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새벽 세시 칼리 Dec 10. 2023

15년 만의 면접, 나 떨고 있니?

우황청심원까지 먹었다고!

병원 10층, 면접 대기실에서 긴장하며 조용히 앉아 있었다.

병원 앞 약국에 들러 마시는 우황청심원을 한 병 사서 반 병 마시고 들어왔다.

마시는 우황청심원이 환으로 되어 있는 것보다 흡수가 빠르다길래.

얼마 만에 보는 면접인가.

약국에서 우황청심원을 사며 '살면서 우황청심원을 세 번이나 먹어보네.' 생각하며 피식 웃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우황청심원을 먹을 날이 더 있을 거라는 생각은 하지 못했다.


수능 보러 갈 때 반쪽,

결혼식날 반쪽.

그리고 15년 다니던 회사를 퇴사하고, 면접 보러 가던 바로 그날.

그날이 세 번째 우황청심원을 먹은 날이었다.


약사가 물었다.

"오늘 무슨 시험 있어요? 우황청심원 사러 온 사람들이 꽤 있네요."

"네, 오늘 독수리 병원(병원 이름은 유사한 이름으로 가명을 썼다) 면접이 있어서요.

너무 오랜만에 보는 면접이라 너무 떨리네요."

그나마 약사가 이런저런 질문을 하며 웃어주니 긴장이 조금 풀렸다.

독수리 병원은 시에서 운영하는 공공의료기관이었다. 내 전공과는 무관한 업계지만

<단시간 근로 사무 계약직>으로 채용 공고가 났기에 전공과 무관해도 괜찮겠다 싶어서 지원했다.


긴장하면 얼굴 근육이 경직되고, 마치 양이된 양 목소리가 음메~~~~ 하고 달달 떨려서

중요한 일이 있으면 우황청심원을 먹어줘야 한다. 그나마 덜 떨리니까.






바닥에 붙어 있는 면접 대기실 화살표를 따라 대기실 안으로 들어갔다.

어떻게 걸어 들어갔는지 잘 기억이 안 난다.

어느 순간 나는 그곳에 앉아 있었다.


그동안의 회사 생활을 아무 미련 없이 마무리하고

처음으로 실업급여라는 것을  5개월간 받았다. 일도 안 하는데 월급처럼 꽂히는 돈을 보며

그래도 고용보험 가입자였던 것이 이럴 땐 좋구나 생각했다. 물론 적은 돈이지만 말이다.

회사 다니며 냈던 세금으로 혜택을 받아 본 건 그때가 처음이었으리라.





실업급여를 받을 수 있는 마지막 한 달을 남겨두고

평소보다 더 열심히 이력서를 넣었다. 마냥 놀 수만은 없었다.

물론 억대 고액 연봉자라면 모르겠지만 외벌이로는 살기 힘들지 않은가?

다행히 면접을 보러 가기까지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진 않았다.


실업급여라는 걸 처음 받아 본 나는 사실 자발적 실업자였다.

회사 일과 육아를 동시에 하기가 힘들어 퇴사를 했다. 실업자가 되었다는 허망함보다는

이제 좀 쉬며 내가 하고 싶었던 것들을 할 수 있겠다는 생각에 오히려 기쁘기까지 했다.

회사 생활을 하는 동안 나는 너무 지쳐있었다.

하루하루 회사에 나가는 것이 지옥 같았다. 퇴근하고 아이 하원시키려 전력질주하여 지하철역에 도착해서 만원 지하철을 타고 어린이집까지 내달리는 하루하루가 너무 고되었다.





퇴사 날을 기다리며 달력에서 하루하루 날짜를 지워나갔다. 퇴사 날이 다가올수록 내 얼굴은 방실방실 웃음꽃이 피었다.

실업급여받으며 하고 싶은 것들을 적어보기도 했다.

성인 발레도 배우고 싶었고, 글쓰기 수업도 듣고 싶었다.


쉼 없이 달려온 15년간의 회사 생활의 고단함을 보상받기에, 그동안 목말라했던 나만의 욕구를 채우기에 실업급여를 받으며 쉬는 5개월이라는 시간은 너무 짧게만 느껴졌다.

많이 모자랐다.

그런데 어쩌랴. 일은 해야 하는데.

다시 마음을 다잡고 이력서를 넣었다.





면접 대기실. 모두 긴장한 얼굴로 앉아 있었다.

나보다 10년은 더 어려 보이는 사람들이었다.

이제 갓 졸업을 했거나 많아봐야 20대 후반처럼 보였다.

상, 하의 모두 검정 정장을 입었다. 누가 봐도 '나 면접 보러 왔어요.'라고 알아볼 수 있는 딱 그 면접 복장!


여성 지원자들의 머리는 항공사 면접을 방불케 할 만큼 머리카락 한 올도 용납하지 않겠다는

의지로 모두 넘겨 가지런하게 묶여 있었다.

나는 단정한 검정 원피스를 입고 갔다. 신입이 아닌데 너무 신입처럼 보이는 것도 좀 이상할 것 같아서.


5시간 파트타임으로 계약직 병원 직원을 뽑는 면접이었다.

9시 출근, 3시 퇴근.

아이 어린이집에 보내고, 하원 시간에 맞춰 가볍게 일하고 3시에 퇴근하는 이 계약직 파트타임 자리가 나에게는 최상의 조건이라 생각했다.

이제 풀타임으로 힘들게 일하고 싶지가 않았다.

그래서 시급이나 업무 강도는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최저 시급만 받아도 아이 케어하면서 일하기 괜찮겠다 싶었다.

5시간 근무. 그것도 우리 집 근처 출근시간 30분도 안 걸리는 곳에 위치한 병원에서 근무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합격만 한다면 나에겐 큰 행운일 거라 생각했다.


나의 경쟁자인 어린 지원자들도 경직된 표정으로 앉아 있었다.

잠시 뒤 의사들이 입는 하얀 가운을 입은 면접관 두 명이 들어왔다.



면접은 3명씩 들어갔다. 병원이니 면접관들이 의사인가 보다 생각했다.

지원자들 틈에 끼어 있어 나이 때문에 불리할 수도 있겠다 생각했다.

면접관은 이력서를 보고 전에 무슨 일을 했었는지, 왜 그만두었는지에 대해서도 물었다.

대기업 면접처럼 압박 질문 같은 건 없는 편안한 면접 분위기였다.


다른 지원자들은 패기가 넘쳤다. 요즘 면접은 이렇게 보나보다 싶었다.

나는 이 지원자들과는 아주 많이 동떨어진 장소와 시간 속에 있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면접이 끝나고 집에 들어가는 길에 든 생각.


'망했다.'

'에라 모르겠다. 떨어지면 다른 데 지원하지 뭐.'


그리고 며칠 후.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