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북 301호 청년 22화

사라진 아이

by 김승수

선물 구매를 위한 여정이 끝난 후, 집에 돌아온 도민은 또다시 조용히 천장을 바라보며 누웠다. 아무것도 없을 천장에는 과자와 엄마의 행복 사이에서 고민하던 아이의 표정이 그려졌다. 500원씩 아름아름 모아서 만든 7000원이라는 금액은 아이에게 있어 큰 금액이었을 것이다. 그렇지만 아이는 엄마의 웃는 얼굴을 보기 위해서 과자를 포기하고, 용돈의 대부분을 기꺼이 사용하는 모습이 대견하게 느껴졌다. 그러면서 자신도 어릴 때, 아버지 생신 선물로 소주를 사 와서 아버지를 함박웃음 짓게 만들었다는 이야기를 떠올렸다. 자신도 어릴 때는 순수하고 원초적인 방법으로 부모님을 행복하게 했음에 미소 지었다.


잠시 추억을 회상하던 도민은 휴대폰을 꺼내 들었고, 휴대폰을 만지다 우연히 다시 불합격 통보가 적힌 문자를 읽게 되었다. 아이와 함께하는 시간 동안 취업 실패의 스트레스에서 벗어난 도민이었지만, 다시금 현실을 인지하게 되면서 머리가 시큰해지는 듯했다. 도민은 다시 휴대폰 화면을 엎은 채 천장을 바라보았다. 아이의 표정이 그려지던 천장은 정수리에 희끗희끗한 흰머리가 보이던 면접관의 얼굴이 그려져 도민은 눈을 감기로 선택했다.


도민이 눈을 떴을 때는 초인종 소리와 다급한 노크 소리가 들렸다. 도민은 요즘 따라 자신을 찾는 사람들 유독 많은 것 같다는 생각을 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문을 열자 30대 여성 한 명이 흔들리는 눈으로 도민을 쳐다보고 있었다. 도민은 단번에 여성이 아이의 엄마임을 알아챘다.


“아 안녕하세요. 생신 축하.."

“혹시, 우리 승우 어딨는지 아세요? 퇴근하고 왔더니 애가 없어져서요.”


도민은 아이가 없어졌다는 여성의 말을 통해 상황을 파악하기 시작했다.


“승우가 없어져요?”

“네. 원래 퇴근하면 항상 집에 있는데, 바.. 방금 왔더니 애가 없어요. 혹시 아시는가 해서요.”

“오늘 같이 있긴했...”

“네? 같이 있었어요? 언제요?”

“오늘 생신이라고 해서 선물을 같이 골라 달라고 했거든요. 5시쯤이었나? 그때 집에 다시 돌아왔거든요.”

“승우도 집에 들어간 거죠?”

“네. 제가 집에 들어가는 거 확인하고 내려왔거든요.”

“하... 얘가 어디로 간 거야...”

“진정하시고, 저도 같이 찾아볼 테니 어머님은 승우가 가볼 만한 곳을 한번 천천히 떠올려 보세요.”

“감사합니다. 부탁드릴게요.”


여성을 올려 보내고, 도민은 주섬주섬 웃을 꺼내 입기 시작했다. 갑작스럽게 벌어진 상황에 정신을 못 차린 도민이었지만, 엄마에게 주려고 꽃까지 산 아이가 어디로 갔을지 생각해 보며, 문밖을 나섰다.

밖은 이미 해가 져서 네온사인들이 켜진 상태였고, 거리에는 기분 좋게 취한 직장인들이 밖에서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평소와 다름없는 거리의 풍경이었지만, 유치원생이 혼자서 거닐기에 알맞은 거리는 아니었다. 도민은 자신과 함께 있었던 아이가 없어졌다는 사실에 신경이 쓰여 맘이 급해져 빠르게 발걸음을 옮겼다.

아이와 함께 갔던 잡화점, 빵집, 꽃집을 모두 찾아가 보았지만, 모두 아이를 본 적이 없다고 이야기하였다. 더 이상 아이가 갔을 곳이 생각나지 않은 도민은 도민은 결국 다시 ‘컬처타운’으로 돌아왔다. 1층에는 이미 심각한 표정의 아이의 엄마를 위로해 주는 관리인이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무슨 일이 있는 건 아니겠죠?”

“승우 엄마 걱정하지 말고, 경찰에 신고했으니 차분히 기다려봅시다.”

“애까지 잘못되면 저는 정말...”

“에헤이 승우 엄마, 그런 생각하면 안 돼요. 워낙 똘똘한 애니깐 그럴 일 없을 겁니다.”

“그래야 할 텐데...”

“301호 어때요? 뭔가 소식이 있어요?”

“아뇨. 아까 같이 갔던 곳을 찾아가 봤는데, 다들 못 봤다고 하네요.”

“얘가 어딜 간 거야 대체.”

“저는 조금 더 찾아보고 올게요.”

“그래요. 조금만 더 고생해 줘요.”

“네”


도민은 무슨 말을 건네야 할지 몰라 빨리 자리를 피했다. 세상이 무너진 듯한 표정을 하고 있는 여자에게 어떤 말을 건네더라도 위로가 되지 못할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도민은 이리저리 동네를 들러보다가 잠시 멈춰 서서 어디로 가야 할지 떠올려 보았다. 그때 우연히 고개를 들어 올려 바라본 도민의 시야에 CCTV가 보였다.

도민은 순간적으로 아이가 밖을 나섰더라면 이 근방 CCTV에 잡혔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도민은 황급히 주위를 둘러보았고, 시야에 편의점이 발견하였다. 도민은 즉시 편의점으로 달려가기 시작했다.


“저기 혹시 CCTV 좀 볼 수 있을까요?”

“물 손님이네? CCTV는 왜?”

“저랑 같은 오피스텔 사는 꼬마 아이 한 명이 아직 집을 안 들어와서 찾고 있는데 혹시 가능할까요?"

“어머, 엄마 걱정되게 걔는 어디 갔대?”

“괜찮을까요?”

“괜찮기는 한데, 이게 외부는 가게 주변만 조금 보이는 거라 잘 보이려나 모르겠네.”

“동선만 대충 예상해 보려고요.”

“탐정 같네. 그래요. 이리로 와요.”


편의점 점장은 도민을 포스대로 들어올 수 있게 열어주었다


“이거 원래 개인정보니 뭐니 해서 보여주면 안 되는 건데, 물손님이라 몰래 보여주는 거니깐 어디 가서 우리 편의점 CCTV 봤다고 말하고 다니면 안 돼요.”

“아아 그렇군요. 감사합니다. 아이 지나가는지만 확인할게요.”

“몇 시부터요?”

“음 5시쯤에 집에 왔으니, 5시 30분쯤부터 보면 될 것 길아요.”

“자 봅시다.”


두 사람은 영상 속 지나가는 사람들을 유심히 지켜보며 아이의 흔적을 찾아보았다. 수많은 사람이 지나가는 사이 영상 속 시간은 속절없이 지나갔고, 시간이 6시 30분을 알려주고 있을 때 꽃다발을 든 작은 아이가 편의점 앞을 지나가는 것이 보였다.


“잠시만요. 저 친구요.”

“꽃 들고 있는 애?”

“네 맞아요. 조금만 천천히 재생해 주실래요?”

“꼬마가 로맨틱하네.‘


영상 속 아이는 편의점에서 좌측으로 틀어서 이동하더니 금세 화면에서 사라졌다.


“좌측으로 가면 뭐가 있죠?”

“뭐 식당 있고, 지하철역 정도?”

“일단은 올라가면서 주변 분들에게 물어봐야 할 것 같네요. 도와주셔서 감사합니다.”

“이 정도야 뭐 언제든 도와줄 수 있지. 애기 찾으면 나한테도 알려줘요.”

“알겠습니다. 먼저 가보겠습니다.”

“그래요. 고생해요.”


편의점을 나선 도민은 영상 속 아이가 걸어가던 것처럼 곧장 편의점 좌측에 있는 길로 향했다. 길에는 편의점 점장의 말대로 약간의 식당들이 늘어서 있었다. 그중 가장 사람이 적어 보이는 식당에 들어가 주인에게 말을 걸었다.


“안녕하세요. 혹시 죄송한데, 6시 30분쯤에 꽃다발을 든 아이 지나가는 거 본 적 있으신가요"

“아 그 꽃 들고 있는 아기? 일지. 귀여워서 말 걸었던 게 기억나. 마음도 얼마나 착하던지.”

“아이가 뭐라고 하던가요?”

“그 뭐더라. 엄마 만나러 간다고 하던데?”

“엄마요?”

“응 엄마, 분명히 그렇게 말했어.”

“감사합니다. 아이를 찾고 있었거든요.”

“엄마를 못 찾았나 봐?”

“그랬나 봐요. 다음에 오겠습니다. 감사합니다.”

“그래요.”


아이가 무슨 목적으로 거리로 나왔는지를 알게 된 도민은 식당에서 나와 뛰어가기 시작했다. 아이가 엄마를 만나러 간다고 이야기했다면 아이가 갔을 법한 장소는 집, 정류장, 지하철역뿐이었고, 집에는 이미 없었다. 도민은 즉시 근처 정류장과 지하철역으로 향했다. 정류장에는 학원을 끝마치고 돌아오는 학생들과 이제 막 퇴근한 듯한 직장인들이 가득했지만, 꽃을 든 유치원생은 보이지 않았다. 도민은 정류장을 지나쳐 곧장 30m가량 앞에 있는 지하철역 입구로 들어갔다.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내려가는 동안 바라본 거울에는 약간 상기된 얼굴의 자신을 볼 수 있었다.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아이에게 정이 많이 들었는지 마음이 급해졌음을 깨달았다. 에스컬레이터가 끝에 다다르자 도민은 곧장 교통카드를 찍고 개찰구를 통과했다. 이리저리 둘러보던 도민은 아이의 모습을 찾지 못하자 역내 안내소로 뛰어갔다.


“수고하십니다. 혹시 꽃 들고 있는 아이 한 명 못 보셨나요?”

“꽃이요? 아아 저기 있어요.”


안내원이 가리킨 손가락 방향으로 고개를 돌리자, 꽃을 두 손에 꼭 쥐고선 곯아떨어진 아이가 앉아 있었다.


“안 그래도 애기가 엄마 기다린다길래 계속 지켜보고 있었는데, 기다리다 지쳤는지 자네요. 보호자 되세요?”

“보호자요? 아 네.”

“꽤 오래 기다렸으니깐 얼른 데려가세요.”

“감사합니다.”


도민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천천히 개찰구 다시 통과했다. 엄마가 언제 올지도 모르면서 무작정 앉아 있었던 아이가 답답하면서도, 꽃을 꼭 쥐고 있는 아이를 보니 맘 한구석이 아려왔다. 도민은 조심스럽게 아이에게 다가가 쪼그려 앉았다.

“승우야. 집에 가야지. 엄마 걱정하신다.”


아이는 도민의 목소리에 슬며시 눈을 뜨더니, 손으로 눈을 비비며 배시시 웃음을 보였다.


“아저씨.”

“그래. 아저씨다. 아저씨가 승우 찾는다고 얼마나 힘들었는지 알아?”

“엄마는요?”

“엄마는 집에 계셔. 안 그래도 엄마가 승우 없어졌다고 엄청 난리 셔.”

“엄마 화났어요?”

“화는 안 났고, 승우 없어진 줄 알고 엄청 슬퍼하고 계셔.”

“엄마 울면 안 되는데.”

“엄마 만나려면 집에서 기다리면 되지, 왜 여기까지 와 있어?”

“내가 유치원 버스 타면, 엄마가 항상 지하철 타러 가거든요. 그래서 여기서 기다리면 엄마가 올 줄 알았어요.”

“그래도 그렇지. 위험하게 혼자서 이러면 어떡해.”

“엄마한테 깜짝 선물 주려고 기다린 거거든요.”

아이는 자랑하듯 꽃다발을 도민에게 뻗어 보였다.


“엄마 웃는 거 빨리 보려고요. 요즘 엄마가 힘들어하거든요.”


아랫니 하나가 빠져 세상 순박해 보이는 표정의 아이가 웃으며 이야기하자 도민은 긴장했던 마음이 풀리며 아이에게 물었다.


“승우는 엄마가 웃으시는 게 그렇게 좋아?”

“네! 저는 엄마가 웃을 때가 제일 좋아요. 많이 보고 싶어요.”

“제일 좋아?”

“제일 좋아요.”

“그렇구나... 자 이제 엄마한테 선물드리러 가자.”

“네”


아이는 자연스럽게 도민에게 손을 뻗어 보였고, 도민은 슬며시 웃으며 손을 맞잡았다. 나란히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올라가 빠져나온 지하철역 밖은 상현달이 거리를 밝게 비추고 있었다. 몇 분 전만 하더라도 도민이 힘겹게 뛰어 올라온 거리는 아이의 깔깔거리며 웃는 소리로 채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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