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리인으로 일하게 된 것은 그가 초등학교 교장 선생님으로서 정년퇴임을 한 지 1년이 지나서부터였다. 그는 아이들이 좋아 선생님이 되었고, 아이들에게 좀 더 좋은 교육환경을 마련해 주고 싶은 마음을 가진 교장 선생님이었다. 가정형편이 어려운 아이가 있다면 사비를 털어서라도 도움을 주었던 그는, 자신이 하는 일에 대한 자부심을 가지며 살아왔다. 하지만, 많은 이들에게 존경받는 그에게도 다가오는 정년퇴임을 막을 수 있는 방법은 없었다. 아이들을 위해 교직에 더 몸담고 싶었지만, 마음만으로는 할 수 없는 일도 있는 법이었다.
항상 바쁘게 살았기에, 그는 퇴임 이후에는 여유를 즐겨보고자 하였고 약 6개월 동안에는 그것을 충분히 즐기며 살았다. 바쁘다는 핑계로 해보지 못했던 캠핑도 해보고, 자전거도 타보고, 분위기 좋은 동네 카페에서 책을 읽기도 했다. 하지만, 일평생을 남을 위해 일하고, 쉬지 않았던 그였기에 계획 없이 여유만 즐기는 것에는 한계가 있었다. 그의 오래된 친구는 친구의 그런 모습을 보고, 자신이 가지고 있는 '컬쳐 타운'의 관리인 직을 제안했다. 마침 몸도 근질근질하던 전직 교장 선생님은 자신이 필요한 곳이 있다는 것에 흡족해하며 흔쾌히 관리인 직을 받아들였다. 그의 친구는 기존 관리인이 받던 월급만큼 친구에게 주고자 하였으나, 용돈 벌이 정도의 월급이면 충분하다며 친구의 제안은 거절하였다. 그에게는 돈이 아닌 자신의 힘으로 타인을 도울 수 있는 일이 생겼다는 것이 더 중요했기 때문이다.
그는 관리인으로서의 업무를 성실히 수행했다. 매일 출근하여 미흡한 분리수거를 마무리하였고, 오피스텔을 돌아다니며 고장 난 곳은 없는지, 수리가 필요한 곳은 없는지 확인하였다. 종종 들어오는 세입자들에게 '컬쳐 타운'에서 주의해야 할 점에 대해 간단히 일러주었고, 입주자들에게서 불만이나 요청사항이 있으면 조치해주였다. 그렇게 3년간 '컬쳐 타운'에서 일하며 그는 자신만의 행복을 찾고 있었다.
최근에는 몇 개월 전부터는 그의 일과가 더 추가되었다. 음료수를 사러 들어갔던 편의점의 점장과 나눴던 스몰 토크가 이제는 매일 하는 일과가 되었고, 편의점 점장도 종종 자양강장제를 한 손에 들고선 그가 오기만을 기다렸다가, 그와 대화를 나누곤 했다. 관리인으로 일하면서 대화를 나눌 일은 크게 없기에, 그도 편의점 점장과의 대화를 긍정적으로 생각했다. 하지만, 편의점 점장과의 대화보다 그에게 더 중요한 일과가 있었는데, 그것은 바로 803호에 사는 아이의 문을 열어주는 것이었다.
그의 가장 중요한 일과가 시작된 날은 우연히 시작되었다. 작년 가을 어느 날, 유치원 선생님과 함께 '컬쳐타운'으로 온 아이가 선생님에게 공동현관문 비밀번호를 알려주는 모습을 관리인이 목격했었다. 선생님이 비밀번호를 눌러주자 아이는 선생님께 배꼽 인사를 한 후 유유히 오피스텔 안으로 사라졌다. 또래에 비해 의젓하게 행동했지만, 키는 또래와 비슷한 아이의 모습을 보며 과거 자신이 가르쳤던 학생들을 떠올렸다. 그런 날이 계속 반복되자, 관리인은 앞으로는 자신이 공동현관문을 열어줄 테니, 오피스텔 앞까지만 데려다주어도 괜찮을 것 같다는 말을 아이의 선생님에게 전했다. 이후로도 선생님은 몇 번 더 아이와 함께 오더니, 관리인이 항상 그 시간에 아이를 기다리고 있다는 것을 파악하고선 점점 함께 오는횟수가 줄어들었다. 그즈음부터 아이와 할아버지의 관계가 가까워지기 시작했고, 아이의 엄마도 유치원 선생님을 통해 들었는지 관리인에게 종종 고맙다는 말과 함께 감사의 표시를 전하기도 했다.
모종의 관계가 형성된 이후, 관리인이 딱 한 번 아이의 하원 시간에 자리를 비운 적이 있었다. 그날도 그는 관리인으로서 자신이 해야 할 일을 하고선, 편의점 점장과의 대화를 나누는 일과를 치르고 있었다. 평소였다면 인지했겠지만, 대화에 너무 집중한 나머지 시계를 확인했을 때는 이미 하원 시간이 10분 지난 상태였다. 관리인은 서둘러 오피스텔로 향했지만, 빗자루만이 공동현관문 앞에 놓여있을 뿐 아이는 없었다. 늘 비슷한 시간대에 오던 아이였기에 관리인은 다급하게 CCTV를 돌려보았고, 금방 사건의 전말을 알수 있었다. 영상 속 아이는 어른의 도움음 받아 무사히 집으로 들어갔고, 공동현관문을 얼어주었던 어른은 301호로 들어가는 것을 보았다. 관리인은 그제야 문을 열어준 이가 301호에 새로 들어온 청년임을 알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