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북 301호 청년 11화

물손님

by 김승수

야간 파트 알바생이 출근하는 10시가 되기 20분 전 9시 40분이었다. 점장은 평소와 같이 계산대 뒤편 의자에 앉아 손님들을 구경하고 있었다. 최근 들어 그녀의 관심은 통칭 '물손님'이라고 칭하는 손님이 오늘도 물을 사러 편의점에 올까였다. '물손님'은 약 2주 전부터 이틀 간격으로 물을 사러 오는 남자 손님으로, 항상 9시~10시 사이에 방문해서 오직 2L짜리 물만 사서 물을 품에 안고 돌아가는 손님이었다


편의점에서 장사를 하면 별별 손님들과 마주하게 되는데, 모자를 폭 놀러쓴 채 항상 같은 브랜드의 콘돔만 사가는 손님, 매일 소주를 1병씩 사서 가는 손님, 신상이 나오길 기다렸다는 듯이 출시되자마자 사 먹는 사람 등 다양한 유형이 그녀의 편의점을 찾았다. 그런 손님들에게 자신만의 별명을 붙여주는 일은 손님과의 대화가 줄어들면서 그녀가 선택한 또 하나의 취미였다. 그녀는 별명을 지어준 손님이 오면 내적 친밀감에 반가움이 들었지만 힘겹게 참아내곤 했다.


9시 45분이 되자, 익숙한 얼굴의 짧은 머리의 손님이 편의점에 들어왔다. 점장은 '물손님'이 오자 '오늘은 올 것이다'라고 예측한 자신을 뿌듯해하며 2+1하는 물을 결제할 준비를 하고 있었다. 역시나 '물손님'은 계산대에 3개의 물병을 내려두었고, 점장은 자연스럽게 바코드를 찍었다.

“3000원입니다.”


점장이 당당하게 말하자, '물손님'은 당황한 기색을 보이며, 사탕 3개를 점장에게 가리키며

말했다.


“저, 이것도 있는데요...”

“어? 오늘은 물 말고 다른 것도 사네요?”

“예?”

“어머! 그게 아니고 매번 물만 사가셔서 얼굴이 익었거든요. 원래 손님한테 말을 잘 안 거는

데 나도 모르게 놀라서 입 밖으로 나와버렸네. 미안해요.”

“아 기억하고 계셨구나...”

“기분 나빴다면 미안해요. 여기 앉아 있다 보면, 하는 게 사람 구경밖에 없어서 그래요. 아줌마 주책이라고 생각해줘요.”


손님은 별일 아니라는 듯 살짝 미소를 보이며 말했다.


“괜찮습니다. 딱히 기분이 나쁘지 않았습니다. 사탕은 제가 아니라 같은 오피스텔 아이한테 주려고 샀습니다.”

“어머, 요즘 이웃한테 뭐 주고 그러는 거 보기 힘든데, 착한 청년이네.”

“고마운 일이 있어서요.”

“그래요? 내 정신 좀 봐. 오랜만에 손님이랑 대화했더니 계산을 깜빡했네. 사탕까지 해서

4400원이에요.”

“네, 여기요. 감사합니다”


손님은 카드를 돌려받은 후 주머니에 사탕 3개를 찔러 넣고, 물을 품에 안은 채 떠났다. 점장은 떠나는 손님을 바라보며 기분 나빠하지 않아서 다행이라고 생각하면서도 오랜만에 슈퍼를 운영하던 시기가 생각나 웃음이 세어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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