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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새벽 세시 칼리 Jan 07. 2024

그날의 기억.

나의 꿈을 찾아서

살면서 오랜 세월이 지나도 생생하게 기억되는 어느 한순간이 며칠이나 있을까.

아마도 큰 감동이 있었거나 크게 슬펐던 날, 일생일대 큰 충격을 받은 날이지 않을까 싶다.

보통날의 기억은 시간이 흐르면서 점점  흐릿해지기 마련이다.


대학수학능력시험을 보던 날 모든 시험이 끝나고 집에 돌아오던 길, 대학 원서를 내러 가던 날, 면접 보던 날, 결혼식, 신혼여행, 아이를 낳던 날...

지금까지 살면서 내게 있었던 큰 이벤트는 이 정도인 것 같다.


이마저도 지금은 기억이 점점 흐려지는 것 같기도 한데, 이런 날들과 다르게 오래 기억하고 싶은 날,

내 인생에 있어 큰 터닝포인트가 되는 계기가 된 날은 바로 그날이었다.


그날 왜 그곳에 갔었는지, 그날이 여름이었는지, 겨울이었는지, 화창한 봄날이었는지는 정확히 기억은 나지 않는다. 다만 그날은 회사를 가지 않았기에 어느 여유로운 주말 오후였던 것 같다.

가서 무얼 마셨는지, 그곳에서 얼마나 머물렀는지 기억은 잘 나지 않지만 그곳에서 나눈 대화, 그곳에서 내가 했던 생각은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이 난다.






남편은 함께 있지 않았다.

아이와 나는 경기도로 이사 오기 전에 살던 서울 집 근처 스타벅스에 있었다.




아이는 커피가 아닌 음료를 시켰을 테고

나는 커피를 주문해서 마시고 있었을 것이다.

아마도 커피와 함께 먹을 조각 케이크정도도 시켰으리라. 보통 그랬으니.


우리가 유치원에 다닐 때였고, 어느 정도의 대화는 가능할 때라 시시콜콜한 일상의 대화를 나누고 있었을 거다.


아이는 화장실에 가고 싶다고 했다.

우리가 갔던 스타벅스는 오래된 건물 2층에 새로 입점한 곳이었고, 화장실이 스타벅스 안에 있지 않고

카페를 나와 건물 안에 있는 화장실을 이용해야 했다.

오래된 건물이었기에 화장실도 허름한 복도를 지나야 나오는데 이런 곳에 화장실이 있다고?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이상한 지점과 맞닿은 곳에 화장실이 있었다. 옥상 한편에 화장실이 있는 정말 이상한

구조였다.

다행히 스타벅스가 입점하며 화장실 내부는 수리를 했는지 깨끗해서 아이가 사용하기에도 큰 무리는 없었다.

화장실 문에 달린 도어록 번호키를 누르고 여자 화장실에 들어갔다.


아이가 뜬금없이 나에게 질문을 했다.


"엄마는 꿈이 뭐야?"


유치원에서 장래희망이나 꿈, 희망 직업 등에 관해 배우니 아마도 유치원에서 들었던 내용이

생각나서 나에게 물었으리라 생각했다.


그런데 그 질문 자체에 대해 짧은 순간 많은 생각이 머릿속으로 스쳐 지나갔다.


꿈은 계획과는 다른 것 같고, 꿈은 지금 현실에서 이룬 목표와는 다른 내가 원하는 미래로 가는

지향점을 말하는 것 같고, 경제적인 즉 수입이나 보수, 내가 원하는 아파트 실평수나 아파트 가격을 꿈이라 말하기엔 아이에게 너무 속물 같아 보일 것 같다는 생각 0.0001초


'내가 뭘 좋아했지? 뭘 원했지? 나는 뭘 하고 싶었지? 난 뭐가 되고 싶었지?

난 지금 뭘 하고 싶어 하지?'에 대한 생각 0.0001초


그 짧은 찰나의 시간 동안 정적이 흘렀다.

아이는 옷을 추스르고 있었고, 나는 화장실 칸 안에서 잠금장치를 열기 전, 화장실 문 밖으로 나가기 전까지 나의 꿈에 대해 말해줘야 할 것만 같았다.


결코 긴 시간이 아니었는데, 나는 수많은 생각을 했다.






"어? 엄마 꿈?

아~ 엄마는 말이야."


"엄마 꿈은 작가야."


내 꿈이 작가라고 아이에게 대답해 주면서 나는 내 대답에 만족했다.

'그래 적절한 대답이었어.' 아이가 엄마의 꿈을 들었을 때 크게 이상하게 받아들이지 않을 만한

멋진 대답이라 생각했다.

그러면서 한편으로 나는 왜 이런 생각을 하고 있는지, 아이에게 그럴듯해 보이는 엄마가 되기 위한

대답을 찾자고 생각해 낸 대답인 건가라는 생각에 한편으론 나 스스로를 책망했다.

'나도 참 별꼴이다 진짜.'

'에휴'


그 후로 생각이 많아졌다. 내 꿈이 '작가'라는 말이 어떻게 갑자기 튀어나온 것일까. 에 대해

하지만 이내 그게 나의 진심이었다는 걸 또 알게 되었다.

현재 내가 하고 있는 일이 아닌, 내가 원하고 바라는 내가 꼭 하고 싶은 일.

내 이름으로 된 나의 책을 한 권 써보고 싶은 꿈.

나의 이상향, 내가 향한 나의 지향점은 의식하지 않았지만 마음 한 구석에 늘 자리 잡고 있었던 글 쓰는

<작가>가 되는 것이었다.

유명한 작가가 되고 싶은 생각은 없었다.

그냥 나의 이야기를 쓰고 싶었다. 나만의 이야기를.


책을 좋아하고, 쓰는 것을 좋아했던 나는

'그래, 나는 어릴 때부터 책을 좋아했지, 글로 적는 것도 좋아했어. 그래, 그랬었지.'

지구상에 태어났으니 뭐라도 하나 남기고 싶다는 생각을 하며 언젠가는, 언젠가는 나의 책을 내야지 생각했었다.


하지만 그 꿈은 아침에 일어나 출근하기 바쁜 일상과 매월 청구되는 카드 명세서, 대출 이자를 보며 흔적조차 찾지 못한 채 시간을 흘려보냈다.

아이의 그 질문에 나의 꿈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그래, 내 꿈은 작가였지. 책을 쓰고 싶어 했지.'



그날의 스타벅스 화장실에서 아이가 했던 질문, 그 질문을 받았을 때 흘렀던 몇 초간의 정적

그 순간이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이 난다.

그때의 순간을, 그때의 질문을, 그리고 대답을 나는 오래 기억하고 싶다.


내 꿈이 이뤄질 때까지.


최근 제프 고인스의 <이제, 글쓰기>라는 책에서

-작가가 되는 것은 단순하지만 작은 믿음에서 시작

된다. "나는 작가다"

라는 글귀를 보고, 나는 이미 작가라는 믿음을 가져 야겠다 생각도 했다.

그래, 이렇게 쓰고 있으니 이미 나는 작가다.


그래서 오늘도 내일 할 일이 있음에도 연재 마감 시간을; 일요일이 끝나기 전까지(00시 00분) 지키기 위해 노트북을 켜고, 키보드를 두드리고 있다.

이 글들이 언젠가 나의 책의 뼈대가 되리라 생각하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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