웠다. 우리가 열광하는 드라마들에는 대체로 비슷한 패턴과 공식이 존재한다. 대부분의 시청자들은 그 공식이 뭔지 모르고 시청하지만, 그런 공식이 적용된 드라마에 자기도 모르게 홀린 듯이 빠져들게 되는 것이다. 고난과 역경, 시련, 그리고 이 모두를 이겨내고 마침내 승리자가 된 주인공에게 사람들은 열광한다. 시련이 없는 주인공은 주인공 감이 아니다. 주인공이 처음부터 끝까지 어떤 갈등과 문제없이 평안하기만 한 모습을 14부 동안 지켜볼 시청자가 과연 몇 명이나 있을까? 고구마로 목이 막혀봐야 사이다가 더 맛있는 법이다. 물론 내내 고구마만 주다가 마지막 회나 되어서야 사이다를 건네는 건 나도 정말 싫다. 그러니 고구마와 사이다를 적절히 배열할 수 있는 능력 또한 작가에게 중요한 요소겠지.


  

수업을 들으며 돌이켜 보니 내가 재미있게 봤던 드라마들도 대부분 이 공식을 따르고 있었다. 주인공은 드라마가 시작되면 보통 1-2화쯤에 시련이 시작되는데, 낯선 환경에 들어가 갈등을 겪거나 어떤 사건에 휘말리면서 선택의 기로에 서게 된다. 그러면 시청자들은 주인공의 선택과 행보를 궁금해하며 1-2화를 보게 된다. 주인공일수록 더 많은 시련이 주어지고 그 시련은 회를 거듭할수록 첩첩산중으로 쌓이다가 시청자들이 목이 막힐 때쯤 시련과 갈등을 해소시키며 사이다를 주고는 다음 고구마를 준비한다. 그렇게 시청자는 주인공과 최종화까지 고구마와 사이다를 번갈아 먹으면서 희로애락을 함께 한다.


시청자가 드라마를 보는 이유는 간단하다. 재미있어서, 궁금해서, 감동적이어서 혹은 내용이고 뭐고 다 모르겠고 그냥 주인공이 매력 있어서 등등.

내가 드라마를 보는 이유도 앞선 이유와 크게 다르지 않다. 큰 내용은 없지만 그냥 밑도 끝도 없이 웃기거나 소소한 감동이 있거나 뒷 이야기가 갈수록 궁금하거나 그것도 아니면 이야기가 산으로 가는 와중에도 주인공의 매력에서 헤어 나올 수 없거나 하는 경우 등등.

위 요소들 중 하나라도 충족시킨다면 그런 이유로 인해 드라마를 보는 시청자가 있을 것이다. 물론 이 모두를 다 충족시킨다면 그야말로 대박 난 작품이 탄생하기도 하는 거겠지.


작가 = 요리사?

흔히 히트작이라고 했던 드라마들을 떠올려 보면 재미와 감동이 있으면서 주인공도 매력적이고 다음 이야기가 궁금해 일주일을 기다리기 조차 힘들 정도로 몰입감을 주는 요소들이 많았다. 히트작에는 그야말로 비빔밥처럼 모든 요소가 다 들어가 있었고 그 모든 재료들이 기가 막히게 어우러지고 잘 섞여 최고의 맛을 냈다.

드라마는 호흡이 길기 때문에 시청자가 중도에 이탈하지 않고 주인공의 긴 여정을 함께 응원하면서 보게 하려면 상당한 스킬을 필요로 한다. 학원에서는 그 스킬에 대해 배우는 것이다.

     

작법 수업을 듣다 보니 마치 수학 수업과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선생님이 칠판에 적힌 문제를 풀 때는 너무 쉽게 술술 잘 풀렸는데 막상 문제와 나만 남으니, 머리가 백지가 됐던, 그런 기억 다들 한 번씩 있지 않나? 나에겐 작법 수업도 마찬가지다 ‘맞아. 그런 드라마가 재미있었지.’ ‘아. 그렇게 쓰면 되는 거구나.’ 하며 수업을 따라가다가도 막상 내가 쓸 작품의 주인공을 떠올리려니 머리가 다시 백지가 됐다. 그리고 그 빈자리는 ‘네네치킨을 먹을까? 굽네치킨을 먹을까?’하는 식욕이 차지했다. 그래. 작품 구상이 더딘건 뇌에 칼로리가 부족해서 인거야. 일단 배부터 채우자. 나는 아무도 궁금해하지 않는 명분까지 만들며 배달 어플을 열었다. 오늘은 굽네치킨이닷!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