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나는 친구의 아내를 향해 농담 삼아 “안방마님”이라 불렀다. 그분은 내가 속한 동호회에서 책임감 있게, 그리고 묵묵히 굳은 일을 도맡아 하고 있었다. 그래서 내 표현은 가볍고 친근한 찬사의 의미였다. 집안을 지혜롭게 이끄는 중심인물이라는 의미이자, 야구에서 포수를 일컫는 말처럼 든든한 리더십을 인정하는 뜻이었다. 하지만 친구는 갑자기 표정을 굳히더니 불쾌한 기색을 내비쳤다. 나는 당황했고, 그제야 이 한 단어에 담긴 여러 겹의 의미를 다시 곱씹게 되었다.
야구에서 포수는 흔히 ‘안방마님’이라 불린다. 홈플레이트라는 ‘안방’을 굳건히 지키며 투수의 공을 받아내고, 수비를 조율하며 경기를 주도하는 존재. 눈에 잘 띄진 않지만, 없으면 경기가 성립되지 않는 중심이다. 나는 바로 그런 이미지 속에서 친구의 아내를 떠올렸고, 자연스럽게 그 표현이 나왔다. 야구를 좋아하는 나로서는 스포츠 기사에서 흔히 접하던 표현을 별다른 의도 없이 사용했던 것이다.
그러나 일상 대화에서의 ‘안방마님’은 꼭 그렇게 긍정적으로 받아들여지지는 않는 듯하다. 누군가의 아내를 그렇게 부르면, 듣는 이로 하여금 ‘집안의 실권을 쥔 사람’이나 ‘남편을 지배하는 사람’처럼 비춰질 수 있다. 전통적인 가부장제 사회에서 ‘안방마님’은 분명 권위 있는 존재였지만, 동시에 고지식하고 나이든 이미지, 남편보다 위에 있는 듯한 인상을 불러일으키기도 한다. 결국 내 말은 친구의 자존심을 건드린 셈이었을지도 모른다.
말에는 무게가 있다. 아무리 좋은 의도라도, 맥락을 무시하면 그것은 칭찬이 아닌 조롱처럼 들릴 수 있다. 내가 포수의 리더십을 떠올리며 건넨 말은, 친구에게는 자신이 아내에게 눌려 산다는 비아냥처럼 느껴졌을지 모른다. 그 순간 나는 새삼 깨달았다. 언어는 단순히 의미를 전달하는 도구가 아니라, 관계를 매만지기도 하고 상처를 내기도 하는 날카로운 칼이 될 수 있다는 것을.
그날 이후, 나는 말을 고를 때 한 번 더 생각하게 되었다. 같은 표현도 어떤 맥락에서, 누구에게, 어떤 어조로 전달되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의미를 가질 수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 진심이야말로 가장 조심스럽게 전달되어야 한다는 것을 다시금 마음에 새기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