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필사
눈 속에는 꽃이,
겨울 속에는 봄이,
고난 속에는 희망이
저 겨울산의 나무들처럼.
— 박노해, 『걷는 독서』
이 문장을 적으며
나는 ‘지금의 나’를 떠올렸다.
겉으로 보면
아무것도 피지 않은 것처럼 보이는 시간,
버티는 것 말고는
하고 있는 일이 없는 것처럼 느껴지는 날들.
눈 덮인 산을 보면
우리는 흔히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 안에서는
꽃이 준비되고 있고,
봄이 자라고 있고,
나무는 묵묵히
자기 시간을 견디고 있다.
관계 속의 나도 그랬다.
늘 잘해내는 사람은 아니었고,
언제나 따뜻한 사람도 아니었다.
어떤 날은
말을 줄였고,
어떤 날은
한 발 물러섰고,
어떤 날은
그저 버티는 것만으로 하루를 보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그 자리에서
뿌리를 놓지 않았다.
상처를 숨기기도 했고,
마음을 감추기도 했지만
완전히 포기하지는 않았다.
그래서 이 문장이
위로처럼 다가온다.
지금 꽃이 보이지 않는다고 해서
아무것도 자라지 않는 건 아니라는 말.
겨울 한가운데 있어도
봄은 이미 시작되고 있다는 말.
요즘의 나는
관계 속에서의 나를
조급하게 판단하지 않으려 한다.
지금은 설명할 수 없어도,
지금은 드러나지 않아도
나는 분명
어딘가로 가고 있다는 걸
조금은 믿어보기로 한다.
눈 속에 꽃이 있다면,
겨울 속에 봄이 있다면,
고난 속에 희망이 있다면
지금의 이 시간도
결코 헛된 시간은 아닐 것이다.
나는 오늘도
겨울산의 나무처럼
말없이 서 있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조용히
다음 계절을 준비하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